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데릭 칼 프리섹(미국 1874-1939)
'벗곷' 캔버스에 유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요즘처럼 봄의 기운이 강할때면....사쿠라와 여인이 생각난다던
어느 시인의 말이 떠오릅니다. 봄의 향기에는 항상 겨우내 얼어있던 감성의 앙금들이
녹아버린 그 채취가 남아 있는 법이지요. 새롭게 피어나는 대지의 꽃들과
생명력, 하지만 추억제의 한 부분에선 지나간 옛추억의 그림자가
분홍빛 표피를 입고 다시 태어납니다.
미국의 인상주의에 대한 자료를 준비하면서 칼 프리섹의 작품을 보고 있자니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벗꽃 아래 나신으로 서있는 여인의 자태가
봄의 기운에 덧입어 더욱 관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서양이나 동양이나 벗꽃은 관능성과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은유하는 가장 대표적인
관념적인 표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말 오후 집에 있는 동안 예전에 읽었던 일본의 사랑이야기
바로 헤이안 시대의 사랑을 그렸던 일본 고전문학의 백미 '겐지 이야기'를
다시 한번 들추어 보았습니다. 겐지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얻는 것은
사랑과 그 후에 오는 것들에 대한 기록과 풍경, 그 속에서 찾아가는
우리들의 또다른 모습입니다.
겐지 모노가타리.....내 사랑의 추억제
겐지 이야기는 무라사키 시쿠부란 여인이 쓴 54장으로 되어 있는 서사소설입니다.
황제의 아들이었던 겐지 왕자와 그의 애첩 기리츠보의 사랑과 삶을 그렸던 연애소설
하지만 단순한 사랑이야기가 아니지요. 비록 허구이지만 헤이안시대(794-1195)의 귀족사회
를 가장 정확하게 재현하고 그려낸 작품으로 일본 및 세계여러나라에서 백미로
인정받는 작품이니까요.
이후 헤이안 시대 말기 '겐지 이야기'는 화폭의 주제로 사랑을 받으면서
이야기가 있는 그림의 연작으로 남게 됩니다. 토사 가문에서 뽑혀온 궁정화가들은
오랜 시간동안 겐지 이야기의 주제를 장별로 그려내고 에도 시대(1600-1868)에 이르어서야
그 대장정의 마지막에 이르게 되지요. 아래의 그림은 그 중 한부분이구요
바로 벗꽃을 보러 나온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지요
벗꽃을 볼때마다.....수많은 사랑의 흔적을 기억하는 분이 있을 겁니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저는 아직도 잊지 못하는 대사가 있습니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살갗이 벗겨진 corch: 지극히 가벼운 상처에도 아픔을 느끼는
사랑하는 사람의 특이한 감수성
(롤랑 바르뜨, <사랑의 단상> 中)
사쿠라꽃 질때....지나간 사랑에 진저리 친 경험이 있다면 이런 분에게 한번쯤은
겐지 모노가타리를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모든걸 다 가진 남자, 잘생긴 풍모와 능숙한 서예, 무술에 이르기까지 그는 현대판
최고의 얼짱입니다. 그의 다양한 사랑의 편력은 어마어마하게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지요. 미녀, 추녀, 사랑스런 여자, 똑똑한 여자, 귀신이 되어 나타나는 원한의 여자, 할머니까지 해당되고, 자기의 의붓어머니와 불륜을 저질러 아들을 낳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아무리 당시가 일부다처제라고는 하지만, 정말 대단한(?) 남자라고 할 수 있죠.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는 이런 겐지의 사랑이야기를 중심으로,
그의 일생과 그 자손들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랍니다. 하지만 겐지 이야기는 바로 이러한
사랑의 편력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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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그림은 3장을 주제로 하여 그림 그림입니다. '우츠세미'란 제목인데요. 제목이 생소하더라도 그리 크게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왜냐면 이야기가 원체 긴데다 인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야기여서 사실 이 작은 블로그 한번의 내용으로 다루기에는 무리가 있거든요.
우츠세미는 바로 겐지 왕자가 사랑에 빠지는 여인의 이름입니다,.자신의 동료와 사랑의 밀어를 나누는 우츠세미...그리고 그녀를 관음증 속에 살펴보는 주인공의 모습, 그를 피해 달아나고 주인공은 그녀의 동료와 사랑을 하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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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은 바로 3장의 내용을 요약하는 그림입니다. 밤의 얼굴이란 뜻을 가진 신비의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 겐지 하지만 질투에 어린 그의 다른 첩은 그녀를 죽여버리지요.
유가오란 이름의 여인 헤이안 시대, 황제의 아들이었던 그는 여염집 여인과의 사랑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은밀한 사랑을 나누게 되지요. 바로 이 그림속 배경에 피어있는 꽃이 밤에만 피는 그 꽃이랍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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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은 5장을 요약한 그림입니다. 겐지는 원래 무라사키를 사랑했고 드디어 그 둘은 진정한 사랑을 찾아서 연인이 되지요. 뒤에 숨어 그녀를 보고 있는 주인공 겐지 그 당시 그녀의 나이는 겨우 10살 무렵...현대의 눈으로 보면 거의 로리타 컴플렉스에 가깝다고 할수 있지만, 지금의 시선으로 그 시대를 규정하긴 어렵습니다.
후에 그는 그녀의 가디언이 되지요. 그리고 그녀의 나이가 차면서 자신의 후첩으로 들이게 되지요. 바로 사랑이 시작하는 이 시점은 봄입니다. 그림속 벗꽃은 바로 이러한 사랑의 시작과 꽃핌을 상징하지요.
그림속에서 항상 꽃은 그의 사랑을 은유하는 일종의 기구로 쓰이는 것을 봅니다. 하긴 사랑을 시작한 연인에게 '봄날'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지만요. 지난해 4월 동경에 출장을 갔던 길.....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벗꽃을 보러 온 하나미의 풍경을 눈에 담은 적이 있습니다.....
분홍빛 꽃빛으로 물들은 연인들의 마음에 마치 달콤한 솜사탕처럼 녹아들던 그 봄날의 기억을 아직은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 사진을 찍은지도 4년이 흘렀네요 제가 공부했던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내의 니토베 가든이란 곳이에요 이곳 옆에 바로 아시안 라이브러리가 있어서 종종 일본과 중국그림 도판을 보러가곤 했지요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분홍빛 벗꽃들이 연두빛과 더불어 봄의 향을 토해내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하지만 저는 봄의 시간에 낙화의 시간을 생각하는 습관이 세월과 함께 붙어버렸습니다. 저 화려한 봄꽃 지는 시간.....내 내면의 풍경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까를 생각하지요.
일상은 순환으로 이루어져 있고, 좀 더 큰 순환 속으로 들어간다.
꽃이 떨어지는 시간에....다시 피어날 그때를 생각하는 넉넉함을 항상 견지하는 생의 무늬를 빚어내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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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들으시는 곡은 성의신의 해금 연주로 듣는 '낙화암'입니다
그녀의 앨범 Moon In the Clouds 에서 골랐습니다.
봄밤의 시간이 애잔할수록 해금의 소리가 더욱 끌리는 것은
인지상정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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