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마음 미술관

시멘트 위에 그린 그림-내 인생의 연탄길

패션 큐레이터 2008. 9. 11. 23:02

 

 
김소연_집으로_시멘트에 유채_74×53cm_2008

 

난 김소연의 그림을 볼때마다 마음이 참 편하다.

캔버스 대신 시멘트를 이용해 배경을 만들고 그 위에 채색한 그림 속엔

내 어린 시절 유년의 기억들이 소롯하게 담겨 있는 듯 하다. 작가는 자신의 그림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하고 문제점을 바라보는 과정이었다고 후술하고 있다.

그만큼 그녀의 그림이 자기반영적이란 말일거다.

 

그림값은 추억의 무게라는 말이 있다.

잿빛 시멘트로 그려진 세상, 서울을 비난하지만, 그 어둑시근한  

주변부에서도 희망의 꽃은 피고, 우리들은 여전히 버겨운 생의 무게들을 감내한다.  

나는 김소연의 작품에서 당뇨로 고생하는 작가의 어머니. 상처를 곰삭이며 

시멘트위의 동화같은 그림을 통해 자기를 치유하는 작가의 아련한 모습을 발견한다

 

 
김소연_화단에서_시멘트에 유채_33×48cm_2008

 

내가 살던 집엔 작은 화단이 있었다. 겨울이면 붉은색 동백과 노란 꽃술이

예뻐 가만히 들여다 보곤 했었다. 하꼬방집들 사이에서 그래도 우리집은 목욕탕과 정원이

달린 꽤 널찍한 집이었다. 연탄가스도 경미하게 한 두번 정도 마셨나 싶다.

그림 속 꼬마소녀가 입고 있는 멜빵바지를 입고 싶어

어머니에게 자주 조르곤 했다. 그때마다 화장실 갈때 불편하다며

절대로 어머니는 내게 오버롤즈를 사주지 않으셨다.



김소연_1,2,3,4_시멘트에 유채_24×33cm_2008

 

시멘트만큼이나, 도시문명을 결정지은 소재가 있을까

매우 비인간적인 소재일 수 있는데, 여기에도 작가의 추억이 달콤한 당의정을 입힌

사탕처럼 녹아드니, 그 주변에서 삶의 따스한 꽃이 핀다. 그림의 힘은 바로 이런데 있나보다.



김소연_바늘 없는 시계_시멘트에 유채_91.5×68cm_2008

 

포장이 제대로 되지 않아 비가 오면 울둘목도 많은 동네엔

연탄재를 뿌려 구멍들을 메꾸곤 했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어릴때 멋도 모르고

연탄 두개를 박살내 구멍을 메우다 동네 옆집 아주머니한테 볼기짝을 맞았던 기억이 난다.

울 엄마는 그때 그 아주머니랑 대판 싸웠던 걸로 기억한다. 아무리 잘못을 해도

감싸고 싶은게 엄마의 마음이기에 그랬나 보다.



김소연_민들레 홀씨_시멘트에 유채_34×68cm_2008


넉넉지 않았던 살림살이였지만, 기억나는 게 많다.

부산에서 살아서 그런지 요즘도 나는 싱싱한 물미역과 초장만 있으면

밥을 몇 그릇이고 뚝딱 비운다. 여기에 정구지무침(부추)랑 두부조림, 곤약정도 있으면

행복한 식사고 거룩한 밥상이 아닐 수 없다. 시멘트로 얼기설기 메꾸어 놓은

풍경 속에서도 희망의 민들레 포자는 대지에 퍼지는 법인가보다.

한끼의 밥에 그날 하루의 생명이 담기듯, 무거운 회색빛

포장도로 곁길에도, 담벼락에도 꽃은 핀다.

산다는 건 이렇게 질기고도 환한 꽃을 피우는 과정인가 보다.



김소연_상점들의 거리_나무에 시멘트_23.5×158.5cm_2008


김소연의 시멘트로 그린 조형과 그림 속에 담겨진 추억의 무게는

어느 정도일까? 그녀의 그림을 보다보면, 자꾸 어린시절의 기억이 오버랩되어

글을 쓰다가 헛짓을 하듯 몽상을 하게 된다. 그만큼 공통된 기억의 입자들이 우리 내 생을

아로새기고 있기 때문이리라. 내 인생의 연탄길이 언제였던가 떠올려본다.

 

내 인생의 두번째 책을 쓰는 지금 영혼의 연탄길을 깔아야 할듯 하다.

지나온 날들의 추억이 담기게 될 책이다. 그 추억의 7할은 이 블로그다.

이 추억은 생성적이어서, 함께 만들어온 이들의 길을 바라보게 하고 성찰하게 한다.

 

나도 누군가에게 나를 태워 따스하게 몸을 뎁혀주었던

시간을 추억할 수 있어야 할텐데......내 인생의 두번째 책에 그 마음을 담고 싶다. 

 

첼리스트 하지메 미조구치의 연주로 듣습니다.

오래전 보았던 영화 처럼, 환등기로 돌려보는 듯한 추억이 되살아나서

이 음악을 골랐어요. 영화 <시네마 천국> 메인 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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