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Education/딸을 위한 미술 이야기

두가지 빛깔의 이끌림.....리더십에 말을 걸다

패션 큐레이터 2006. 2. 5. 01:06

 

다영아.....

아빠가 출장을 온지도 일주일이 넘어가는 구나

오늘 엄마와 전화를 주고 받다가 네가 작은 모임의 장으로 뽑히게

되었다는 걸 알게되었다. 더구나 어려운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돕는 일에 앞장선다는 취지를 가진 모임이라 들어

더욱 마음이 기쁘다.

 

어느 모임이건 사람이 모이고, 그들과 함께 뜻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뜻대로 어떤걸 밀어부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게 되기 때문일거다. 하지만 리더가 된다는 것은

꿈을 꾸게 하는 것이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람을 이끌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어찌되었든 오늘의 그림 읽기를 위해 성경의 한 장을 인용해 본다

 

저희가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촌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 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치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누가복음 10:38-40

 

  

 얀 베르메르,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 계신 예수' 1654년작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캔버스에 유화

 

자 오늘은 베르메르의 성화 속 두명의 사람을 설명하는 것으로 우리 시대의 리더십은 어때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 할까 해. 위의 그림 베르메르의 위대한 작품은 1900년 아주 우연하게 브리스톨의 한 가정에서 고미술상이 헐값에 사들이게 되면서 발견되었다고 하더구나

 

작품 디테일 1-마리아의 표정

'마르다와 마리아'는 성경에 나오는 두명의 여성이다. 그리고 그들은 당대에 미약했던 기독교의 여성리더였다고 해. 아빠가 교회를 다닐때만 해도, 성경을 여성의 관점에서 읽어나가는 일이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쓰게 된 것 같다.

 

너도 아다시피 장르화가 베르메르는 빛의 사용에 능했던 작가였고 이 그림에서도 그는 마르다와 마리아를 아주 억센 네덜란드의 두 여인으로 그려놓았다. 그림에서 마르다는 자신의 집에 방문한 예수를 위해 금빛 나는 빵을 구워 성글게 짠 바구니에 담아 드리고 있고,

 

마리아는 턱을 괸채 그의 말을 듣고 있지. 이제까지의 성경에서의 해석은 자신의 집에 온 예수에게 청종하는 마리아의 모습에 더 많은 후한 점수를 주어왔다. 마르다는 뭐랄까....항상 가사일에 바빠 그의 말을 들을 시간이 없는 그런 사람처럼 읽혀졌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우리가 미처 읽어내지 못했던 숨겨진 의미들이 있다.

 

마르다 또한 그 당시 전도자였고, 성경속 "준비하는 일'이란 바로 가정의 일과 교회의 사역 두가지를 다 어우르는 말이지. 여기에서 준비하는 일의 그리스어는 디아코니아란 말이다. 사회적 관계를 말하기도 하고, 여기서 교회에서의 집사를 의미하는 Deacon 이란 단어가 나오게 되지.

 

 

야코포 틴토레토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 오신 예수'

알테 피나코테크, 뮌헨

 

르네상스의 거장 틴토레토의 그림속 마르다와 마리아에도 여전히 경합

관계에 있는 두 사람이 그려진다. 하지만 이것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우리에겐 풍성하게 있다. 예수가 왜 그들의 집에 갔을까? 여기에 대해

생각해 보기 바란다. 그 당시 교회란 가정집을 의미했다. 공식적인 교회건물이

있었던 시대가 아니라는 점이지. 그러니 그들은 당시의 분명한 리더였다는 점이야.

 

하지만 우리들은 마르다보다는 마리아를 기억하도록

참 많은 설교들을 들었던거 같아. 여기엔 무슨 이유가 있을까?

마리아는 뭐랄까...좀 조용하게 사람의 말을 드는 기술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 다. 여기에 비해 마르다는 항상 다양한 일들

사람들을 챙기고, 전도하고, 사회적인 봉사를 하고......이런것들로 인해

부산한 생을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봐. 하긴 이런 속성으로 인해

그녀를 둘러싼 많은 일화에는 베다니에서 남부 프랑스로 전도여행을 가면서

용을 잡는 전사로 그려지기도 해.

 

여전히 가부장의 힘이 강했던 시대....하긴 지금까지도 말띠여자란 말이

쓰이는 시대지만, 강하고 억세고, 사회적인 관계를 지지 않으려는

여성 리더들을 향한 남자들의 질시와 질투가 여기에는 있다고 생각한다.

 

 

카라밧지오 '마리아와 마르다' 1598

디트로이트 아트 인스티튜트

 

디트로이트에서 본 거장 카라밧지오의 그림 속 마리아와 마르다는 진짜 특이한 그림이었다.

그림 속에서 마르다는 세속적인 욕망에 젖어 있는 마리아를

개종시키려고 열심히 전도중이지.

그녀는 자신의 가슴에 대고 있는 오렌지빛 살구장식은

그녀가 버리게 될 세속의

꿈들이라고 해석한다는 구나.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에는 우리가 걸어가야 할 두가지 빛깔의

리더십이 들어있다고 아빠는 생각한다. '들을수 있는 용기'와 '행동할수 있는 용기'

두 가지다. 나는 사실 그림속 이미지를 통해 두 사람은 이 두가지 용기를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결론 내려 보았다.

 

두가지 용기의 빛깔은 결코 한쪽으로 설수 있는 것이 아니지....

세상을 구성하는 두가지 힘의 상징일 테니까

 

 

허 치 '마리아와 마르다'

 

마지막으로 현대에 그려진 마리아와 마르다의 이미지를

소개하고 글을 마무리 하자. 이 그림은 우연하게 발견했다. 출장이 잦은 아빠로서는

비행기에서 많은 독서를 하는 편인데, 특히나 비행기 서가에 꽂힌 경제관련

잡지들을 많이 읽거든. '극동경제 리뷰'란 잡지에서 그를 가리켜 중국 최고의

현대 기독교 작가라고 소개한 글을 읽었다.

 

그는 현재 난징대학교의 교수로 있으면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하는구나

그의 그림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동양의 평면적인 화면구성이

풍성한 빛깔의 서양미술을 받아들여 재구성한 예수의 이미지다.

그는 서구의 중세미술의 기술과 중국식 전통기법을 결합해

현대 중국인들이 표상하는 예수의 모습을 그렸다.

 

신앙도...리더십도 결국은 빛깔의 문제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다영아......아빠는 네가 좋은 리더가 되고, 이끄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한자에서 들을 聽  자에는 耳 와 心  이 쓰였는지를 알기 바란다.

중국에서는 마음의 목소리를 듣는것이 진정한 '듣기 혹은 들음'이라고 했다.

리더란 바로 자신이 이끄는 사람들의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아빠는 믿어본다.

 

우리딸이 잘 해내길 바란다.

 

중국 심천에서......하루종일 미팅에 지쳐있던 아빠가

2006년 2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