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선_밥상 위의 연금술 : 아슬아슬한 대화_밥풀 casting, 아크릴관_80×115×117cm_2008
황인선의 밥풀로 만든 밥상을 보고 있자니
몸에 붙은 잉여의 살 덩어리를 없앤다며 시작한 다이어트가
위기감을 느낍니다. 30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밥심으로 살아가는 제게 최근
고구마와 과일 몇 조각, 닭가슴살만 도려내 먹는 식단도 그리 나쁘진 않습니다만
그저 밥상하면, 엄마가 차려준 한 상을 좋아하는 제겐, 칼로리 밸런스에
기반한 선택적 식단이 썩 마뜩찮은게 사실이지요.
황인선_밥상 위의 연금술 : 아슬아슬한 대화
밥풀 casting, 아크릴관_80×115×117cm_2008_부분
제겐 습관이 하나 있습니다.
프레젠테이션을 잘 하거나, 거래를 성사시킨 날은
제가 꼭 먹고 싶은 음식을 먹는 것으로 제 자신에게 베푸는 일입니다.
동료나 친구와 함께 먹어야 그 밥도 맛있는 법입니다.
숟가락으로 고슬고슬하게 담겨진 밥을 담아 입 속에 넣을 때면
세상사 이렇게 행복할 때가 없지요. 그만큼 수저로 밥을 먹는다는 건
우리를 얼르고 먹이는 엄마의 마음을 일상의 황홀 속에서 다시 느끼는 것입니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콕 찝어 선택할 수 있는 젓가락에 비해
수저의 매력은, 움푹패인 오목면에 밥덩어리를 포근하게 안아내는
정감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수저를 자세히 살펴봅니다.
수저는 반드시 오목과 볼록이 함께 공존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황인선_밥풀떼기 물 한 모금_밥풀 casting, 아크릴관_40×40×142cm_2008
볼록면에 비추인 밥 먹는 제 모습을 보면서
하루의 일정을 소화하고, 오목하게 패여진 생의 여울 속에
밥을 담으며 그 속에 삶의 하중을 덜어낼수 있으니 이 보다 좋은 조합은 없습니다.
수저는 그저 생긴 형태 자체만으로도, 우리의 삶을 위로합니다.
황인선_부서진 대화_밥풀 casting, 아크릴관_40×40×142cm_2008
황인선은 밥풀을 이용, 정겨운 밥상풍경을 조형합니다.
이외에도 한지를 이용해 만든 김치에는 오랜 시간 여린 손끝으로
하중을 견뎌내며 한땀한땀 자수를 내듯, 공들였을 시간들이 녹아 있지요.
장은진의 <키친 실험실>이란 소설을 읽었습니다. 소설 속에는 원푸드 다이어트에
집착하는 두 여자에서, 아내에 대한 복수를 위해 요리를 배우는 남자의 이야기 등 식탁이란
공간을 통해, 소통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현대사회의 편린들을 드러냅니다.
밥을 함께 먹는 다는 것, 그것은 소통이자 무거운 세상의 짐을
함께 짊어지고 나누려는 거룩한 협력의 행위일 것입니다. 서양식 식탁보다
밥상이란 따스하고 정겨운 공간이 좋은 건 바로 그런 이유겠지요.
황인선_우리 식구는..._밥풀 casting, 아크릴관_실물크기, 가변설치_2007
황인선이 가상으로 차려낸 밥상에는 우리 내 엄마들이
새끼들 입에 들어가는 밥한톨, 더 먹이려는 마음이 배어있습니다.
그 마음은 수저의 이중적 곡면처럼, 오목하게 담아 볼록하게 차오르는 새끼들의
배를 형상화할 것 같습니다. 가족에게 밥은 소망이자 기쁨이지요.
내가 아직까지도 밥을 먹을 때마다, 이 아침을 차려준
엄마의 손길에 축복기도를 드리는 이유는 바로
그 거룩한 노동의 시간을 부족한 아들
못난 새끼를 위해 투여한 것에 대한 당연한
감사입니다......그래서일까, 예쁜 밥상을 보면
엄마에게 미안함을 느낍니다.
황인선_한포기 한포기_한지 casting, 잉크, 바니쉬코팅_실물크기_2008
물론 시원한 김치 한조각은 필수겠지요.
몇주 전 블로그로 보쌈김치를 먹고 싶다고 했더니
어떤 독자가 선물로 보내겠다는 걸 애써 말렸습니다.
보내주신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이 척박한 온라인 공간에서
그림을 통해 마음을 애무하는 이 칼럼니스트의 영혼을
따스하게 안아주신 것이겠지요.
바로 이것이야 말로 밥상이 만들어내는
사랑과 연대의 연금술이 아닐런지요. 오늘 아침은
든든하게 먹고 가야 겠습니다.
벌써 일주일의 중간지점 수요일입니다.
이런 날은 환한 음악을 들어야죠. 거북이가 부르는 <칵테일사랑>입니다.
마음이 울적한 날엔 향기로운 칵테일에 취해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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