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Education/딸을 위한 미술 이야기

세상의 엄마들을 생각함.....

패션 큐레이터 2005. 11. 10. 18:53

 

다영이에게......

오늘 아빠는 네게 엄마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러니까 내게는 할머니가 되시는 분이지

아직도 우리 다영이를 가장 아끼는 세상에 한분밖에 없는 분이기도 하다

 

 

여전히 정정하신 할머니를 보면서

아빠는 여러가지 생각을 한다. 골다공증으로 꽤 긴 시간을 앓아오셨으면서도

스스로 건강에 대한 체크를 꼼꼼히 하시면서 잔병하나 없이

이 아빠의 곁에 있어주시는 어머니를 볼때마다 아빠는 항상 죄송하단다.

 

지금은 사람들의 결혼적령기 자체가 많이 늦어졌지만

할머니가 아빠를 낳았을때가 38살이었다고 했다.

의사는 한사코 유산을 권했다고 했었다. 산모의 나이가 많아서

비록 초산은 아니지만 후유증이 있을거라고 했다 한다.

 

하지만 이미 들어선 생명을 지울수는 없어서 죽을둥 살둥

고생끝에 아이를 낳았지만 출산후 제대로 쉬지 못하셨던 것이 탈이 되어

아직도 겨울에는 거의 바깥에 나가지 못하시지.....

 

 

그림 속 매리 카셋이 그렸던 수많은 아이들과 엄마의 풍경들은

우리들에게 그리 생경하지 않다. 익숙한 풍경의 무늬들을 구성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이 우주에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아빠는 믿고 있다.

 

매리 카셋처럼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풍경을

아름답게 그리고 있는 작가도 없지 싶다.

 

 

어린시절 가난했던 살림에 엄마는 그 흔한 로션 하나 제대로

바르지 못한 손으로 우리 모두를 먹이시고 얼르시느라

항상 굵은 금이 거칠게 가 있었다. 엄마가 아빠에게 세수를 시킬때마다

거친 엄마의 피부결이 와닿아서 아프다고 때를 쓰곤 했다.

 

매리 카셋의 그림이 순수함과 정확한 실재감을 가지고 있다면

아래의 르누와르의 그림은 색채의 명징한 힘과 그것을 받치는

순간들의 응고의 미학이 화면 전면에 덮혀있다.

 

 

밝은 봄날의 햇살....누군가 그랬다. 파리는 봄의 시간에 가장

아름답게 피어난다고.....미술관 마실을 핑계삼아

수도 없이 많이 가본 프랑스지만 파리란 도시는 봄의 연록색과

황색들이 조합되어 만들어 내는 연한 속살의

상처들에서 진한 향기를 낼때가 가장 아름다운것 같다.

 

햇살아래 누울때마다 짧쪼름한 시간의 간장에

밥을 비벼먹는 느낌이랄까....그림속 아이에게 수유를 하는

엄마의 모습이 너무나도 예쁘기만 하다.

 

 

 

잎 넓은 저녁으로 가기 위해서는
애인들이 더 따뜻해져야 한다
초승달을 데리고 온 밤이 우체부처럼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채소처럼 푸른 손으로 하루를 씻어 놓아야 한다
이 세상에 살고 싶어서 별을 쳐다보고
이 세상에 살고 싶어서 별 같은 약속도 한다
이슬 속으로 어둠이 걸어 들어갈 때
하루는 또 한 번의 작별이 된다
꽃송이가 뚝뚝 떨어지며 완성하는 이별
그런 이별은 숭고하다
사람들의 이별도 저러할 때
하루는 들판처럼 부유하고
한 해는 강물처럼 넉넉하다
내가 읽은 책은 모두가 아름다웠다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가 아름다웠다
나는 낙화만큼 희고 깨끗한 발로
하루를 건너가고 싶다
떨어져서도 향기로운 꽃잎의 말로
내 아는 사람에게
상추잎 같은 편지를 보내고 싶다.

 

이기철의 '내가 만난 사람들은 모두 아름다왔다'란 시다

아빠는 할머니를 비롯해서 네 엄마와 너....

모두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났음을....그것이 또 다른 나를 위한

은혜인것을 아주 늦은 나이가 되어서야 배우게 되었다.

 

 

 

현대 작가인 폴라 베커의 1905년작 '엄마와 아이가 있는 누드' 란 작품이다

아빠가 대학시절 지금은 구닥다리가 되어버린 '여성미술'에 대한

관심속에 읽었던 한권의 책에서

소중하게 발견한 작가였다.

 

핼렌 채드윅이란 작가가 쓴 책이었는데

그 책에는 많은 그림들의 도판들이 있어서 보곤 하다가

이 그림 앞에서 갑자기 눈이 멈추어 버렸다.

 

성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찬 사회

에로티시즘과 욕망이란 기제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고

모두가 이 성적 자본을 가져야만 행복하다고 가르치는 이 도덕적 헤이의 시대에도

아이와 함께 누워있는 엄마의 모습은 성스럽고

여전히 우리 내명의 정원속에서 초록빛으로 빛난다.

 

 

우리는 누군가 나를 정말로
포근히 안아주길 바랍니다.

편안하게, 진심으로 따뜻하게
사랑해 주길 바랍니다.

그런 마음으로 안아주는 사람이
곁에 있길바랍니다.

여자만 그렇게 바라는 게 아닙니다.
남자도 그렇습니다.

젊은 남자만 그런 게 아닙니다.

어린이도 누군가 자기를 안아주고
인정해 주길 바라고,

늙고 쇠잔해져 가는 사람들도
안아주고 위로해 주는 사람이
곁에 있길 바랍니다.
사람들은 마음속으로는
다 사랑받기를 갈구합니다.

우린 너무 외롭게 살고 있습니다.
먼저 안아줘 보세요.

나무든 사람이든 먼저 안아주면
그도 나를 따뜻하게 안아줄 것입니다.

앨리슨 카미카엘의 그림을 보다도 그림속 원색의 색채속에

역동적이면서도 강인한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다영이의 엄마가 떠올랐다.

어느새인가 아내는, 다영이의 엄마는

예전 할머니의 풍경을 닮아가고 있더구나.......

 

도종환의 시 한편으로 마무리를 해본다.

엄마와 아빠....할머니와 할아버지....하루에 적어도 4번씩을

꼭 안아주는거...아빠와의 약속. 잊지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