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파리 여행에서는 많은 미술관을 다녔습니다
그 중에서도 오랑주리 미술관은 참 많은 기억에 남는 곳입니다.
모네의 수련 시리즈를 파노라마로 볼수 있는 곳이라고 알려져 있지요
여름의 청록빛 저항이 그 힘을 다해가는 튈리리에 공원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잔여의 햇살을 맞으며 그렇게 걸었습니다. 오랜만에 느끼는 망중한
미술관을 가는 길이 파삭한 초가을의 향과 더불어 신선하게 느껴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더군요. 어디나 그런거 같아요. 적어도 시즌의 파리에는.....
나폴레옹 3세의 명령으로 당시 튈리리에 공원을 설계했던 피르맹 부르주아
의 설계로 1853년 바로 이 오랑주리 미술관은 지어집니다.
그 당시 귀족들을 위한 여가의 공간으로 한편으로는 그랑제콜의 입학시험을 보는 장소로
사용되었다고 해요. 1921년 국립 미술관으로 귀속되면서 우리가 보는
오랑주리 미술관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지요.
건물의 형태에서 보실수 있듯이, 이 건물의 가장 큰 특징은 자연채광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2006년 6월에 재개장을 했지요. 1927년 건축가 카미유 르페브르는
1922년 모네가 국가에 헌납한 '수련'시리즈를 걸기 위해 두개의 방을 설계합니다
최근에 이 방은 완전히 자연채광으로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하지요
무엇보다도 인상주의의 거장, 모네의 그림은 자신의 철학답게
시간의 흐름속에 변화하는 사물의 색조와 존재감, 이 모든것들을 살려내기위해
이렇게 미술관의 방을 재조율하게 됩니다.
마리 로랑생(1883-1956)
코코 샤넬의 초상,1923
캔버스에 유채
이번 오랑주리 미술관의 콜렉션에서 저를 가장 사로잡은 작품은
여류화가 마리 로랑생이 그린 '코코샤넬의 초상화였습니다.
디자이너 코코 샤넬의 관능적인 아름다움이 청회색과 옅은 초록색 벽면을 배경으로
새롭게 피어납니다. 시인 아폴리네르의 아내였던 화가 마리 로랑생
'죽은 여인보다 슬픈것은 잊혀진 여인'이라고 했던 비운의 여류화가 마리 로랑생의
생을 조금이라도 깊게 이해하고 있었다면 그녀의 그림이 더욱
아련하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리 로랑생은 이 그림이 그려지던 당시 안무가였던 세르게이
디아길레프의 '더 비치'라는 작품의 의상과 세트를 디자인하고 있었습니다.
코코 사넬또한 이 당시 같은 극단의 작품을 위한 의상을 디자인 하고 있었지요.
그림 속 로랑생의 터치 속에서 한쪽 어깨를 관능적으로 드러내며 청색과 검정색의 드레이프
가 돋보이는 드레스를 입고 느긋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샤넬의 모습이
인상깊게 다가옵니다.
유연한 선과 세밀하게 변화하는 색채, 모델의 꿈꾸는 듯한 얼굴의 표정은
마리 로랑생의 그림에서 흔히 등장하는 표현들이지기도 합니다. 콜셋을 벗어버리게한
자유주의자이자 디자이너인 샤넬의 모습이 다소 유연하게 그려져서
사자처럼 파리 패션계를 주름잡던 그녀 같지 않아 보이기도 하네요.
오귀스트 르느와르
피아노앞에 어린소녀들 1895
캔버스에 유채,116*81
어린 소녀들이 피아노를 치는 장면은 르느와르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입니다
어린아이와 음악이란 테마는 사실 프랑스와 네덜란드 미술에서 흔히
알레고리로 사용되었지요. 뭐랄까 귀족사회의 내밀한 문화와 사인화된 공간을 표현하는
주제라고 할까요? 개인적으로 이 그림을 보면 참 많이 편해집니다. 그도 그럴것이
어린시절 피아노를 치던 기억들이 계속해서 떠오르더라구요.
앙드레 드랭
할리퀸과 피에로, 1924
캔버스에 유채, 175*175
세계 제 1차 대전이 끝나고 그는 파리의 화상과 작가들로 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작가였습니다. 그리고 지식인들 사이에서 가장 찬미되는 작가로 등장하게 되지요
특히 앙드레 브르통은 그를 우리 시대 최고의 작가라고까지 추켜세웁니다
전통적인 소재와 장르를 자신의 독특한 스타일과 결합시키는 그 만의 화풍은
바로 보시는 '할리퀸과 피에로'에서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정적인 느낌과 멜랑코리한 느낌....적어도 그림 속 두 인물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만은 않습니다. 황량한 배경과 줄이 없는 악기를 연주하는 두 연주자의 모습이
그런 정조를 그대로 드러냅니다. 이탈리안 전통의 코메디아 델아르테에서 영감을 얻은
두 인물의 모습이 인상깊게 그려져 있네요.
앙리 루소
결혼파티,1905
캔버스에 유채, 191*181
앙리 루소의 결혼파티는 루소의 가장 대표작입니다.
이 작품은 1905년 앙데팡당전에 전시되었던 작품이지요.
인물들의 정체는 사실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아티스트 자신만 제외하고요
그는 신부의 뒤편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다소 어색한 포즈를 취하며
결혼파티를 위한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어리둥절하게 하는
일면을 가진 작품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신부의 모습은 공중에 붕 떠있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지요.
결혼하는 신부의 마음일까요? 저도 언젠가는 저렇게 붕 뜨는 느낌을 받게 되겟지요
앙리 마티스
붉은색 바지를 입고 있는 오달리스크,1924
캔버스에 유채
앙리 마티스의 오달리스크 시리즈는 장식미술적인 패턴과 모티브에
열광했던 화가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화가는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를 방문했고 그곳에서 이국적인 환경과 조우하면서 새로운 작품의 영감을 얻게 되지요
사실상 이 그림은 어떤 일면에서 보면 조작된 오리엔탈리즘의 그림이기도 합니다
이슬람의 이미지를 프랑스인의 눈을 통해 재창조 한것이죠. 옷감들이며 화면이며
카펫과 의상 모두 마티스가 꿈꾼 오리엔탈리즘의 한 부분으로 만들어진것이니까요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폴 기욤의 초상,1915
캔버스에 유채,191*71
모딜리아니가 이 초상화를 그리던 당시 폴 기욤의 나이는 23살이었습니다
이미 그는 미술계의 유명한 딜러였구요. 여기서도 현대미술의 수호자로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대담하게 왼쪽 상단부에 나타나고 있네요. 사실 오랑주리 미술관은
그가 기증한 광대한 콜렉션에 힘입고 있지요. 기욤이 입고 있는 당시의 수트를 보니
아주 멋쟁이인거 같습니다. 압착버튼을 사용한 와이셔트부터 수트에 맞게 코디한
타이의 반듯함도 그렇고요......
모네의 그림이 기억되는 것은
그가 거장이기에 앞서, 빛이 우리에게 줄수 있는 선물을
이해한 작가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물상들이 자신의 질서대로
조화로운 생을 꿈꾸며, 하루의 일상을 시작할때, 그리고 그 움직임을
휴면의 상태로 가져가는 시간, 하루라는 이 소중한 시간을
신이 부여했다는 것을 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듯 합니다.
빛이 있으매, 우리 안에 조명되는 저 힘의 근원들이
그 속에서 해를 등지고 행복하게 놀고 있는 우리내 생의 모습들이
변화와 조율, 변형, 지속과 유지....이런 변모의 옷을 입는 우리를 통하여
더욱 빛나고 있는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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