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아카이브란 것이 있습니다.
자신이 본 영화 중 가장 마음에 남는 영화목록이랄까요
대부분 이런 영화들은 어떤 식으로든 글로 혹은 감상의 형식으로 남겨 놓는 법인데
써놓고서 포스팅 시켜 놓지 않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글을 쓰고 싶지 않거나
하는 반응을 보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오늘 소개할 영화도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제 기억의 형상 속에 참 오랜동안
남아 있는 영화였습니다. 바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입니다
2004년 개봉이후로 지금도 몇몇 시네마에서 재상영에 들어갈만큼
'따스한 시선으로 응시하는 내 젊은 날의 초상'이란 진부한 설명이
그리 비루하지 않은, 현실의 사랑으로, 다가오는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영화는 할머니가 끄는 유모차에 탄채 세상을 바라보았던 여자, 조제와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는 남자 '츠네오' 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마작 오락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우연히 듣게된 그녀의 이야기
그리고 정말 '우연하게 만나게 된 그들의 사랑'은 이미 예쁜 여자친구가 있던
취업준비생인 대학생 츠네오. 어떤 정확한 발화점이 있는지도 모른채
그들의 사랑은 시작됩니다.
그녀의 이름 조제는 프랑스의 소설가 프랑소와즈 사강의 '1년뒤'의 주인공 이름입니다
그러고 보니 사강의 작품은 은근히 많이 읽었네요. 프랑스 소설이라곤 뒤라스의 '연인'
이나 엘뤼야르 시선집 정도가 전부였는데....<브람스를 좋아하세요>'란 소설을
그냥 참 머리 아프지 않게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참 외롭게 생을 끊낸 작가는
항상 자신의 사랑이야기를 소설로 써내는것 같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최근 읽고 있는 책의 내용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프랑스와 세클라란 인류학자가 쓴
이별의 기술-인류학자가 바라본 만남과 헤어짐의 열 가지 풍경, 이란 책입니다
여기서 학자는 우리들의 왜 헤어지는지, 그 심리적인 기제가 무엇인지를 다양한 사랑의 방식을
통해, 계층의 사랑을 통해, 중세에서 빅토리아 시대의 위선적인 방식의 사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해부적인 시선의 메스를 들이대며 설명합니다.
이 영화를 저번까지 포함해서 사실 3번을 보았는데요
이 영화를 보면서, 자꾸 습관적으로 무슨 꼬리표를 붙이면 좋을까 하는 생각에
그냥 단순하게 '한 편의 성장소설' 같은 영화다. 라고 생각해보곤 했습니다.
청춘의 한복판에서 사랑이란 방정식을 풀어가며 세상에 대한 인식 혹은
입사식(initiation)을 하는 소년/소녀의 이야기. 뭐 이렇게 보니 좀 간단하기도 하고
편하게 범주화를 시킬수도 있고 그렇더라구요.
첫사랑의 기억이 떠오르는 영화였습니다.
그들이 갔던 동물원 속 호랑이의 모습이 그랬고, 조개형상의 침대에서 잠을 잤던
초짜 연인들의 모습은 '내 젊은 청춘의 시간의 연대기를 구성하는 뜨거운 사랑'의 한 쓰린
단편을 통해 사랑이란 이렇게 뜨거워졌다가 또 식기도 하는 것이라는
담담한 시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별은 언제나 우리의 연애 속에 잠재하고 있고, 거기에 노출된 우리들의 초상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우린 또다시 고독해지고…. 모든 게 다 그래.
그냥 흘러간 1년의 세월이 있을 뿐이지.” 이누도 잇신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극중에서 여주인공의 입을 빌려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1년 뒤>를 들려주고 있지요
저는 좀 어찌된것인지 장애인을 다루는 영화들을 볼때
좀 날카롭습니다. 예전 '작은신의 아이들'에서 부터 이창동의 '오아시스'까지
사회적 참여와 현실을 드러낸다는 이유만으로
한편으로는 장애우니, 그들도 우리처럼....이란 진부한 문구들을 허공에 날리며
그들의 사랑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것인마냥, 혹은 그들의 사랑을 가로막는 것이
사회적 차별이나 냉담한 시선이나 뭐 이런 외적인 것으로 자꾸 돌리려는
비판적이거나 도덕적인 목소리의 영화를
감독 이누도 잇신은 철저하게 거부합니다
겨울바다의 풍경이 아련하더군요.
그러고 보니 90년 첫사랑을 보내고 갔던 것도 그 비루한 겨울 바다의 풍경이었습니다
참 뜨거웠다고 믿었는데, 그 사랑은 온데 간데고 없고, 제 손에는 엉뚱하게
디어도어 루빈이란 사람이 쓴 '절망이 아닌 선택'이란 책이 놓여있었죠
자기증오에 빠졌던 적이 있고, 내 실수가, 내가 한 작은 어리석음이
사랑을 놓친, 내 청춘의 흐려져버린 마음의 좌표 위에서
표류하고 있던 그때가 내게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너무나도 담담해져버린 남자의 시선을 통해 영화는
마치 '사랑이란 진부한 통과의례'를 경험하는 우리들의 감성을 포착합니다.
세월이 흐르고 또 그렇게 몇번의 사랑을 하고
이루지 못하고, 내가 좋아했던 사람도 있고, 나를 좋아해주었던 사람도 있었고
그렇게 세월의 힘속에 갈색빛 더깨가 짙어진 송피껍질의 상흔처럼
문질러도 피가 나지않는 무덤덤해진 마음의 상태에 이르기도 하고.......
하긴 그런 과정에서도 사랑은 나타나더군요.
그래요......소설의 문구처럼 1년뒤엔 나도 어떤이를 기억하지 못할때가
생기기도 하고 상대방이 나를 그렇게 풀어주기를 바랄때가 있더라구요
그 아련함이 가슴을 애이기는 하지만, 그 환상의 물매로 부터 벗어난
조제는 이제 그녀를 가두었던 유모차에서 벗어나 혼자 물건도 사고
다시 한번 세상에 그냥 그렇게 '우리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보고 응시하고
슬퍼하고, 또 사랑하고 이런 연쇄의 고리 속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겠죠
청포도 익어가는
따가운 여름햇살에
파란 두 마음이 하나되어
그윽한 포도향기에 파묻혀
손에 손잡고 무르익던 첫사랑
청포도 익어가는
고향들녘에 내리는 소낙비
일곱색깔 무지개 동산에 걸리는 날
가슴이 하얗게 떨려옴을 삭히지 못한 채
소매자락 붙잡고 사랑을 고백했었지
청포도 익는 여름
그대가 옆에 다소곳이 앉아 있어도
설레이는 가슴은 하냥 텅빈 것 같아
수시로 일어나는 그리움 접어 두었다가
한량없이 쏟아부은 사랑가슴 잘게 부수었더니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여울목이었네
청포도 익는 여름
붉은 노을 산그늘 지기 전에 만나자던 그 동산엔
먼저 와 있는 내 긴 그림자뿐
청포도 익는 여름의 첫사랑-김진문의 시 전문
가을이 깊어갑니다.....환절기라 불리는 이중의 겹의 시간을 넘어서면
모든 상처들을 얼리고, 또 해빙의 시간을 맞이해야 하는
시간이 돌아오겠지요. 이렇게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늦가을은 처연합니다
파리의 내 연인에게......내 사랑을 전합니다. 쥬템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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