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마음 미술관

실연한 로봇태권브이-나는 왜 사랑을 못하나

패션 큐레이터 2008. 9. 4. 19:34

 

 

 김석 <외로운 밤> 나무와 혼합재료 110×140×150cm 2008

 

잣나무로 따스한 느낌 가득한 로봇태권브이를 만드는 작가 김석의 <외로운 밤>이란 작품을 보고 있자니 베실베실 웃음이 난다. 우리의 영웅도 이렇게 사랑앞에 물을 먹는구나. 태권브이도 별수 없군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번 주 라디오 방송에서 소개한 책이 <나는 왜 사랑을 못하나>와 <문화 세상을 콜라주하다>란 책이다.

 

책 리뷰를 쓰다보니, 첫날 청담동에서 본 김석의 전시가 떠올라 작품을 골랐다. 누구에게나 인생에서 몇 번은 사랑을 한다. 연애를 하고 차고 차이고, 반복을 하지만, 사랑엔 이상하리 만치 면역력 같은 것이 없는 것 같다.

 

그 순간의 고통을 견뎌내기 어렵다. 다시는 그 사랑의 기억을 되살리기 싫다면서도, 우리는 그 마법에 빠지고 만다. 정신과 전문의 양창순 박사의 사랑 치유 에세이 <나는 왜 사랑을 못하나>를 읽으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본다. 그는 정신과 전문의로서 많은 사랑에 실패하고, 사랑 때문에 아픈 사람들을 만나왔다. 이 책이 마음에 드는 건, 심리학 이론을 원용한 것이 아니라, 솔직담백한 우리들의 이야기, 내담자들의 사연들이 녹아 있기 때문일거다. 김석의 작품 속 태권브이도 사랑하는 이에게 차였다 보다. 사랑했던 이를 그리며 페인트로 사랑을 써보지만, 돌아오지 않는다.

 

 

최혜미_실연 (lost love)_유리타일80×244×122cm_2008

 

유리타일로 로봇을 제작하는 작가 최혜미의 작품에서도 실연한 로봇이 나온다. 여기서 로봇은 꼭 기계가 아니지 싶다. 우리들의 욕망이 투사되고, 우리와 동일한 욕망을 가진 존재로서의 로봇일테니까.

 

책을 읽다보니 재미있는 내용이 있다. 우리가 사랑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안에 사랑 불능코드가 있기 때문이란다. 그 코드는 다름 아닌 두려움과 불안감, 무엇보다도 사랑하고 있는 순간에도 계속 우리를 괴롭히는 유혹이란 감정이란다.

 

저자는 말한다. 사랑이 불안하고, 두려운 것은 본원적이라고. 그러면서 그는 <플라톤의 대화>에 나오는 사연을 소개한다. 여기에 사랑의 탄생과 관련된 일화가 나오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비너스가 태어났을 때, 축하 파티가 열렸다. 이때 유일하게 가난의 여신이 초대를 받지 못하고 구걸을 하고 있었는데, 이걸 본 술에 취한 풍요의 신이 여신을 끌어안고 제우스의 정원으로 들어가 버렸다.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사랑'이다" 풍요와 가난의 신 사이에거 태어난 이유로 이 감정에는 행복과 고통, 불안과 안도, 결핍과 과잉이 존재하게 되었다고......

 



최혜미_OTL_유리타일_85×244×100cm_2008

 

중요한 것은 내담자 모두, 사랑에 실패한 것은 특정 경험이라기 보다,

인격 전반의 문제였다는 점을 지적한다. 사랑만큼 나 자신을 성장하게 하고

바라보게 하는 매개가 없음을 확인시킨다.

 

두번째 책 <문화, 세상을 콜라주하다>를 보면, <과학으로 철학하기>편에

<인간과 로봇이 사랑할 수 있을까>란 재미있는 글이 나온다. 이 질문에 대해 통섭적 입장,

즉 과학과 철학을 결합해 답을 낸다. 답부터 말하자면 애초에 불가능이다. 영화 <바이센테니얼맨>을 소개하면서

영화 속에선 인간과 로봇의 사랑이 이루어졌지만, 현실세계에서는 현재 기술수준의 비평을 떠나,

인간 스스로가 기계에 대입할 '사랑'이란 개념을 스스로 정의내리지 못하기 때문에 불가능하단다.

