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포구의 달
오늘은 이곳 벤쿠버의 포구마을 스티브 스톤을 갔습니다. 겨울엔 바다를 가는것
보다 한적하게 출항 준비를 하며 겨울나기를 준비하고 있는 어촌을 둘러보는것 또한
매력있는 일이었습니다. 겨울의 시간에 괜한 감상주의에 빠지는 것보다
가열차게 살아가는 생을 준비하는 과정들을 동공속에 담아오는 일이 매력있계 느껴졌기 때문이죠
개인적으로 소설가 한승원의 작품들을 즐겨 읽습니다.
그의 작품들 <까치노을> <폐촌> <포구의 달>등 그의 작품속에 끈질기에 등장하는
남해 바다의 정취와 풍경들이 이곳 스티브 스톤의 모습과 많이도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남해바다속에 한국의 근대사가 용해되어 있듯이
이곳 스티브 스톤은 벤쿠버의 초기 이민사와 연결된 역사가 녹아 있습니다.
한승원이 그려낸 어촌들의 풍경과 바다의 무늬속에서
인간들은 운명에 굴복하지 않은채 자신의 생을 위해 맞서 싸웁니다. 그 과정에서 한 차원 높은
생의 공간속으로 입사해가는 모습들을 우리들은 관찰할수 있지요.
어시장에 가면 언제나 보는 풍경이지만 갓잡은 생선들을 배위에서 팔고 흥정하는
모습은 하루의 시간대에 따라 다른 풍경을 연출합니다. 예전에 수산물을 담당하는 친구를 따라
어시장에 가서 경매하는걸 본 적이 있었는데 부산하고도 치열한 모습이었습니다.
이곳 벤쿠버는 특유의 수온으로 인해서 대구와 연어 그리고 핼리벗이라는 넙치종류의
가자미가 많이 잡힙니다. 아래요리는 오후 늦게 간 스티브 스톤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핼리벗 튀김과 칩스들을 먹어보았습니다. 생선살이 아주 부드럽고 입안에서 녹는다고해야 할까요
스티브 스톤에 가기 전에 친한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사실 약간의 우울증 비슷한 것들이 계속 저를 힘들게 했거든요. 졸업은 다가오고
해야할 미지의 분야와 일들로 인해 머리가 아팠답니다.
여자 후배가 그러더군요. 그럴땐 "오빠 자신에게 가장 달콤하고 멋진 요리를 선물하라"
라고요. 이 친구가 미식가답게 가장 좋은 조언을 한거 같아요.
중국식 국수에 돼지고기를 갈아넣어 핫소스로 마무리한 매콤한 조갯살 스파게티를
함께 먹었습니다. 지갑이 가벼워졌습니다.
식사하고 있는 동안 해가 저물고 어촌 마을에도 하루의 수순을 접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저 멀리 오렌지빛 노을이 옅게 어둠의 층계 아래로 하강을 하고
비루했던 나그네의 하루여정도 끝이 나 갑니다.
바다와 나비 - 김기림
아모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도모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나려 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저러서 공주처럼 지처서 도라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어서 서거푼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김기림의 시에 나오는 나비는 꿈을 가지고 여행을 하는 순진하고 가냘픈 존재로
그려집니다. 그는 문명속에 발가벗은 나목으로 노출된 어리속한 존재입니다.
그가 비상하고 있는 이 바다는 거칠고 냉혹한 현실의 모습입니다
또한 어른이 되고 새로운 세상에 발을 디디기 위해 거쳐야 하는 탐색과 동경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슬프게도 그의 운명은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설익은 생의 시선만을 간직한채 새파란 초생달의 세계속으로
즉 좌절된 꿈의 세계속으로 녹아들어가 버리고 맙니다.
스티브 스톤에서 그의 시를 떠올린 것은 이제 다시 2년여의 자기 훈련과 탐색을 마치고
세상속으로 진입해 들어갈 준비를 하는 제 자신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전과는 다른 모습의 나를 찾기 원했고 슬픈 운명의 미래와 그 하중을
견뎌낼수 있을 만큼의 내성을 내 자신속에 키웠다고 감히 자부합니다.
이제는 새파란 초생달이 아니라 밝은 만월을 보고 싶습니다.
저녁의 시간 오렌지빛 노을과 어울리는 푸른 빛깔의 바다.
마치 파란색 필터로 걸러낸듯한 경험의 앙금들이 여울지는 바다의 표면위로
보석처럼 박혀 있음을 봅니다. 이제는 담대하게 세상을 향해
나가라는 내 안에 계신분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이곳에서 좋은 분들을 만나 행복했고
그 행복한 여정들이 외롭지 않았음을 감사하게 됩니다.
여러분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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