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영화에 홀리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패션 큐레이터 2006. 11. 5. 03:31

 

2006년 제 생을 환하게 밝히는 한편의 영화를 보았습니다.

새벽의 시간....떨림은 흔적인 제 폐부를 가득하게 매우고 아직도 꺼지지 않은채

화면 속 심령들의 이미지가 유령이 되어 내 영혼의 무덤가를 흔들고 갑니다.

오늘에서야 왜 이미지(image)란 말의 어원이 이마고...유령이란 뜻인지를 배우게됩니다.

 

대학시절부터 켄 로치를 사랑했지만

이 영화만큼은 정말 특별하게 다가오는 영화였습니다.

깊어가는 가을, 상념은 아주 오래전, 내가 기억했던 이념과 혁명의 무상을

마치 기억의 환약을 한줌 손에 쥐어주듯 그렇게 먹어보라고 나를 유혹합니다.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보았습니다.

영국 최고의 좌파감독, 켄 로치

 

 

 

 

한때 그의 영화에 대한 에세이를 쓰고 기말 작가 연구시간에

그를 썼지만, 여전히 거장의 목소리는 화면 곳곳에 베어 올곧은 그의 정치성의 성향들을

새로운 미학의 틀속에 아로세기고, 진정한 비판의 힘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의 배경은 1920년대, 8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영국의 지배를 받던

아일랜드의 작은 산기슭마을을 배경으로 합니다. 이전부터 영국의 지배로 부터 벗어나려는

움직임은 바로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신 IRA의 역사와 연결되어 있고

그들의 저항의 역사와 긴밀한 관계를 맺습니다.

 

 

푸른빛 보리가 언덕을 가득 메우는 저개발의 마을

착취와 폭행으로 얼머무려진,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 이제 영국으로 의사가 되기 위해 떠나는

주인공 데미언은 아일랜드인에 대한 영국군의 횡포를 보고

IRA에 들어가게 됩니다. 바로 그곳에는 그의 형 테디와 데미언의 연인 시네이드가

있습니다. 그들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하여 싸우고, 결국 영국과 아일랜드는 평화조약을

 

맺게 됩니다. 그러나 북 아일랜드는 영국령으로 그냥 놔두는 불평등 조약앞에서

끝까지 싸워서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는 동생 데미언은

서로 다른 이념적인 선택을 하게 되고 결국 그들은 내부의 적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왜 이 영화의 제목이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인가를 알게 되면

사실상 이 영화의 이해는 아주 급속도로 빨라지게 됩니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시인이자 영문학자였던 로버드 드와이어 로이스가 쓴 아일랜드의

대표적인 서정시편입니다. 문제는 이 시의 배경을 아는 것이 이 영화의 줄거리와

그 테마를 이해하는데 아주 필수적이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아일랜드와 영국의 역사, 그 중에서도 근현대사인 아일랜드의 독립전쟁과

그 부산물의 역사들을 조금씩 이해하면 사실상 이 영화의 표피적인 이해는 쉬워집니다.

자 우선 이 시에 대해서 이야기하도록 합니다. 이 시의 배경은 1798년 부활절 봉기에 뛰어든

한 젊은이의 운명을 노래한 시입니다. 그는 이 봉기를 위해 사랑하는 여인을 버려야 합니다.

 

이 봉기를 통해 그는 사랑하는 여인을 잃습니다. 그리고 이 혁명 이후 아일랜드에선

하나의 전통이 생기게 되는데요. 그들은 보리를 키우고 난후

보리에 크로피홀(Croppy-Hole : 시체란뜻, 작가주)이란걸 표시하게 됩니다.

이것은 당시의 봉기와 혁명에 던져진 수많은 저항군들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하지요

이것은 또한 끊임없이 지속되는 영국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바로 보리는 여기에서 저항의 상징인 것이죠.

 

  

이 시의 원문을 올려봅니다.

제가 미약하나마 번역을 해서 올려보았는데요. 약간 내용의 이해를 위해

직역에 충실하게 해보았습니다.

