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영화에 홀리다

호로비츠를 위하여

패션 큐레이터 2006. 10. 18. 02:01

 

집에 들어오는 길......

가을이 깊어감을 감지합니다. 어느새인가 길어져버린 내 외투깃과 소매사이를

흐르고 지나가는 바람의 깊이는 그 체감의 온도가 서늘합니다.

마음도 깊어지고, 사람 속 살아가는 내 마음의 풍경도 서늘해질쯤엔

따스한 피아노 소품을 들어보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어린시절.....대학캠퍼스를 향해 열려있는 내 암갈색의 우든 프레임 창밖으로

10월의 시원한 햇살들이 그 빛살무늬들을 쪼개며

내 방안에 가득 베어나올때.....마다 내 방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피아노 앞에 앉아있곤 했습니다. 그때는 사실 청음능력도 부족하고

감각도 없다고 항상 야단을 맞았고 피아노를 치는 것이 참 싫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후회하지만, 아니 지금처럼 무언가를 배우는걸

어린시절 부터 좋아했다면 참 지리했던 피아노 수업이

행복했을텐데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꽤 오래전 러셀 셔만이란 피아니스트가 쓴 '피아노 이야기'란 책을 읽은적이 있습니다.

그는 피아노를 가르치는 선생님이지만 그의 책에는 피아노란 작은

소우주를 둘러싼 그의 철학이 텍스트 곳곳에 박혀 있어서 참 많은 생각을 하며

읽어냈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종종 영화속 아이처럼 그렇게 피아노 앞에

앉아있곤 했습니다.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는 바로 피아노 선생님과 천재소년의 이야기입니다

뭐 이런 영화적 줄거리들은 많이 있습니다만 조금 다른 일면들이

가미되어 있지요. 흔히 이런 영화의 선생님들은 가장 전형적인 것이

자기가 이루지 못한 꿈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지나친 열등감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욕망을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투사하지요.

 

 

영화속 선생님 지수의 모습도 그렇습니다. 피아노란게 사실

전문가로 연주자가 되기위해 재정적인 뒷받침이 얼마나 되어야 하는지를 너무나도

잘 아는 저로서는 지수를 보며 마음아프고 한편으로는 자신의 인생을

빛내줄 천재소년에 대한 열망또한 어떠리란걸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피아노를 잘 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청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내 주변을 둘러싼 풍광의 소리를

소화하지 못하는 사람이, 감지하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건반을 누른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에 나오는 자칭 아이들을 데리고

음악학원에 오는 아줌마들을 보면서 쓴 소리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자기를 닮아 절대음감을 가졌다고 하질 않나

제가 어렸을때 좀 피아노를 쳤는데 감각이 좋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둥

우리들의 모습이 참 잘 나타나 있습니다.

 

 

피아노 연주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넋을 잃은 사랑의 달콤한 향기뿐만 아니라 하찮은 벌레, 독사, 수증기,

심지어 은하계도 모두 피아니스트의 손안에 있다.

 

꼬마아이는 자연의 소리를 듣고 건반으로 그 감정을 녹여냅니다.

이런 청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물론 훈련을 해서 어느정도는 해낼수 있지만

미안하게도 천재는 하늘이 내는 것이라고 저는 믿는 사람입니다.
그 절대음감을 가진 아이는 아쉽게도 약간 자폐증 기색이 있습니다.

물론 어린시절 자신을 위해 돌아가신 부모님 때문이지만

그에겐 반드시 극복해야 할 대상이자 숙제이기도 하죠

 

 

 나는 한 학생에게 회화의 명암법에 관한 짧은 논문을 쓰라고 하고,

또 다른 학생에게는 화초를 몇 그루 사서 성장주기에 관한 글을 쓰라고 하고,

또 다른 학생에게는 러시아의 찻주전자인 사모바르의 이미지에 대한 비유적 표현을

스물다섯 가지 써보라고 했다. 이런 것은 결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 힘든 일이 아니며,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훈련일 뿐이다.

 

러셀셔만의 글을 읽고 또 읽어봅니다.

피아니스트는 단순히 악보위의 기보법을 따라 음을 해석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에겐 자신만의 해석이있어야 하고 여기엔 삶으로서의  은유를

배워내고 익혀야만 가능한 부분들이 무궁무진하지요.

 

 

투수들 중에서 최고의 예술가는 호위 폴렛이었다.

그의 정교한 기술은 피아니스트 디누 리파티의 그것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열성 팬만이 알겠지만, 폴렛은 단순한 변화구가 아니라 구속이 시시각각

변하는 변화구를 던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다양한 변화구를 던질 때 항상

완벽한 레가토 동작으로 던졌다. 다저스에도 그와 비슷한 기교파 왼손잡이

투수가 있었다. 엘윈 ‘프리처’ 로는 배우 월터 브레넌처럼 꾀가 많고 교활했다.

