Art & Healing/마음 미술관

아버지가 미울때 보는 그림-오순환의 그림을 보며 운 까닭

패션 큐레이터 2008. 9. 16. 00:23

 

 

오순환_산_나무에 채색_43×30×67cm_2001 

 

추석이 끝날 때면 자꾸 부모님 생각을 합니다. 제사를 지내는 것도 아니고, 단순하게 음식 마련하고 간단하게 기도하고 친지들과 나누는 식사의 시간이 끝나면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삶의 후일담을 공유하지요.

 

정년을 잊은 채 열심히 일을 해온 아버지는 어느 새인가 부쩍 늙으셨다는 게 느껴집니다. 워낙 못난 아들에 못되 먹은 이 막내아들은 이번 추석에도 변변한 선물 하나 해드리지 못했습니다. 선물 고를 시간도 없이 바빴다는 말이, 핑계가 되지 못함을 알지만 사실 9월 초순부터 추석 전날까지, 정말 힘들었고 버겨운 스케줄을 소화해내느라 몸이 아팠습니다.

 

오늘도 사실은 두편의 특집원고를 썼습니다. <주간한국>에서 그것도 특집 피쳐링 기사의 첫번째를 장식하는 기회를 주었으니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고, 두번째로 포스코와 블로그 포털의 인터뷰 기사를 정리헤서 주었습니다.

 

나도 언젠가는 아빠가 될텐데, 예전 아는 아빠처럼은 안될거라고 거들먹거린 내 과거의 시간이 떠올라 눈물이 납니다. 내 인생의 끝에는 어떤 면류관이 있을까 어떤 훈장을 단 아버지가 될까를 떠올려 봤습니다. 요 며칠 인터뷰에 불려다니며 자주 들었던 질문 중의 하나가 <딸에게 들려주는 미술 이야기>의 숨겨진 이야기나 혹은 시작하게 된 동기가 무엇이냐는 질문이었습니다. 해외 출장이 너무나도 많아서, 불량아빠, 나쁜 아빠가 될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한 남자의 이야기라며, 그냥 너털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하곤 합니다. "미술관에 아이들과 자주 가는 아빠"가 되고 싶지만 실제 내 현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반성의 편지를 써서 용서를 구하는 것이라고요.

 

오순환_포옹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4×130cm_2008

 

물론 단순한 편지이기 전에, 내 이력과 경험을 딸과 함께 나누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족한 마음만 가득합니다.

 

오순환의 그림은 짠 합니다. 아니 그냥 보다가 울어버리기 십상입니다. 밝은 색감의 유채 작업으로 그려진 그림이지만, 그림 속 아버지가 보는 이들의 심상 속에 잊혀져 있던 누군가를 바로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겠죠.

 

아버지의 훈장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한 아내의 남편으로서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사회적으로 여러가지 가면을 쓴 존재인 아버지의 모습속에 훈장으로 남은 것은 결국 우리들입니다.

 

더러워도 참아야 하고, 회사에서 못해먹겠다는 느낌이 들어도 참게 되는게 이 가족때문인걸, 나이가 들어서야 조금씩 배우고 있는 걸 보면 약간 철이 들어가나 봅니다.

 

요즘 부쩍 가족이 있어야 겠다는 생각. 아이들을 반드시 키워야 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이러한 마음의 연장선에서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책임을 다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은 일임을, 누군가의 아비로, 남편으로, 상사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삶의 여정중에서 얼마나 큰 무게를 차지하는 지 저는 아직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안아드리고 싶을 때, 이 그림을 봅니다. 따뜻한 느낌이 마음에 전달될 때마다, 노역의 금이 패어버린 손을 보며 쓸쓸한 마음만 간직합니다. 나는 누군가를 얼마나 따뜻하게 안아주었는지, 내가 감히 누구 앞에서 '큰 사랑'을 이야기 할수 있을 지를 물어보게 됩니다.

 

이제 추석도 끝나고 새로운 일상으로 돌아가겠지요. 지친 아빠의 모습, 아버지의 모습, 이제는 할아버지가 된 한 남자의 모습을 안아내지 못하는 우리의 강팍한 마음을 반성하며, 이제 다시 일상으로 들어갑니다. 늦기전에 말해주세요. '사랑합니다......'라고요. 우리의 이 마음을 하늘이 이해해주리라 생각합니다. 그 행위의 진실을 믿을 때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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