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영화에 홀리다

'처녀들의 저녁식사'-여자들이 뿔났다

패션 큐레이터 2003. 6. 9. 11:52

S#1-허리 아래가 자유로운 세상을 꿈꾸며

클레어 존스턴의 유명한 에세이 '대항문화로서의 여성영화'가 발표된지도 20여년이 흘렀다. 그 동안 우리사회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자신의 정체성과 사회적인 성에 대한 인식의 지평들이 곳곳에서 확대되고 있다. 여성영화제가 개최되고 안티 미스코리아 대회등 이슈들을 만들어, 세상의 절반의 주체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있는 지금. 영화는 끊임없이 프레임 속에 비추어진 여성의 이미지로 다양한 담론을 만들어 낸다.

 

오늘 이야기할 임상수 감독의 '처녀들의 저녁식사'는 이런 점에서 우리사회의 성담론에 대한 유쾌한 페스티쉬다. 억압과 금기의 대상으로서의 성을 프레임의 내부로 이끌어 내는 그의 내러티브 전략은 상당히 고단수의 무술인이 보여주는 벽파술의 그것이다.

주류영화에서 찾아볼수 없었던 포르노에 가까운 육체의 노출과 이것들을 식음의 행위와 함께 병치시켜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성을 드러내는데 감독은 주력한듯 하다.

 

그러나 자칫 무거워 질수 있는 주제를 가볍고도 명징한 캐릭터의 연기로 내러티브의 공백을 메꾸어 가는 감독의 이러한 '틀짜기'전략은 무엇보다도 우리사회에 잔존하는 성에 대한 이중의 잣대를 무너뜨리고 이것을 진실하고 투명한 담론의 장으로 확대시키는데 성공하고 있다고 본다.

이 영화에서 호정과 연이 그리고 순이는 우리시대를 살아가는 29세 여성들의 감성적인 최소공약수다. 사랑과 결혼, 쾌락등 자신의 입사식이 이루어진 후 자연스레 다가오는 골칫거리에 대해서 보여주는 그들의 행동양식과 이미지는 자유롭고 투명하다.

 

호텔 웨이트리스 연이(진희경)는 결혼이 인생의 최대의 목표인 여성들의 제현체다. 혼전섹스에 대한 거부감,결혼에 대한 강박관념,이에 반해 디자인 사무실 사장인 호정(강수연) 그녀는 능력있고 적극적인 사고방식으로 많은 남자들과 자유로은 섹스를 즐기지만 성에 탐닉하지는 않는다. 전형적인 도시적 캐리어우먼의 전형성을 보여주는 호정은 섹스로부터 삶이 자유로울때 삶이 풍성할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여자다. 대학원생 순이는 남자 경험이 없는 진짜 처녀로 분한다.

 

 

그녀의 섹스는 오로지 책과 상상속에서만 존재한다. 항상 섹스에 대한 동경심을 가지고 있고 호정의 삶을 그런 점에서 동경하지만 연이보다 더 금욕적인 생활을 한다. 물론 이 세명의 여성성이 동시대의 모더니티 속에 감추어진 섹슈얼리티의 공시적인 단면을 대표한다고는 할수 없지만 영화적으로 볼때는 꽤나 명쾌한 구별짓기에 성공하고 있는 셈이다.

이 영화는 이렇게 구별짓기와 통합의 문화적인 혈장속으로 깊숙히 침투해가는 여성적 목소리의 전략들이 자신의 세부적인 국지전을 시작하고 있음을 알리는 영화다. 1969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페미니즘 다큐멘타리는 이전의 시네마 베리테의 영화적인 기법을 여성의 시각에서 이용해 가부장제의 해체를 위한 전략의 초석으로 삼는다.

 

이 영화에는 이러한 초기 다큐멘타리적인 느낌이 드는 장면들이 인터컷으로 삽입된다. 가령 다소 보수적인 연이가 어느 날 욕실에서 자신의 성기를 확인하는 장면을 보자. 이를 통해 자신의 성기와 섹스에 대해 두려움과 보수성을 깨뜨리게 되는 연이, 우리가 이 장면에서 유심히 살펴보아야 하는 것은 다름아닌 여성 자신이 시점 쇼트의 주체가 되어서 자신의 육체를 정치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가부장제에서 남성에 의해 규정되었던 여성의 육체를 여성 자신이 해체하고 재구성함으로써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 영화는 초기의 페미니즘적인 시각들을 주류영화의 컨벤션 속에 새롭게 진입시켜서 새로운 영화만들기의 전기를 마련한 셈이다. 이러한 시선의 교환과 역전은 영화를 바라보는 행위가 가부장제의 구조와 유비관계가 있다는 일종의 믿음을 확증시키면서 해체시킨다.

S#2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섹스-페미돔의 사회학

이제까지 한국에서 만들어 졌던 소위 여성영화들은 표표피적으로 나마 여성의 구조적인 억압의 상태를 이미지화 하는데 자족해야 했다. 이에 반해 '처녀들의 저녁식사'는 미시적인 영화 정치학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라고 볼수 있을 것이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이제 한국사회가 자신의 견고한 모순의 조개껍질 속에서 탈피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영화인듯 하다. 성에 대해 적어도 항상 타자의 입장에 위치될수 밖에 없었던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해서 자유로운 수다와 대화, 이미지의 병렬을 통해 맑고 투명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점은 높이 살만하다.

 

여성의 신체의 주인은 다름아닌 여성 자신임을 가르쳐 주는 영화. 여명이 트기전 블루빛 새벽의 신산함을 보여주는 스크린의 토닝, 직전으로 바로바로 넘어가는 가시적인 편집방법.

 

롱테이크로 포착하는 사실적인 정사신과 사운드&이미지.특히 수동적인 섹스에 길들여져 있던 연이가 성의 주체로서의 자신의 존재를 깨닫고 성에 몰입하는 과정과 오르가즘을 포착하는 카메라의 미시적인 워크는 여성으로서의 성이 사회적인 젠더로서 통합해 가는 자연스런 과정을 유장한 호흡으로 잡아낸다.

 

이 영화는 어찌보면 그랜드 호텔 양식의 이야기가 될수도 있었다. 개별 3명의 여자들의 독립적인 이야기.그러나 감독은 이런 이야기 구조를 서사체의 조율된 통합으로 이끌어간다.

 

1970년대 미국의 여성 의식 고양 그룹의 페미니즘적인 실천이 여성들의 수다와 대화와 같은 친숙한 형식을 통해서 남성 지배문화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하위문화적인 저항을 이루어 낸점을 고려한다면 '처녀들의 저녁식사'는 이러한 전략들의 영화적인 병합을 의미한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1998년 가을에 찾아왔던 여성영화'처녀들의 저녁식사'는 성이라는 사적영역의 담론이 다시는 생체권력의 조절장치를 통해 남성화된 영역이 되지 않기를 희망케 하는 작은 보듬이다. 구성애의 성담론이 새롭게 받아들여 지고 우리 모두가 참으로 성에대해 무지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던 1998년 가을.......비디오로 다시보는 이 영화는 나에게 다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여성들이여 코발트빛 페미돔을 당신의 자궁속에 집어넣으라고....그리고 당신의 내면속에 감추인 삶의 감탄사를 회복하라고 말이다.....우리들의 아름다운 성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