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을을 타긴 하나보다
일을 핑계로 바쁘다는 핑계로 글을 쓰고 원고를 마무리 해야 한다는 이유로
한동안 영화를 참 멀리하고 살았다. 그런데 오늘은 이야기를 해야 겠다.
70/80 세대를 이야기하는 영화가 나온 것이다
제목은 '라디오스타'
누구나 한때 잘나가는(?) 때가 있다.
삶의 화양연화, 그 화려한 생의 이면에 다가올 어둠의 이력은 잊은채
순간의 황홀과 생의 정점에서, 그 모서리에 찔리는 아픔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바치는 영화다.
누구에게나 잘나가는 때가 있고
사람들의 기억속에 눅진하게 베어진 환희가 클수록
지워진다는 것은, 잊혀진다는 것은 더 큰 상처가 되어 다가온다
88년 가수왕 최곤.....드라마적으로 구성된 이 남자
그러고 보니 고2때였다. 88년 서울 올림픽으로 온 나라가 부산하던 시절, 우리도 이제
좀 사는 거냐고, 이덕화 아저씨의 '부탁해요'가 유행하던 시절
FM 라디오가 참 괜찮은 정보의 소스였던 시절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와 별이 빛나는 밤에가 있어 행복했던 시절
러시아에서 온 테트리스 게임이 오락실을 채우고
루이 자네트의 영화의 이해 2판이 나왔던 그때,
그 생의 이력을 뒤로하고 이제는 잊혀져간 스타 최곤은
과거의 영화를 잊지 못하고 그의 기억속에서 생의 무게는 점점더 어두워진다
그러나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그를 사랑하는 한 사람이 있기때문이다
비록 지금은 영월 촌구석에서 한번 제대로 움직여본적 없는
라디오 디제이를 하고 있지만 말이다. 사실 70년 세대에게 라디오는
얼마나 많은 추억의 환약을 꺼낼수 있는 보고였던가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배경이 영월인것이 너무 좋다.
경제 자립도가 가장 낮은 강원도 지역.
잘 모르겠다....왜 이렇게 말하느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난 항상 강원도 사람들이 참 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거기서 디제이 최곤은 다방아가씨에서 철물점 사장님
화투의 법칙을 물어 보는 할머니와 철없는듯 락에 미친 코스프레 보이들을 만난다.
둔탁한 느낌, 갈색빛이 가득한 화면일것 같지만, 영화는 쓸모없는 노스텔지어를 만들지않는다
스타의 뒤에서 가려진 사람....매니저 민수
아내와 아이를 뒤로 하고 20년이 넘는 시간동안을 보낸
진한 기억의 따스함이 아련하게 가슴 한구석을 메운다.
우정이란, 잊혀져가는 것과 잊지 말아야할것....
뭐 이런 도덕적인 메세지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단연코 이 영화는
충분히 슬프지만, 참 깨끗하게 행복하다.
이런 영화가 좋다. 오버하지 않는영화. 말끔한 이야기구조를 갖되
보는이로 하여금, 그래요.....행복해요 라고 말하게 하는 영화
88년......고등학교 2학년
내게는 영화를 좋아하는 종식이란 친구가 있었고
말끝마다 ' 아 드러' 하며 온갖 깔끔을 다 떠는 현승이란 친구가 있었고
곱슬머리와 굵직한 머리결, 단체미팅이라는 위험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자칭 '바야바'라 불리는 0.1톤의 무게를 가진 화학담당 담임선생에게
참 얄굿게 당했던 내 친구 준이.
항상 연극대본을 들고와서 대사를 쳐달라던 친구 재영이.....
요즘 하긴 거룩한 계보인가 하는 영화에 나오더군.
그리고 지금 2006년
내가 가진건.....뭐가 있을까?
저금통장에 잔고는 충분하고, 원고청탁으로 바쁘고
전략기획이란 명목으로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딸에게 들려주는 미술사 이야기의 주인공은
어였한 대학생이 되었고
미술관을 갖겠다는 꿈은 여전히 가지고 있으며,
내게 말을 걸어주거나 전화를 해주는 후배들이 있음에 감사하고 있다.
이런 비유가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를 보는 순간.....이제는 절판이 되어버린 게일 쉬이의 '조용한 변화'란 책이 떠올랐다.
마치 폐경기를 맞이한 스타의 삶과 이 시기를 겪어버린 여인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이 책에서 배운것....폐경기는 여성에게 새로운 출발이라며
그래서 Menopause(폐경)이란 ....Men, O Pause(남자들은 일시 정지)라고 했다.
이제부터 시작되는 다시 타오를 당신의 삶을 사랑하라고
그렇게 말했다. 그 메세지는 참 기억에 많이 남는다. 기억의 동굴에 옛사랑의 기억과
추억을 남기고...때때로 달아오르는 열꽃이 당신의 남은 심지에 붙은
정열이라 믿는다면.....이제 이 기간은 당신에게 축복일뿐이라고
이제 더이상 내 삶의 화양연화는 돌아오지
않을거라고 생각하지 말라.....
이제야 말로, 내 삶을 함께한 친구들과 소중한 사람들의 껍질
때로는 두껍고 깨뜨리기 어려웠던 기억의 갑옷을 벗고
생의 동굴에서 나와 세상과 대면해야 할때이다....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건만 무슨 말년이란 말을 쉽게 하는가
당신이 있어서
내가 빛날수 있었고.....또한 내가 있어서
당신이 빛날수 있었음을, 사실은 우리둘은 서로를 조응하며 그렇게 빛내고
있었음을.....기억하자, 내 추억의 향기여....
잘 가라, 내청춘, 난 그 기억의 힘을 입어 지금 이렇게 당신을
빛내고 있으니, 내게 아련한 과거는 아름다운 자양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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