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Woman of Clay
오늘은 멕시코의 사진작가 마르셀라 타볼라의 연작 다큐멘타리 사진집 중에서 '진흑으로 만든 여인들'을 소개합니다. 제가 다큐멘타리 사진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이 삶의 작은 편린들을 적확하게 재현하고 우리 내 생의 성찰들을 이끌어 가기 때문입니다.
작가 마르셀라는 우연한 기회에 남부 멕시코의 작은 마을인 산 미구엘 아마티엔이란 곳을 여행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진흙으로 자신들의 집을 지어가는 여성들을 발견하게 되지요. 가난과 기근, 가뭄과 정치적 불안정으로 가속화되는 이농현상 앞에서도 운명의 굴레를 박차고 나가는 그들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합니다. 산 미구엘 아마티엔은 남부의 작은 인디언 마을입니다. 시에라 마드르 산 고지에 위치하고 있어서 물을 구하기란 너무나도 어렵지요. 토양은 매마르고 콩이나 옥수수 같은 작황은 기대할 수도 없습니다.생계를 위하여 그들은 축구공을 재봉하고 야자나무 모자를 기워 살아갑니다. 그들은 가난하지만 '모성으로서의 지구'를 믿습니다
바티칸 공국에서 그들에게 제공한 미화 1700불로 그들은 자신들의 집을 짓기 시작합니다. 초기에 그들은 노인과 남성들로 부터 온갖 조롱과 조소를 들어야 했습니다. 아무런 희망없는 그들에게 희망을 사주기엔 너무나도 적은 양의 자본이었기 때문이었지요. 하지만 그들은 진흙으로 14채의 집을 훌륭하게 지어냅니다.
작은 돈으로 집을 짓기 위한 도구를 사고 암반으로 구성된 대지에 구멍을 내고 기둥을 세웁니다. 집을 짓는 동안 그들은 타오르는 정도의 태양 아래서 10분의 휴식을 가질뿐 집을 위한 그들의 희망의 몸부림은 지치지 않습니다..
9달 동안 마르셀라는 동네에서 그들의 사진을 찍으면서 보내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진흙으로 집을 지어가는 여성들의 모습과 일상의 풍경들을 하나씩 사진속에 답아내게 됩니다. 모기장을 쓰고 기도하는 여인의 사진입니다.
내 몸이 언제부터 유리였을까. 누군가의 날카로운 말 한마디 돌멩이처럼 내게 날아와 쩍쩍 금이 된다. 언어가 상처가 되는 힘. 그 힘들이 내 몸안에서 거미줄처럼 서로의 몸의 끝을 붙잡고 있다. 그 힘들은 은폐하고 싶은 나의 기록들의 변형이다. 야생의 나무들처럼 내 온몸에 실뿌리를 가득 뻗어 내린다. 푸른 실핏줄처럼 뻗어나간 금들은 상처의 힘이다. 금은 비늘처럼 내 살갗을 세밀하게 덮어 나를 물고기처럼 상처 속에 헤엄치게도 한다. 깊게 상처를 핥으며 내 안의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는 길. 바람이 분다. 한 생(生)안에 소름처럼 까슬하게 돋아나는 상처들의 힘.
남성 위주의 사회, 남편들과 아이들은 반드시 그들의 가족들을 부양해야 하는 사회에서 가정 내의 남성의 존재는 자부심 자체입니다. 하지만 이곳, 가난한 산마을에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플로리다와 북경지역으로 떠난 가장과 이별한 수많은 여성들만이 있읍니다. 하지만 이곳 마을은 그렇게 지리하고 비루한 가난의 풍경만 존재하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작가 마르셀라는 이곳에서 바로 멕시코적 감성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진흙으로 지은 오븐과 팬과 항아리 모든것들이 진흙으로 지어지고 그들의 손과 숨결을 통해 새롭게 구축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생활용품의 빛깔은 바로 저 대지의 빛깔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바로 이러한 흙의 빛깔로 빚어가는 그들의 삶의 방식과 빛깔은 바로 지구를 어머니로 생각하는 그들의 멘탈리티의 반영입니다.
바람에 허리 휘어 바람 끝에 섰을지라도 제 의지로 서있는 것들은 저리도 아름답다. 갈대는 바람을 꺾지 않는다.누군가의 옷자락에 쓸리며 꺾인 변두리의 슬픔에 내 길이 닿았을 때 겨울 갈대는 꽃으로 서있는 게 아니었다. 먼지 속에서도 빛을 만나면 제 빛을 녹여 겨울 갈대의 뿌리에 연둣빛 반란의 무리를 전하곤 하는 차디찬 눈구렁에 섰을지라도 갈대는 갈대를 꺽지 않는다. 건축가 호세 산티바네의 손에 가려진 강인한 이미지의 여인을 봅니다. 아도비 빛깔의 벽돌로 지어내는 그들의 보금자리 만큼이나 상기된 그녀의 얼굴속에 감추어진 용기를 봅니다. 여인들의 용기와 건축가의 지혜가 함께 지어내는 희망의집......비록 뜨거운 햇살아래 지쳐가지만 그들의 희망을 꺽을것은 없습니다.
