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Mr Kid goes to Dream Factory
예전 영화공부를 할 때 보았던 삼부작 영화가 있었습니다. '미스터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라는 영화였는데요. 오늘은 이 영화의 제목을 패러디 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할까 합니다. 라스 베가스 쇼가 끝나고 하루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물론 L.A 지역에 있는 거래처에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시내 한 가운데 있는 업체였기에 협상후 바로 시내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답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 차를 렌트해서 하나씩 조심스럽게 보고 다닌 L.A 시내의 풍경입니다. 시청앞 분수대에서 한컷 찍어보았고요.
음악당 건물이 예뻐서 한컷 찍어보았습니다. 메탈릭 느낌이 가득한데 내부는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예전에는 여행을 할 때 꼭 실제로 예술센타와 같은 곳에 가서 공연을 보고 후기를 올리곤 했는데 요즘은 정말이지 어렵습니다. 그 때의 시간적 여유가 한없이 부러워지는 때이지요.
로스엔젤레스는 멕시코령이었던 땅을 미국이 전쟁을 통해 획득한 곳입니다. 사진속에 나오는 교회는 1781년 세워진 최초의 교회이구요. 독실한 카톨릭 전통이 남아 교회에서 결혼하는 풍경을 찍어보았습니다.
이국에서 보는 하늘은 항상 유달리 다른 느낌을 줍니다. 상이한 기상학적 조건으로 인해 빚어지는 구름의 형태가 그 중에서도 항상 기억에 남지요.
L.A 시내를 떠나 본격적으로 헐리우드로 향했습니다. 꿈의 공장 헐리우드,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문화적 상식의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하는것이 바로 이 헐리우드산 영화가 만들어낸 환타지란 사실에 대해 우리는 부인하지 못합니다. 그 만큼 사실 헐리우드는 우리의 우울한 감성을 행복한 마약으로 채워주는 꿈의 공장이면서 우리를 문화적으로 동질적으로 만드는 힘을 가진 존재이기도 하지요.
멀리 헐리우드 표시가 보이는 산의 정상을 배경으로 찍어 보았습니다. 사실 헐리우드란 동네 자체가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서부로 영화예술을 위한 자본이 몰렸던 것도 사실 이 지역의 무슨 지리적 특성이 대단하다거나 하는 것에서 기인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조용하면서도 지적인 엘리티즘에 빠진 동부와는 다른 근성과 감성으로 잉태한 산물임에는 틀림없기에, 헐리우드에는 초기 미국의 서부적 사고가 베어있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헐리우드를 삐딱하게 바라보는 작업. 이것은 어찌보면 문화적 식민주의라는 지금의 상황에서 그나마 우리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작업이 될테지요. 하지만 이러한 비판적 읽기에 앞서서 꿈의 공장인 헐리우드가 얼마나 많은 영화들을 만들었으며 이러한 전통을 통해 가장 관객에서 어필할 수 있는 영화의 스토리와 구조를 만들어 냈는가를 아는 것또한 중요합니다.
바로 헐리우드적 컨벤션이라 불리는 그들의 영화적 문법은 세계의 모든 영화구조의 근간에 영향을 미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부중에는 프랑스의 작가주의 영화를 이야기 하면서 헐리우드에는 작가가 없다고 이야기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학부시절 비판적인 영화감독이었던 로버트 알트만의 영화를 가지고 논문을 썼습니다.
알트만 뿐만이 아니라 사실 추리영화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코크도 헐리우드란 자본의 힘이 없이는 지금의 유명세를 가지지 못했을지도 모르지요.
매년 오스카 상이 수상되는 때이면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배우들이 가장 멋진 의상을 차려입고 걸어가는 차이니즈 극장입니다. 이 극장앞길에는 이제까지 헐리우드란 꿈의 공장을 걸어나간 수많은 방직공들의 손도장과 이름이 거리 곳곳에 박혀 있지요.
구경을 갔던 그날도 약간의 팁을 받고 영화의상을 입고서 기념 촬영을 해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스타들의 거리....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그 스타라는 자리를 위하여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마치는 곳. 바로 이곳 헐리우드에는 성공과 실패 속에 감추어진 위선과 다양한 욕망들이 애처럽게 세겨 있는 곳이기도합니다.
L.A 와 가까운 라스 베가스...매춘이 허락되는 몇 개 안되는 도시, 거기서 시간당 45불의 돈을 받고 남자의 무릎 위에서 춤을 추는 무희들중 많은 이들이 사실 헐리우드에서 배우로 성공하고 싶어한 여성들이란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하지요.
존 트라볼타의 이름이 새겨진 별 위에서 사진을 찍어보았습니다.
사람들의 진부한 풍경 속에서 헐리우드가 가지는 상징적 공허함을 느껴봅니다. 화려함 속에 가두어진 우리내 들의 여린상처들이 느껴지는 곳.....
영화의 역사는 바로 필름으로 부터 시작하고 이 필름을 처음으로 생산하기 시작한 코닥 극장에서 매년 오스카는 이루어집니다.
고전 영화 박물관에 들렀습니다. 실제로 영화를 미국영화를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서는 1930년대에 만들어진 고전 영화들을 꼼꼼히 살펴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이때 바로 지금 우리가 영화로 기억하는 모든 장치들과 방식들이 굳어지는 시기이기 때문이지요.
경제공황 속에서 영화는 니콜레디온이란 이름으로 거리에 버려진 사람들의 아픈 생채기에 부드러운 연고를 발라주는 발렌타인의 입술이었습니다. 그렇게 버려진 자와 그 중에서도 자본을 축적한 모든 자들이 다 함께 향연하는 예술의 형태로 헐리우드는 영화란 마법을 만들어 내지요.
그레타 가르보의 모습이 보이는 박물관에서 한참동안 내가 보았던 영화의 무게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읽으며 기억해야 했던 텍스트보다도 한참은 더 두꺼운 무게로 내 기억의 분수령을 차지하고 있는 헐리우드의 환타지는 그렇게 그날 내 기억의 잔상속에 새롭게 아로새겨 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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