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티솟 '책읽는 여자' 캔버스에 유채, 1880
개인소장
무언가를 만난다는 것 만큼,
청신하고 행복한 경험은 없지 않나 싶습니다.
사람을 만나고, 체험이란 실제를 만나고, 예술작품을 만나고, 아래의 그림처럼
책을 통해 다른 생의 이면들을 만나는 것.....
그것은 독서가 우리에게 주는 작은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은 읽는 사람의 내면 풍경을 통해 다시 한번 걸러진
또 다른 경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은 다시 태어납니다.
좋은 글은 읽는 사람의 <지금>으로 자리바꿈하지요.
그런 착각의 실체를 지니고 있기에 글은 또한 무서운 것입니다.
그 글이 소재나 제재로 삼았던 가장 사실적인
어떤 사물보다도 용량의 자재로움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좋은 글은 독자의 은밀한 더듬기를 보장해 주는 공범이며.
우리들의 정부이며. 내연의 여자입니다, 아름다운 간음을 가능케 하는
무서운 팜프 파탈인지도 모릅니다. 이때 쌓아지는 비의의 제단은 성스럽기 까지 하지요.
책읽기의 행복을 몸으로 만나는 경험을 그림 속 여인들의 풍경을 통해 읽어봅니다
제임스 티솟의 그림 속
여인의 모습은 그 독서의 황홀함을 느끼게 합니다.
햇살 가득한 오후의 뜨락....그 정원 속 작은 의자에서 읽어내는
경험의 빛깔과 무늬가 우리를 마치 다른 세계의 일원으로
직조해 내는 것 같습니다 고요의 시간을 직조하듯....
장 에티엔느 리오타르
마담 아델라이드, 1753 우피찌 미술관
이탈리아 피렌체를 여행하던 시절.....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 우피찌...
그곳에서 만났던 황홀한 그림들의 향연을 기억합니다.
그 중에서도 장 에티엔느 리오타르의 이 그림은
터키의 카도파키아를 너무나도 좋아했던 제게는, 그림 속 여인이 입고있는
그 화려하고도 동양적 느낌의 터키식 패션은 오스만 제국의 강대함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다고 합니다.
책 하나를 읽어도 참 폼 납니다. 그려.....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1732-1806)
책 읽는 여인.1770년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로코코 시대의 화려한 의상....황금빛으로 가득하게 화면을 메우는
거장 프라고나르의 그림 속에는 우리가 이미 서양 미술사에서 배워온
프라고나르를 규정하는 몇가지 특징들 흔히 방종과 경솔함의 이미지는 온데간데
없습니다. 그림 속 여인은 손가락으로 조용히 책의 텍스트를 읽고 있고
물론 가볍게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은 지울수 없지만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그림을 워싱턴에서 보았을때 참 행복한 느낌이
가득했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그날 무리해서 여러권의 미술 카탈로그를
샀던 기억이 있네요.
카를 라르손 (1853-1919 )
신문 읽는 여자, 1886, 수채, 개인소장
독서를 하고 업무를 통해서 얻은 지식과 경험을 머릿속에
넣어두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것만으로는 나를 바꿀 수 없기 때문이지요. 문제는 자극입니다
책을 통해 만나는 세상, 적어도 도록 하나를 제대로 읽으면서
그림 속 여인들의 풍경을 마치 시나리오를 읽듯 행간의 의미를 만들어 가며
읽는 것은 아주 행복한 경험이었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신문을 보는 것 만큼이나 좋은 것이 없지 싶습니다.
출근하는 길, 신문을 사서 주요한 목차를 살펴보고, 몇개의 단원을 읽고
적어도 주말에 나오는 책에 대한 리뷰는 참 꼼꼼히 읽어보는 편이지요
스웨덴 작가 카를 라르손의 그림 속 여인도 신문을 읽고 있네요
그녀는 어떤 기사를 읽는걸 좋아할까요? 아르누보 운동의
개척자였던 그의 그림속 시골 풍경속, 공기와 야외, 빛의 움직임
이 모든 것들이 스웨덴의 농촌 풍경과 어울어져 다가옵니다
피터 얀센스 엘링가 (1623-1682)
책읽는 여인, 1668
알테 피나코테크, 독일 뮌헨
그림 속 하녀의 모습은, 고된 일상의 풍경에서 다소 벗어나 있습니다.
그녀는 아마도 주인 마님이 출타중인 틈을 타서
책을 읽고 있네요. 독서의 역사란 책을 보니, 우리가 책을 읽는 것도
사실 근대의 풍경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소수자를 위한 경험이었다고 해요
낭독 중심의 읽기에서 속으로 되뇌이며 읽는 경험을 통해
인간은 자신과의 대화를 시작하는 멋진 경험을 만들게 된 것이죠
테오도르 루셀 (1847-1926)
책읽는 처녀 1996
테이트 미술관, 런던
저는 개인적으로 역사학자인 필립 아리에스를 참 좋아합니다.
그 분이 쓴 '아동의 재발견'과 거작인 '사생활의 역사'는 제 서재 한곳을
아주 예쁘게 꾸미고 있고, 제가 쓰는 글의 상당한 인용구를 구성하고 있지요
루셀의 그림 속 여인은 상당히 도발적인 모습으로
책을 읽고 있습니다. 루셀은 풍속화를 그리던 화가답게 당시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마네의 올랭피아가 갖는 그 외설적인 아름다움을
책을 통해 다시 한번 걸러내어 보여줍니다.
그녀에겐 책을 읽는 것은 가장 아름다운 사생활의 일부인것 같습니다
에두아르 마네
책읽는 여자. 1880
캔버스에 파스텔, 슈테델릭 미술관, 네덜란드
마네는 책읽는 모습의 여인들을 많이 그렸습니다.
그림 속 검정 색 톤의 옷을 입은 수잔 부인은 이제 어느 정도 키워놓은
자신의 두 아이들을 뒤로 하고 자신만의 망중한을 즐기고 있습니다.
집 안에 머물다 집 떠나니
집이 내 안에 와 머무네
집은 내 속에 담겨
나를 또 담고 있고
지상에서 가장 큰 그릇인 길은
길 밖에다 모든 것을 담고 있네
함민복 시인의 짧은 시 '그릇'입니다. 책읽기는 우리 속 그룻에
행복한 시간의 앙금을 담아내는 경험입니다. 추운 겨울의 시간이 가고 봄의 시간이
다가오는 지금....해묵은 서재의 먼지를 떨어내고 왠지 야외에 나가
책 읽기의 호사로움을 느끼고 싶습니다.
내년 초에 제가 쓴 작은 책이 나올 예정이라네요. 새벽의 시간
그림을 읽으며 글을 쓰는 이 경험이 내 생에 가장 행복한 시간들을 메우고 있음을
느낍니다. 책읽기는 조우이며 만남인것을....그렇게 배우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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