카톨릭은 멕시칸의 정신적 우물과도 같습니다.어느 누구도 기대 하지 않았던 프로젝트였습니다. 그 적은 지원금으로 집을 짓는 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하지만 그들은 해냈고 지금은 바로 3세계의 희망의 상징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그들또한 삶에 대한 관점과 시선들을 변화시키게 되지요. 제 3 세계의 사회적 풍경에 관심을 가지면서 나름대로 공부를 해온지도 꽤 시간이 흘렀습니다. 사실 MBA를 마치고 유네스코나 혹은 세계 개발 은행에서 일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는데요. 마르셀라의 사진속의 여인들을 보면서 사회학자 안토니 기든스의 제 3의 길을 생각해 봅니다. 그가 제안하는 보다 포괄적인 대안적인 모델은 발생적 평등 모델입니다. 이 모델의 핵심은 불평등의 약화가 아니라 불평등의 극복을 목적으로 하는 모델이지요. 이 모델은 부유층과 빈곤층이 생활양식의 변화를 전제로 하여 '노력의 협상'과 관련된 협약을 맺고 다양하게 등장하는 인위적 위험에 대처하여 상호 책임성을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생활양식의 변화는 풍요의 이면에 감추어져있는 복구할 수 없는 환경파괴에 직면하여 생활양식을 바꾸고 생산성주의에서 생산성 지향으로 태도를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부유층과 빈곤층간의 '노력의 협상'은 부유층이 지니고 있는 노동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켜 고용기회를 확대시키는 것이지요. 여기에서 국가의 역할을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일방적인 후퇴가 의존성이 아닌 자율성을 창출하는 복지서비스의 공급과 빈곤층과 부유층의 협정을 이끌어 내고 사회적 책임성을 고양시켜야 하기 때문에 다양한 자발적 결사체들과 협조를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왜 여기서 하필이면 제 3의 길을 이야기 하는 것일까요? 멕시코는 가장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 정신적/사회적인 폭력을 경험한 국가 입니다. 미국식 복지제도는 빈곤층보다 중간계급에 맞추어져 있고 이들의 영향을 받은 그들의 정치 경제 구조또한 이러한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지요. 이런 이유로 제가 하고 있는 사업의 구매자들이 멕시코 시티를 중심으로 하는 북부지역에 매몰되어 있고 상대적인 불평등의 성장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조차 필요없다는 걸 안다 저 노을지는 물결이 행복으로 이르는 길일 수만 있다면 다시 어두운 방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네 곁에 누울 수 있으리라 오늘 저 강물에는 여전히 석양이 드는데 들리는 것은 우리가 꿈꾸었던 그 물소리가 아니다 잔잔한 물주름을 만들어내던 그 웃음도 아니다
발치에 부서지는 텅빈 물결은 더 이상 돌아가는 길을 말해주지 않는다. 한때 노을에서 금실같이 풀려나온 길 하나의 집으로 꿈처럼 밀려가던 아름다운 물결들 소리 없이 강 위에는 찬바람이 부는데 무심코 돌아보면, 석양에 물드는 반짝이는 창만큼 꿈꾸고 사랑했던 사람들이 저기에 있는데 허리를 안고 어깨를 기댄 채 강변에 앉아있던 이들이 저기에 있는데 언제나 머물 것만 같았던 행복을 위해 먼지를 쓸어내고 식사를 준비하고 때로 스프레이향으로 거실을 가득 채우고 누군가 자정 너머 취해 열쇠를 따고 월급 봉투를 던지고 울며 전화를 걸고 서로 다른 몸을 꿈꾸며 기어드는 하나의 침대 진실한 집이란 생각 속에 있을 뿐 푸른 뇌수 위에 희미한 그림자를 던지는 집 이 저녁 세상의 집 어디선가 빠져나와 아득히 물소리에 잠겨있는 눈빛들 느끼지도 못하도록 조용히 사라져간 순간들을 그리워하며 저렇게 무리지어 서성이다가도 혼자 저무는 이들
흐린 물결 한 올도 저 노을의 반짝임을 붙들지 못할 때 그대여 보라, 배수구의 악취와 탁한 가래침마저 삼키고 이미 이슥해진 제 길을 굽이쳐갈 뿐인 강물
실망한 자신을 다독이며 책망하듯 일으켜세우며 세상 끝에서나 되찾을 제 푸른 이마만을 죽도록 그리워하며 길을 가로막는 콘크리트 방책을 두들기는 비통한 주먹처럼 기어이 되살아나려는 저 숨죽인 몸부림 그 끝없는 거부와 슬픔의 몸짓 속에 나는 열쇠를 집어던진다, 용서할 수 없었던
모든 시간들을 집어던진다
그래, 언제였던가 무수한 절망의 굽이처럼 어떤 행복의 충고들도 무심히 귓전을 흘러가고 늘 그 자리였던 방을 싸고 돌던 세상의 미친 흐름들 오직 겹겹이 내린 커튼 사이 가늘게 흘러들던 거리의 출렁이는 불빛만이 강물의 기억처럼 메마른 벽 위에 흘러가던 곳 싸늘히 식어버린 무릎을 쓸어안고 당장 떠나고픈 갈망을 난폭하게 잠재우던 곳 내가 부서지든지 차라리 부서져버려야 했던 곳 책상 위에 텅빈 머리를 올려놓고 내 나이만큼 알약을 세고 있던 곳
-허혜정의 부서진 인간의 집에 흐르는 강물 전문-
우리 안에 있는 희망을 포기 하지 않는 우리가 되길 기도합니다. 행복한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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