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영화에 홀리다

나 없는 내 인생......

패션 큐레이터 2006. 10. 31. 01:39

 

저는 시한부 인생을 다룬 영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예외조항을 두어야 할것 같습니다.

인생에서 나를 되돌아 보게 하는 참 맑게 슬픈 영화 한편을 보았습니다.

 

이제까지 저는 델러웨이부인과 영화 귀향에 대해 썼습니다.

여성영화 3부작중 이제 마지막 작품 '나 없는 내 인생'에 대해 써야 할 차례입니다.

결혼에 대해 썼고, 딸과 어머니에 대해 썼습니다.

이제 마지막 바로 나 자신을 되돌아 보는 영화

영화의 환타지는 이제 진부한 주제들의 여행을 마치고 드디어

바로 나 자신을 살펴볼 기회를 부여하며 다가옵니다.

 

영화 속 주인공 앤.....23살, 아직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나이

커트 코베인의 너바나가 그녀의 삶을 사로잡던 17살, 지금의 남편을 만나

아이를 낳고 또 두번째 아이를 낳고 실직상태인 남편과 함께 친정엄마의 집 뜰의 트레일러에서

살아가는 그녀. 밤이면 대학에서 청소부를 일하고

참 쉽지 않을 삶을 그러나 행복하게 살아가는 그녀는 복통으로 쓰러집니다.

자궁암 말기. 이제 남은 시간은 2달.

 

 

영화는 이제 이 두달동안 그녀가 죽기전에 해야할 10가지의 리스트를 중심으로

그 이야기의 축을 이끌어갑니다.

 

1. Tell my daughters I love them several times.
아이들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랑한다고 말해주기

2. Find Don a new wife who the girls like.
남편에게 어울릴 아이를 좋아하는 새 아내 찾아 주기

3. Record birthday messages for the girls for every year until they're 18.
아이들이 18살 될 때까지의 생일 축하 메시지 녹음하기

4. Go to Whalebay Beach together and have a big picnic.
다 같이 웰러비 해안으로 소풍가기

5. Smoke and drink as much as I want.
하고 싶은 만큼 담배피고 술마시기

6. Say what I'm thinking.
내 생각을 있는 그대로 얘기하기

7. Make love with other men to see what it's like.
다른 남자와 사랑하는 것이 어떤지 알아보기

8. Make someone fall in love with me.
누군가 날 사랑하게 만들기

9. Go and see Dad in Jail.
감옥에 계신 아빠 면회 가기

10. Get false nails. And do something with my hair.
손톱 관리 받기, 머리 모양 바꿔보기

 

그러고 보니 남편과 6살/4살 아이들을 돌보고 살아오느라 잊어버린 17살 이후로

모든 기억들, 행복할수 있었던 기회들, 하고 싶었던 그녀의 추억 만들기는

이제 기억의 심연 속에 저장된 압축 파일을 풀어내듯

영화의 실타래와 맞물리며 하나하나 편안한 그녀의 독백과 더불어

캐나다 벤쿠버의 천혜의 자연을 배경으로 그렇게 자연스럽게......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고 보니 영화속 배경들이 너무 낮익어 자세히 보았더니

벤쿠버더군요. 이곳에서 유학시절을 보내서 그런지요. 그녀가 먹던 몰슨 맥주도 생각나고

그녀가 새로운 사랑을 찾아 고민하고 나누고 입맞추던 그 갑곶의 풍경도

빛의 풍광아래 다시 한번 기억의 형상합금을 조려냅니다.

 

 

영화는 죽음을 앞두고 결코 눈물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참 예쁘게.....소설가 낸시 킨케이드의 '침대를 땟목삼아(Pretending the Bed is Raft)란

단편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대학 4학년 처음으로 영화판이란 곳에 들어가서

만들었던 영화가 '8월의 크리스마스'란 영화였습니다.

 

군산에서 촬영된 이 영화의 현장을 보면서

영화를 한다는 즐거움이 어떤 것인가,참 짦은 시간이었지만 배울수 있었던 때가

제게도 있었더군요. 이 영화도 남자가 시한부생명을 살아갔는데

그 남자는 이제 또 다른 여자의 삶을 빌어 35살, 내 인생의 창으로 더깨더깨 끼어있는

녹청색 추억의 녹을 옅은 무명빛 천으로 닦아내며 그렇게 다가왔습니다.