I sat within the valley green, I sat me with my true love
My sad heart strove the two between, the old love and the new love
The old for her, the new that made me think on Ireland dearly
While soft the wind blew down the glen and shook the golden barley
 
내 사랑하는 여인과 초록빛 언덕 아래 앉았네
슬픈마음은 두갈래로 흔들리네, 옛사랑과 새로운 사랑의 고민으로
그녈 향한 옛마음과 나라를 사랑하는 새로운 마음
부드러운 미풍이 골짜기 아래를 지나며, 황금빛 보리를 흔드네 
'Twas hard the woeful words to frame to break the ties that bound us
But harder still to bear the shame of foreign chains around us
And so I said, "The mountain glen I'll seek at morning early
And join the bold united men, while soft winds shake the barley"
 
우리를 구속하는 끈을 부서뜨릴  저 상처의 말들보다
우리를 둘러싼 저 참략의 족쇠가 더욱 견디기 어려운 부끄러움인것을
산골짜기로 아침에 나는 올라가, 함께 하는 동지들에게로 가네
 부드러운 바람은 보리를 흔들고 있네

 

 

While sad I kissed away her tears, my fond arms round her flinging
A yeoman's shot burst on our ears from out the wildwood ringing
A bullet pierced my true love's side in life's young spring so early
And on my breast in blood she died while soft winds shook the barley
슬픔속에 입맞춤으로 사랑을 보내고, 그대를 안은 내팔은 흔들리네
의용병의 총탄이 우리의 귀에 쏟아지고 원시림이 떨리고,
총탄이 내 청춘의 사랑을 앗아가고 내 가슴속에 쏟아지는 피.....그녀가 죽었네
부드러운 바람은 보리를 흔들며....
But blood for blood without remorse I've taken at Oulart Hollow
And laid my true love's clay cold corpse where I full soon may follow
As round her grave I wander drear, noon, night and morning early
With breaking heart when e'er I hear 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

피에는 피로....후회없이 나는 따르네

내 사랑의 차디찬 주검을 놓이고, 나는 따라가네

그녀의 둥그런 무덤가를 밤낮으로 서성대며.....

부서지는 마음속, 나는 비로소 듣네, 보리를 흔드는 저 바람소리를.....

 

 

이 영화속엔 참 많은 피냄새가 납니다.

푸르게 옷을 벗은 저 민중들의 보리밭에서 청신함 보다는

상처와 역사, 아픔속에 짓밣혀버린 기층민중들의 분노와 사랑이 함께 어우러집니다.

 

 영화에서 감독은 분명히 영국의 제국주의를 수도없이 비판하고 있고

이것은 이라크에 대한 영국과 미국의 태도라고 분명히 그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 작품이 영국을 반대하는 영화가 아니라 계급간의 연대에 관한 영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영화속에서 그가 비판하는 영국 제국주의의 면모들,

녹슨톱으로 손가락을 자르고 무기가 없는 주민들을 폭행하고, 이름을 대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람을 학살하는 형태의 모습들을 여과없이 드러내지요.

 

로치가 주인공으로 내세운 건 온건한 보수적 민족주의자 테디(패드레익 들레이니)가 아니라

과격한 진보주의자 다미안(킬리언 머피)입니다. 아일랜드 독립운동의 영웅 마이클 콜린스가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자 제임스 코놀리를 지지하는 것이죠. 이 부분은 정말이지 충격이 큽니다

(극중 대사. “우리가 당장 내일 영국군을 몰아 내고 더블린 성에 녹색기를 꽂는다 해도

사회주의 공화국을 조직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노력은 모두 헛될 뿐이며 영국은

계속 우리를 지배할 것이다. 지주와 자본가, 상권을 통해”).

 

그도 그럴것이 아일랜드 독립운동의 아버지였던 마이클 콜린스에 대한 기존의

시각을 상당히 넘어서는 해석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영국과의 협정이후 IRA 요원에게

암살을 당했습니다. 이 당시 과격파와 온건파는 서로 내부의 적이 되어 싸우게 되지요.

