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영화에 홀리다

영화 '위험한 아이들'읽기-교육의 사회학적 지평을 위하여

패션 큐레이터 2003. 6. 9. 11:52

 

 

S#1-학교안의 아이들

됐어 이제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그걸로 족해 이젠 족해

매일 아침 일곱시 삼십분까지 우릴 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 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의 머리 속에 모두 똑같은 것만 집어넣고 있어 막힌 꽉 막힌 모두가 막힌 널 그리곤 덥썩 우릴 먹어 삼킨 이 시꺼먼 교실에서만 내 젊음을 보내기는 너무 아까워

좀더 비싼 너로 만들어 주겠어 네 옆에 앉아 있는 그 애보다 더 하나씩 머리를 밟고 올라서도록 해 좀더 잘난 네가 될 수가 있어

왜 바꾸진 않고 마음을 조이며 젊은 날을 헤매일까 왜 바꾸진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국민학교에서 중학교로 들어가며 고등학교를 지나 우릴 포장센타로 넘겨 겉보기 좋은 날 만들기 위해 우릴 대학이란 포장지로 멋지게 싸버리지 이젠 생각해봐 '대학' 본 얼굴은 가린 채 근엄한 척 할 시대가 지나버린 건 좀더 솔직해봐 넌 할 수 있어
-서태지의 '교실 이데아'-

요즘 학교가 무너지고 있다고 합니다.교권이 무너진지 오래라고 말하고, 한편에서는 열린교육을 위한 공청회가 수시로 열립니다. 대안학교라는 형식의 교육기관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구요.

 

교사가 된 친구들을 만나 학교 이야기를 들으면 제가 다니던 시절과도 엄청난 갭이 존재하고 있음을 감지하게 됩니다.
그런 가운데에서 제 책장속에 꽂혀있는 한편의 영화를 다시 꺼내어 보았습니다.바로 '위험한 아이들'이란 영화였습니다. 한국의 교육현장과는 다소 이질적인 부분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쯤 교육이란 말이 갖는 넉넉한 울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더군요.어차피 영화란 삶에 대한 또다른 재현일수 있을테니까요.

 
이 영화에서 루엘 선생님(미셀파이퍼 분)이 싸우고 싶어하는 것은 소위 문제아반 아이들(여기서는 그것을 아카데미 클래스라고 부릅니다)이 아니라 그들을 구속하고 소외시킨 교육의 권력적 언설이였는지도 모릅니다.

 

빈민가의 아이들,히스패닉,메스티조,흑인아이들,그들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번듯한 학교라는 장소에 놓여 있는 희생물일 뿐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처해있는 실제적인 맥락에 대한 이해없이 문제아라는 인식의 꼬리표를 그들에게 붙일수 없는것이죠.슬럼가의 아이들.....

미국사회에서 백인의 특권의식 속에서 공고해진 권력의 체계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타자들의 모습.그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교육의 대상에서 배제되어 있는 아이들입니다. 문제아가 많은 학교에 한 사람이 온다,그는 다른 이들과 달리 아이들을 이해한다. 아이들은 그를 따른다. 다른 선생들은 그 사람을 싫어한다. 그래서 결국 학교를 떠난다.....대부분의 학교영화가 갖는 기본적인 이야기 구조입니다.

물론 이 영화도 이 범주로 부터 떠나지 못합니다.사실상 영화에서 보여주는 작은 소재상의 차이점만이 있을 뿐이지요. 그들의 수업시간에 교과서를 읽기보다는 딜런 토마스와 밥 딜런의 시와 노래가사를 읽고,그 안에 있는 감정과 그들의 상처를 끌어내 바로 보게 하고 대면하게 하는 루엘의 교육방식은 저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또래집단에서 흔히 이루어지는 짱문화에 대한 이해를 근거로 집단에 응집력을 만들어 가는 루엘의 방식,기존의 교육적인 담론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다가오는듯 합니다.

이 영화에는 여러가지 모습들이 보여집니다. 전인교육을 떠드는 교장선생님이 위험에 처한 학생이 교무실에 들어올때 노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매몰차게 돌려보내고,사회적인 부적응자로 이미 낙인찍어 버리고 하는 모습들.여기에 동조하는 다른 선생님들의 모습....우리사회의 풍경과도 만날수 있는 면모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S#2-빛의 아이들을 위하여

제가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통해 생각하게 되는 것은 다름아닌 학교라는 관료사회에서 여타의 다른 교욱자들이 보여주는 이중적인 가치규범의 문제입니다. 이러한 이중적인 모순에 익숙해져서 공범의식을 가지게 된 또 다른 교사들은 이러한 교육의 모순들을 구조화 시키고 해결해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런 과정이 관습화 할때 대개의 교사들이 애초에 가졌던 바른 인식으로 인한 갈등을 잊어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중복과정을 통해 교직사회와 그들을 둘러싼 교육의 관료주의는 단단한 조개껍질속에 웅크려 견고한 모순들만 알알이 키워내는 기제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교실은 수용과 대항의 장소로서 존재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미세한 현미경으로 바라봄으로써 아이들의 성장과 아픔을 이야기 하는 것이지요.즉 교실이라는 협소한 공간속에 위치한 아이들을 통해 세계와 현실에 대한 변화와 성숙화의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헐리우드가 만들어 내는 교육영화는 하나같이 문제아 반으로 찍혀 있는 아이들을 동질적인 계층성의 문제로 재현함으로 인해, 실제로 그 안에서 치열하게 존재하고 있는 인종차별과 백인특권주의 담론을 교묘하게 지워버리고 있는 것이지요.마치 사회에 대한 아니, 교육 현실에 대한 그들의 반항이 일회적인 카니발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듯 하기도 합니다.

어찌되었든 이 영화를 보는동안 서태지의 '교실 이데아'가 계속해서 떠올랐습니다.촌지문제에서 부터 자율적인 인간으로의 교육이라는 문제까지 너무나도 뛰어넘어야 할 문제가 산재되어 있는 한국적인 교육의 현실.....그러나 믿음을 가져야 할때라고 생각합니다.
아직까지 올곧고 아름다운 교직에 대한 이상을 가진 선생님은 수없이 많고 그런 그들을 배제한체 한국의 교육은 문제있다라는 말로만 때우는 것은 서로에 대한 책임의 회피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믿음이 있기에
교실속에 오늘도 갖혀 있는 그 '빛의 아이들'에게서 희망의 언어들이 그 안에서 만들어져 갈수 있음을 믿기에 다시 한번 손을 모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