게다가 종교에서 말하는 사랑이 사회를 향해 확장된 경우, 이러한 네트워크화된 사랑은

 

도저히 과학을 통해 정의내리지 못하고, 시스템에 삽입하지 못한단다.

그러니 사랑에 실패하고 OTL 하는 로봇은 없을 거란 결론.

 


최혜미_사랑세포 (love cell)_유리타일_90×100×30cm_2008

 

플라톤은 사랑을 '일종의 미친상태'라고 말했단다.

세익스피어는 '생명을 기르는 달콤한 이슬'이라고 주장했다고. 양창순 박사님의 글을 읽다보면,

따스한 긍정의 시선이 좋다. 사랑은 후회스럽지만, "우리 안에 공허함과 두려움, 무력감을 직시하면서

자신을 바라보게 하는 힘"을 가졌기에, 사랑을 통해 더욱 성장할 수 있다고,

최혜미의 작품처럼 '사랑세포'는 영혼내부에서 자라게 되나보다.




최혜미_heartless_유리타일, 합성수지_90×70×80cm_2008

 

양창순 박사님의 책에 나오는 <사랑의 성장을 방해하는 여덟가지 이유>를 소개해본다

자신이 사랑을 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면, 왜 나는 사랑하지 못할까라고

반성하고 싶다면, 다음에 소개하는 8가지 이유를 묵상해 볼것을 권한다.

 

                                            ■  지레 짐작의 오류

                                            ■  이심전심이겠거니 서로 너무 믿을 때

                                            ■  모든 것을 자기 탓으로 돌리는 태도

                                            ■  매사에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행동

                                            ■  흑백논리(내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  선택적 오류(부정적 사건에만 자꾸 주목하는 것)

                                            ■  과잉 일반화 (한가지 경우를 통해 전부가 다 그런 것처럼 결론 내리기)

 

특히 젊은 아가씨들, 과잉 일반화의 행동을 자주 보인다고. 전화 한번 안되면

'거봐....일부러 피하는 걸 거야"라고 생각하는 태도란다. 버리자. 이런 태도는 빠를 수록 좋다.

                                             
세상이 나를 버린 줄 알았다.
아니, 내가 세상을 등지고
어느 날 돌아앉아 버렸다.

구겨진 혼에 날마다 바람 위로 날던
서글픈 눈물의 향기
쪽진 머리처럼 아픔으로
갈래갈래 땋아 안으로 감춘 외 롬
지독한 자폐증을 앓았다

내게서 고통의 의미는
잊힌다는 두려움이며
흰 저고리 검은 치마처럼
흑백의 외로움만 켜켜로 싸였다

시름이 깊고 깊었다.
사랑하다 혼이 나갔으면
오뉴월 염병 앓듯

지독한 결핍은 오지 말아야 했다

기대하지 않았다.
내가 찾던 열여덟 사랑은 죽었고
깊은 심연에 수장되어 고사했던
정열과 순수 그 노래가 들리기까지는...

그러나 어느 날 그가 홀연 내게로 왔다. 기적처럼, 두꺼운 부피, 그 어둠을 깨고 사랑이 그 사랑이 내게로 왔다.

 

고은영의 <사랑이 내게로 왔다> 이란 시로 오늘의 글을 정리하자.

최혜미의 작품 <고백>을 보자니, 나도 누군가에게 따스한 사랑 고백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방송을 하면서 다가오는 가을 "풍성하고 예쁜 사랑 하세요"라고 멘트를 했는데, 방송 후

나오는 길 PD님이 막 웃으면서 "예쁜 사랑하세요"라고 놀리신다.

그래....다가오는 가을에는 멋진 사랑 한번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