바로 주인공 다미안은 과격파의 한 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사실상 마이클 콜린스에 대한 해석은 아직까지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를 어떻게 읽어내야 하는가가 사실 이 영화의 후반부에서 중요함에도 불구하구요

중요한 것은 결국 혁명이란 것도 내부의 적으로 인해 내전이 되고

그들은 다시 한번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일을 하게 된다는 것이죠.

 

마이클 콜린스가 가져온 온건한 협정안을 둘러싸고

계층간의 이해는 첨예하게 변합니다. 그들은 서로를 향해 총칼을 올립니다.

사실상 콜린스는 암살을 당하게 되고, 이후 아일랜드의 역사에서 지워지는 인물이 되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이 사람을 죽인 패거리가 아일랜드의 초대 대통령과 그 수반이 된다는 점입니다.

 

 

혁명세력이 실제로 정치화 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투쟁이랄까요

죽인자에 의해 은폐되고 지워지는 역사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레 했습니다.

사실상 발레리도 북아일랜드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스니까요

 

결국 넌 이상주의자라고 공격하는 형에 의해

처형되는 데이미안....이 영화는 철저하게 로이스의 시처럼.....

혁명과 투쟁의 무상, 그 속에 끼여있거나 혹은 던져진 우리들의 내면적 실체들을

참 무거운 시선으로 내뱉어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일랜드 출신의 친구들을 몇명 가지고 있습니다.

예전 영국유학을 가기 위해 영국 문화원을 다닌적이 있는데요. 여기에서도

스코티쉬 선생님들, 런던 코크니 선생님들은 아일랜드 출신 선생님들하고는 말도

안하더군요. 정말 기도 안찰정도였습니다. 서로 얼마나 욕하고 비난들을 하던지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경상도/전라도의 상호 비방은 그 정도가 낮음을 확인했을 정도였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혁명과 투쟁의 무상성

혹은 이 결과에 대한 지식인들의 환상이 깨어질때, 물매가 깨어질때

우리들이 얼마나 '정치적 환상과 낭만'에 빠질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혁명에 몸을 바치고, 이 이념을 위해 사랑하는 동생을 죽이기까지 하고

그렇게 이 조국이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영화입니다.

물론 투쟁을 할때는 그들은 굳건한 결속을 자랑하는 이들이지만, 이 결과값을 가지고

 

논공행상을 하고 나눌때, 얼마나 치졸할 정도의 암투와

권력싸움이 내부에서 일어나는지를, 이 영화는 또 다른 시선으로 보여주지요.

영국이나 미국이나 그들의 제국주의적 행태는 오늘날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고

이것은 또한 이라크라는 희생양을 통해 명확히 투사되고 있구요.

 

그들....영국은 이제 북아일랜드만을 자신의 영토로 하고 나머지를 놓아줍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지요. 오늘날 미국 내부에서도

이라크전에 대한 미국의 오만과 실수에 대해 비평하는 사람들이 좀 많던가요

그들의 마음을 얻지는 못했으니까요. 아무리 잘 나빠진 대의가 있다 하더라두요

 

 

혁명속에 산화한 꽃이 된 그 많은 저항의 이름들

이 영화를 보면서 왜 김수영의 풀을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적은 항상 내부에 있다는 것. 그것과 싸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것인지를

이 영화는 제게 참 비루하고 차가운 목소리롤 말해주는듯 합니다. 글이 쉽게 풀리질

않네요. 원체 엉켜있는 실타래를 풀다보니 쉽지 않았습니다.

원래 저같은 천한 사람들은 천재의 작품을 읽기가 어려운 법입니다.

이해하시고.....깊어가는 가을, 많은 상념의 무늬 속에 빠져보시길

 

엔야의 Hope has a place 라는 곡을 골라보았습니다.

우리안에 가득한 희망의 자리를 항상 생각하는 우리가 되길 기도하면서......

그러고 보니 엔야도 아일랜드인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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