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에서 태어나 죽음의 땅으로 다시 돌아가는 우리들의 운명
그것은 생명의 본성입니다. 생의 움직임은 우리를 삶에서
죽음의 자리로 옮아갑니다. 우리내 몸의 운명은 필멸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 대지를 벗어나 운명의 껍질을 벗고 가야만 하는 생의 이면과
그 너머가 있기에 우리는 여전히 이 대지의 백성으로 살아갑니다.
달빛으로 생긴 마당의 그림자는 싸리비로 쓸어도 쓸리지 않고
흐르는 물 속에 뜬 달은 물에 젖지 않습니다
그 만큼 생명은 우리 내 생의 가운데서 바로 지금 그렇게 스스로 그러하게
있는 것입니다. 땅에 대한 철학, 오늘 읽는 작가는 바로 제가 정말 존경하는 분의
작품으로 골랐습니다. 임옥상 선생님의 작품을 읽어보는 시간은 내 자신의 이면에
조응하는 침묵의 풍경을 내면속에 담아내는 순간입니다.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玄德
생이불유 위이불시 장이부재 시위현덕
낳았으되 소유하지 않으며 행하였으되 기대하지 않으며,길렀으되 마음대로 부리지 아니하니
이를 일컬어 그윽한 덕이라 한다
임옥상 선생님의 그림 속 대지의 모습, 아니 땅의 풍경은 바로 이러한 노자의 철학이
베어있는 풍경으로서 우리 속에 자리합니다. 90년도 이분의 그림을 처음 보고 정신이
아찔했습니다. 청천 아래 흐드러지게 자생하는 보리밭의 영상이 눈 앞에 펼쳐지고
그림 속 주인공은 화자로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적어도 80년대
치열했던 '우리 외부의 강한 적'들이 존재했던 시대
초록빛 보리밭 사이로 깊은 삶의 여울을 길어가야 했던 우리 아버지의 초상이었습니다
땅은 우리에게 또 다른 생을 낳고 기르고 먹입니다. 그럼으로써 땅은
우리에게 자신의 그윽한 덕을 '도'로써 감싸안습니다.그의 그림속 화면 가득하게 펼쳐지는 땅의모습은 우리를 낳아 기르신 어머니의 깊게 패인 주름처럼
삶의 양감을 표현하는 준법을 감싸안고 돌아갑니다.
우리가 우리의 시선으로 땅을 규정할때
바로 대지는 이상화되고 타자화된 대상물이 되고 맙니다.
제가 임옥상 선생님의 그림을 좋아하는 것은 바로 대지를 규정하는 그의 '정신'
때문입니다. 보이는 자의 시선 속에 자연은 서로 삼투하며 일종의 길항작용을 일으키는데
작가의 서린 눈빛 속 자연들은 바로 우리에게 이상화된 자연이 아닌
현실속에서, 상처받으며 끊임없이 인간의 '시선'에 따라 재단되고 구획되는
'땅의 서러운 역사'를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이분에게 항상 따라다녔던 '민중미술의 아버지'란 표현은
이제 새로운 세기와 시간의 결 속에서 또 다른 감싸안음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음을 봅니다.
오늘은 그러한 작품들은 다루지 않았습니다. 이분의 작품에 푹 빠져 살던 때의 그림들만
자꾸 보고 싶은 것은 아직도 유효할까? 하고 스스로 자문하는 우리내 생의 자락 속
민중의 모습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낙하하는 꽃잎들이 대지를 가득 메워낼때
우리는 다시 다가올 시간의 희망을 잉태합니다. 그렇게 자연은 스스로를 치유하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을 먹여 살리고 다시 치유하기 때문입니다.
산업화 속에서 점점 더 흙의 향기를 잃어가는 인간은 바로 이러한 대지의 따스함을
상실하고 살아가는 존재로 살수 밖에 없습니다
땅의
연가(戀歌)
나는 땅이다
길게 누워 있는 빈 땅이다
누가 내 가슴을 갈아엎는가?
누가 내 가슴에 말뚝을 박는가?
아픔을 참으며
오늘도 나는 누워 있다.
수많은 손들이 더듬고 파헤치고
내 수줍은 새벽의 나체 위에
가만히 쓰러지는 사람
농부의 때묻은 발바닥이
내 부끄런 가슴에 입을 맞춘다.
