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마음 미술관

고양이를 부탁해-까칠한 당신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패션 큐레이터 2008. 9. 17. 23:01

 

이경미_李Nana_나무판넬에 유채_72×54cm_2008


 

내 친구를 소개합니다.

이름 : 손수연

나이 : 36세 동갑내기 (현재 싱글)

직업 : 비즈니스 컨설턴트

취미 : 고양이 껴안고 자기

특기 : 고양이랑 같이 묘기 부리기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 : 고양이

 

내 친구 수연이는 세상에서 고양이가 제일 좋단다.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하는 일이 옆에서 잠들어 있거나, 그녀를 깨우는 5마리의 귀족 고양이들에게 입을 맞추는 일이다. 개인적으로 강아지는 좋아하나, 고양이를 내켜하지 않는 나는 이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아비시니아인지 뭔지 하는 종류의 고양이를 보면서, "흠.....자식 생긴건 그래도 괜찮네 했던 적이 있다. 여러 마리의 고양이를 키우는 그녀에게 17년 지기 친구로서 한마디 던진다. "이제 고양이 대신 남자를 안고 잠들지 그러냐?" 그녀의 말 "야....바라바라 니나 똑바로 해라 임마야. 내는 우리 괭이가 젤로 조타 아이가...남자가 뭐 밸기가. 우리 괭이가 더 조타"(사무실에선 표준말, 나랑 이야기 할때는 바로 고향 사투리가 가득하게 배어나온다) 조직 설계 분야의 컨설턴트인 내 친구는, 매일의 일상이 각 조직내의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조직의 방향성을 그리는 일이다. 프로젝트에 따라 사람을 참 많이도 만난다. 자신의 표현대로 하면 '사람독'이 들어서 고양이를 만지지 않으면 못 견디겠단다. 고양이가 사람독을 지워준대나 뭐래나.

 

 

 

이경미_나나 III_캔버스에 유채_92×118cm_2006

 

난  이경미의 그림을 보면 그림 속 소재로 등장하는 고양이에게 눈길이 간다.

황색 얼룩이와 거무스름한 녀석이 주로 등장하는 데 커플로 때로는 싱글로 등장한다.

작가가 키우는 고양이인걸까? 더구나 고양이들이 어쩜 그리 겁도 없는지

구름높이만큼 치솟은 마천루 꼭대기에서 하늘을 바라본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그림 속에 자주 패션 소품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커튼이다. 이 커튼은 어떤 의미로 사용된걸까.

마치 고양이의 정체성을 가려주려는 은막이나 혹은 가면같은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까탈스러우면서도, 지조를 지키는 자존심 높은

골드미스의 뒤태를 닮은 듯 한 고양이를 보니 친구 생각이 났다.

 
작가 자신을 대신해, 가고 싶은, 혹은 여행하고 싶은 곳을
유체 이탈해서 마구마구 돌아다니는 것 같기도 하고, 하여튼 작가에게 있어
고양이는 자신이 도달할 수 없는, 혹은 현재 갈수 없는 장소에
자신의 분신으로서 놓을 수 있는 매개다.
 


이경미_주사위_나무 주사위에 유채_박스30.9×91.5cm, 주사위12×12×12cm×4개_2006
 
사실 이경미란 작가를 개인적으로 인터뷰 해본 적이 없다.
그러니 그림 속 고양이가 그녀를 재현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알길은 없지만, 대부분의 화가들의 행동을 유추해 보건데
이건 분명 작가의 모습이 맞을 거다.
 
작가에겐 상처가 많았다고 들었다.
그림속에 파도치는 풍경이 많은 이유일 듯 싶다.
그걸 지켜준 분이 어머니이고, 그 어머니는 바로 커튼이 되어
그녀를 감싸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앞에서 이야기한 가면은 아닌 셈이다.
내 추측이 틀렸다. 결국 커튼은 건강하고, 긍정적인 삶을 위해
따스한 잠을 청하도록 도와주는 담요와 같은 기능이다.



이경미_Epipolar geomexstry : Negativen_나무부조판넬에 유채_116.7×91cm_2008
 
그림을 그리는 후배들이 많기에
종종 스튜디오에 놀러가거나 작업실에 가면
한동안 있다 오곤 한다. 차도 마시고 이런 저런 이야기도 도란도란 나눈다.
하나같이 후배들에게 듣는 이야기가 "오빠는 좋겠다. 출장 많아서 맨날 다른 곳에 가잖아"
나도 변화가 필요한데,  타성에 젖는 것 같고, 예전에 그린 그림만 답습하는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짧은 여행 하나 보내줄수 없는 가난한
내 처지가 아쉽다. 캔버스를 보면서 끊임없이 상상하라지만
사실 상상력도 이국적인 것들, 내게 익숙하지 않은 것과의 조우 속에서
그 빛을 강렬하게 태워내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그림 속 고양이들의 모습은
그런 자유의지를 담은 작가의 모습일거라 생각한다.
 


이경미_hidden in green2_캔버스에 유채_130.3×97cm_2008
 
작가에게 쓰라리고 쓸쓸한 개인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도록을 읽으면서 유추해본다. 누구에게나, 상처는 현존 자체만으로도
버겹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치유의 횡보를 걷는다. 나 또한 살아오면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다. 이때마다 내 자신에게 되뇌이는 것은
'나를 더욱 사랑하기'다. 나 자신에 대한 과장이나, 능력을 포장하는 일이 아니라
그림 속 커튼 속 습한 음지처럼, 음험하게 가려진 내 자신의
부정성을 적극적으로 껴안을 때 가능해진다. 나를 행복하게 받아들이고
껴안는 일보다 중요한게 어디 있겠나.
 
오늘날까지, 여전히 상처에 시달리고
그 속에서 시리게 아픈 이땅의 아가씨들에게......
따스하게 그녀를 덮어줄 커튼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몽상에 빠져본다.
 
냐옹아......내 친구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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