 

 

죽음을 소재로 하는 것은 항상 진부하면서도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들의 생의 템포를, 그 시간성에 대한 반성을 이끈다는 점에서

꼭 있어야 할 이야기 구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대부분은 생의 지연을 위해 투쟁하고

싸우지만, 그들은 시간의 흐름속에서 조용히 자신을 되돌아 보고 나를 둘러싼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할까 고민하지요.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만약 제 아내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라면

나는 어떻게 될까? 아니 내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라면

내가 하고 싶은 10가지가 뭘까하고요.....

그래서 이렇게 적어봅니다.

 

1. Tell my wife I love her several times.
아내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랑한다고 말해주기

2. Find my wife a new husband who the girls like.
아내에게 어울릴 아이를 좋아하는 남편 찾아 주기

(단 여기엔 몇가지 조건이 따릅니다)

 

-More Handsome than me

나 보다 잘 생길것

 

Support her financially enough for her to persue her career

-아내가 미술을 평생 걱정없이 작업할수 있도록 도와줄수 있을것

 

Good Cook / Laundry / Know the way to pull shoe string

-밥을 잘해야 할 것(아내는 전혀 밥을 할줄 모름)/세탁기는 혼자 돌리기/아이들 신발끈 묶어주는

법을 아는 남자여야 함

 


3. Bring my sister to Canne where I take a picture for her
누나를 프랑스의 칸느로 데려가서 사진 찍어줄 것

4. Write a email for my reader online to say I will be taking a long journey
독자들에게 오랜동안 여행을 떠나니 이제 블로그는 접는다고 뻥을 치는 메일 쓰기

 

미지에게는 오빠가 가장 소중하게 모아온 1325권의 도록을 이제는 관리하기

귀찮다고 우겨서 보낼것. 티파니누나에겐 통독기념으로 받은 곽선희 목사님 친필사인이있는

성경책을 남기고(압구정 통털어3권임)/봉조님에겐,멋진 카메라렌즈를 선물로/

김충순선생님께는 라만차의 기사를 내 모습으로 하나 조각해달라고 우겨볼것이고

영화를 좋아하는 우리 총아님께는 예전 읽었던 필름/메소드 원서를 보내고

강처럼 님께는.....이제까지의 모든 삶의 컨설팅비로 내 인세의 30%를 드리니 월드비전을

비롯 좋은 단체들을 위해 관리해주십사고 부탁하기

문화사랑님/늘미소님/유메미루님/친구라는이름님/.....모든 분들에겐 감사의 기도를

홍기의 글을 가장 많이 사랑해주신 박이사님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유고원고를.....

이외에도 너무 많지만....이곳이 있어서, 내가 만난 모든 이들로 인해

참 난 행복한 사람이었다고 꼭 블로그에 포스트 해놓기

 
5. Pray and Encourage as much as I want.
하고 싶은 만큼 기도하고 사람들 만나 대따 칭찬 늘어놓기

6. Just Put a big smile on me instead of giving opinion on my wife's art work
아내의 작품을 보며 크게 웃어주며 꼭 안아줄것

 



7. Make love with other woman to see what it's like.
다른 여자와 사랑하는 것이 어떤지 알아보기(현실적으로 좀 자신없다)


8. Make mom talk to me."I love you'
일평생 무뚝뚝했던 우리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 들어보기

9. Listen to my father's playing violin
아빠의 바이올린 연주를 꾹 참고 오래듣기

10. Get false nails. And do something with my hair.
손톱 관리 받기, 머리 모양 바꿔보기 거기에 가죽옷을 한번 입어보고 싶다는

 

자 이제 여러분은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그냥 웃자고 적었는데 적으면서 눈물이 나네요.......

 

템포를 조정하는 생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이곳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은 소중했기에, 헤어질때도 정말 멋지게 헤어질수 있는

우리가 되길.....그렇게 기도해봅니다. 행복하세요

 

18999

'Art Holic > 영화에 홀리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0) 2006.11.05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0) 2006.11.03
우리들의 귀향  (0) 2006.10.23
델러웨이 부인을 생각함  (0) 2006.10.22
라디오 스타의 목소리  (0) 2006.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