멋대로 사랑해 버린 나의 육체
황토빛 욕망의 새벽 우으로
수줍은 안개의 잠옷이 내리고
연한 잠 속에서
나의 씨앗은 새 순이 돋힌다.
철철 오줌을 갈기는 소리
곳곳에 새끼줄을 치는 소리
여기저기 구멍을 뚫고
새벽마다 연한 내 가슴에
욕망의 말뚝을 박는다.
상냥하게 비명을 지르는 새벽녘
내 아픔을 밟으며
누가 기침을 하는가,
5천년의
기나긴 오줌을 받아 먹고
걸걸한 백성의 눈물을 받아 먹고
슬픈 씨앗을 키워온 가슴
누가 내 가슴에다 철조망을 치는가?
나를 사랑해다오, 길게 누워
황토빛 대낮 속으로 잠기는
앙상한 젖가슴 풀어헤치고
아름다운 주인의 손길
기다리는
내 상처받은 묵은 가슴 위에
빛나는 희망의 씨앗을 심어다오!
짚신이 밟고 간 다음에도
고무신이 밟고
간 다음에도
군화가 짓밟고 간 다음에도
탱크가 으렁으렁 이빨을 갈고 간 다음에도
나는 다시 땅이다 아픈 맨살이다.
철철 갈기는 오줌 소리 밑에서도
온갖 쓰레기 가래침 밑에서도
나는 다시 깨끗한 땅이다
아무도 손대지 못하는
아픔이다.
오늘 누가 이땅에 빛깔을 칠하는가?
오늘 누가 이땅에 멋대로 선(線)을 긋는가?
아무리 밟아도 소리하지
않는
갈라지고 때묻은 발바닥 밑에서
한줄기 아픔을 키우는 땅
어진 백성의 똥을 받아 먹고
뚝뚝 떨어지는 진한 피를
받아 먹고
더욱 기름진 역사의 발바닥 밑에서
땅은 뜨겁게 뜨겁게 울고 있다.
문병란의 시를 읽는 시간.....세계화의 폭력앞에서 쓰러져가는 이 땅의 농민들을 기억합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서걱거리는 땅의 상처를
감싸안고, 현재의 모습을 고발하는 작가의 용기를 참으로 사랑했었습니다.
우리는 어차피 대지와 떨어져 있는 몸이 아니었기에, 현대라는 미망의 신화속에서
상실해가는 땅의 의미를, 그 속에서 곰삭이는 소망의 시간 속
발효되는 여전히 유효한 우리들의 희망의 축을 만져봅니다.
힘들고 거칠은 삶의 베어진 이면 에서 우리들은 어머니가 주신 땅의 의미를 잃고
또 다른 인간의 집을 짓습니다. 땅의 사람들이 땅을 상실하면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은 이제 그 곳을 떠나 자신의 정체성을 영원히 상실하고 살아가는 일 밖에는 없습니다.
이런 폭력의 형식이 어디에 있습니까? 인간에게 주어진 땅의 의미는
우리를 먹이고 살리는 것이건만, 자본의 힘 속에서 쪼개어진 분화된 재화로서의
땅은 이제 더이상 인간의 희망을 키우는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잃어버립니다.
또 다른 인간의 마을을 향해 정처없이 그들은 자신의 뿌리를 파내고
새롭게 이식해야 할 꿈의 자리를 향해 달려갑니다. 과연 그것이 그들에겐
녹록치 않은 현실의 꿈이 아닐까요?
여전히 이 땅에서 자행되는 땅에 대한 폭력은
FTA 협상 테이블 위에서 처녀의 초경보다 더 붉은 선혈을 물고
죽어가는 오늘의 땅의 백성들을 다시 한번 바라보게 합니다. 언제까지
이런 삶의 상처들은 자연 치유될까요? 따스한 황토빛 대지위에
희망의 눈물을 가슴 밑으로 쓸어 내리는 그 날이 다시 와야 할텐데.....
깊은 밤의 시간, 여전히 우리 안에서 조응하는 희망의 씨앗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던져보리라 각오하며, 임옥상 선생님의 그림들을
그렇게 서글프게 바라봅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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