 

셔먼은 그의 글에서 항상 피아니스트는 세상과 교감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영화속 피자집 주인 아저씨의 말은 이런 식의 핵심을 재미있게

끌어냅니다. 저도 피자를 구우면서 태워먹을때가 있거든요

이제 아이만의 방법으로 피자를 구어야 하지 않을까요 라고 말입니다......

 

 

최근 영국에서 나온 패션 드로잉 코스라는 책을 완역했습니다.

생에서 첫번째 역저인데 그 맛을 제대로 살려 번역했는지 참 걱정됩니다.

이 책을 번역하면서 항상 마음에 들었던 것이

 

영감을 발견하고 키우고 그것을 디자인에 적용하는 법이었습니다.

우리가 복식사를 공부하고, 박물관에 가고, 자연속 잎파리의 모습을 보고

다른 나라를 가고, 문화를 익히는 것은 결국 이 모든 영감이란 숙제를 풀기위한

과정인지도 모릅니다.

 

물론 영감을 제대로 옮기기 위해서 드로잉을 할때 다양한 매체와 물성을 이해해야

하듯 피아노는 손가락의 역할과 움직임의 물성을 알아야 한다고

셔면은 이야기하지요. 엄지손가락이 이끄는 손바닥과

네 개의 손가락을 서로 밀고 당기며 춤추는 스페인 댄스의 파트너라고 비유하면서

둘의 밀접한 관계를 설명하거나, 엄지손가락은 항해사,

둘째 손가락은 수색대의 대장, 셋째 손가락은 사기꾼, 넷째 손가락은 병약한 누이라고

은유적으로 묘사면서 각 손가락의 역할을 특징적으로 알기 쉽게 전달합니다.

 

 

아이에게 자신의 열등감을 투사할때

그 욕망을 이루는 무기가 될때

아이는 불행해집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자식들에게 너무 공부를 강요하거나

우후죽순처럼 여러개의 레슨을 마구잡이로 가르치는 분들을 보면

교육의 철학을 이야기 하기에 앞서 과연 저것을 왜 가르치는지 이분들이

알고 저렇게 하나 하고 궁금한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요즘 천재열풍이 한국에 분다지요

꼬마시절에 세계를 제패하고 피아노를 세상을 놀래고....다 좋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0.001 퍼센트의 인구입니다. 이들이 되기위해 자신의 아이들에게

지나친 욕심을 부리는 부모가 너무나도 한국에는 많습니다.

 

 

아마 이글을 읽으면서도 그러실걸요

그럼요 맞아요....왜 애들한테 그러나 몰라...그래도 우리애는 저를 닮아서.....

애효, 한숨만 납니다. 예술교육을 왜 시키는지

삶과 학습과 예술이 통합되어 있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알고

우리 아이들에게 말해주는 어머니들이 많이 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옆집 누구가....어머 누구 어머니 지금부터 하지 않으시면

늦습니다...라 말하는 그 수많은 유혹에서 부터

좀 제대로 된 사유를 하는 부모님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은 자꾸 기교를 가르칩니다. 어린시절에 문예창작의 기술을 가르치고

피아노를 치는 테크닉을 가르치고

무용은 어디까지 했고 무슨 동작을 잘하고.....

이것만이 다가 아니라는 것. 제발 이제는 조금씩 알아가면 좋겠습니다.

우선순위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아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모두가 우리안에 있는 답답함

열등감, 아이를 통해 다시한번 부상해 보려는 우리들의 욕심은 아닌지

다시 한번 바라보게 됩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가장 큰 사랑은

사랑을 떼는 일이라 들었습니다.

 

영화속 지수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자존심을 버리고 아이를 보낼때.....그 큰사랑 앞에서 우리는 다시한번

희망을 이야기할수 있을겁니다.

 

 

저는 흔히 이런 비유를 자주 듭니다.

아마 많이 들어보셨을겁니다. 네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지만

클로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세잎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라구요.

 

천재성을 너무 쫒다가 정작 내 삶의 주변부에서

주어지거나 얻을수 있는 행복을, 그것을 얻은 사람이야 말로

후천적인 천재인지 모른다는 걸 말이죠.

 

악보는 지도와 같다. 이정표, 도로, 교차로, 우회로 등이

음악적 형식의 청사진이 되고, 감각에 새겨진 음들의 토론장이 된다.

파란 음, 회색 음, 단단하거나 말랑말랑한 음, 빛나거나 매끄러운 음,

오목하거나 볼록한 음, 파릇파릇하거나 향기로운 음. 이리하여 음악적 상상력이

 음들의 지도에 풍경의 특징들을 투영한다. 그러나 피아니스트의 눈에는

모든 음표가 흑과 백으로, 탄소와 산소로 이루어져 있을 뿐이므로 전체적 풍경을

묘사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물론 그 보상은 매우 값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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