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영화에 홀리다

우리들의 귀향

패션 큐레이터 2006. 10. 23. 23:41

 

 

오늘은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귀향'이란 영화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어제 말씀드렸듯이 여성영화 3편중 두번째 이야기 입니다.

델러웨이 부인이 결혼과 정체성의 문제를 다루었다면

이제 '귀향'은 딸과 어머니의 문제를 다룹니다.

 

마드리드에 살고 있는 젊고 아름다운 라이문다(페넬로페 크루즈역)

와 딸 파울라, 그리고 빈둥거리며 놀고 있는 남편, 그녀의 여동생 쏠레

이렇게 그들은 진부한 생을 살아갑니다. 사춘기에 접어든 딸과

룸펜 남편을 부양하느라 라이문다의 삶은 참 버겹기만 합니다.

이전 헐리우드 영화에서 보았던 페넬로페 크루즈를 생각해선 안된답니다

 

 

억척녀로 분신한 그녀의 모습에 사뭇 놀랐습니다.

영화 속 그녀의 모습이 마치 우묵배비의 사랑에 나왔던 여주인공 같더구요.

남편은 그녀의 딸을 겁탈하려 하고 그런 그를 칼로 찔러죽이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어렵게 남편을 이웃집 식당의 냉장고에 유기하고

숨죽이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그녀는 이제 생의 흔적들을 지우고 싶은

마지막 탈출구에 서있습니다.

 

 

그러던 차에 쏠레에게도 특이한 일이 일어납니다

위 사진의 왼편, 솔레는 불법 미용실을 운영하며 살아갑니다.

고향인 라 만차에 다녀오는 길에 그녀는 엄마의 유령을 만납니다.

사실은 유령이 아니라 실제로 죽은줄 알았던 엄마가

돌아온 것이죠.

 

엄마를 만나며 그들의 인생에는 조금씩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죽은줄 알았던 엄마가 돌아오며 듣게 되는 이야기들....

희망이 없다고 느낀 그 순간에 엄마와 만나는 그들의 이야기는

비단 스페인적 열정의 흔적이 아니더라도

지금 이곳,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를 상정하고 살아가는 모든 우리들에게

적용되는 이야기입니다. 세월이 흘러가며 엄마의 인생을 더욱 사랑하게 된다는

이 세상의 딸들에게 바치고 싶은 영화였고 헌사였다고

감독은 말하고 있습니다

 

 

감독 페드로 알마도바르에게 '귀향'은 말 그대로 돌아옴입니다.

그것은 엄마의 존재를 다시 생각하고 그 곳으로 다시 귀소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원이 존재했던 곳. 삶의 근본과 원류인 엄마에게로 말이죠

 

개인적으로 스페인영화를 그리 좋아하진 않았습니다.

루이 브뉘엘을 보았고 이후 알마도바르를 배우고 그의 영화를 보았지만

사실 많은 부분들이 대학시절엔 이해불가했습니다.

그의 영화에  촘촘히 박혀 있는 스페인적 기질과 붉은색에 대한 집착

그것은 모성의 뜨거움과 어머니의 피를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혹은 그 속에서 새로운 생을 꿈꾸는 것을 은유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소 코메디풍으로 구성된 이 영화는 시종일관 상당히

많은 웃음을 우리에게 제공합니다.

오늘 새벽....아침일찍 출근길엔 비가 내리고 질퍽해진 땅의 기운속에

따스한 온기가 서린 그 무언가를 생각하게 했습니다.

 

아마도 어머니란 존재는 그럴 것이라고

그냥 믿어보게 됩니다. 거칠은 표면과 질감으로 가득한 생의 캔버스에

유일하게 따스한 형태와 생명을 부여해주는 그런 빛깔의 물감처럼 말이죠

 

 

엄마는 죽어서도 딸을 걱정하나 봅니다.

이제 그들은 혈육이기 전에, 여성들의 연대를 보여주는 힘이 되고

하나의 '함께함'의  또다른 미학을 보여주지요

 

알모도바르가 좋은 이유는

이러한 관계 설정에 있어, 최루성으로 끝나지 않고

판타지적인 요소들을 끌어들여 드라마와 접목시킨 다는 점이겠지요

그에게 있어 모성은 항상 중요한 테마였고, 그 곳에서 그는 움켜쥐고 유영하는

존재였으니까요

 

 

이렇게 나이를 먹어서도
엄마와 헤어질 땐 눈물이 난다
낙엽 타는 노모(老母)의 적막한 얼굴과
젖은 목소리를 뒤로 하고 기차를 타면
추수 끝낸 가을 들판처럼
비어가는 내 마음
순례자인 어머니가
순례자인 딸을 낳은
아프지만 아름다운 세상

늘 함께 살고 싶어도
함께 살 수는 없는

엄마와 딸이

서로를 감싸주며
꿈에서도 하나 되는
미역빛 그리움이여

이해인의 '엄마와 딸' 전문

 

 

 

根源缺落强迫 異邦强迫

그 먼 존재의 시원, 내가 원래 있어야만 하는 장소로 돌아가기

윤대녕의 '은어낚시 통신' 중에서

 

가을이 깊어갑니다. 거창한 말을 하진 못하겠습니다

세월이 흘러갈수록 엄마가 따듯하다기 보다는 많이 불쌍하고 애처롭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가 많이 밉고 때로는 혼내고 싶습니다. 스스로......

그렇다고 괜한 눈물 짓고 싶진 않습니다.

그렇게 하면 엄마가 슬퍼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원래 있어야만 하는 장소로 돌아가야 하는 것

그 도의 시간들이 충만하게 깊어가는 가을상념의 포말 속으로 녹아들어가기를

그렇게 바라고 또 바래봅니다. 세상의 엄마들에게 축복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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