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영화에 홀리다

영화 키핑 더 페이스-믿음에 대한 예쁜 보고서

패션 큐레이터 2003. 6. 9. 11:52

S#1-인사동 가는 길


지금은 1시 40분, 생에 마지막 예비군 동원 훈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12시 30분이였다. 나에게 주어진 오후의 시간들. 그 여유의 시간들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몸을 재촉해서 인사동으로 갔다.모란 갤러리에 들러서 파푸아 뉴기니의 민속예술전시회를 보고 다시 인사 갤러리에 들러서 종이조각전과 타피스트리전을 보았다. 인사동은 요즘 한창 공사중이다. 이전의 보도블럭들을 거의 다 엎다시피 한채로 인사동을 문화의 기호로 만들기 위한 자본의 움직임은 그렇게 인사동의 숨통을 조금씩 조금씩 죄어오고 있는듯 하다. 한편, 예전에 도예를 보기 위해 자주 들르곤 했던 통인화랑은 화랑의 존폐여부를 둘러싸고 노조원들의 힘겨루기가 한창이었다.

  

S#2-페스트 푸드점에 갖힌 사유

맥도날드에 들러 빅맥으로 배를 채웠다. 이번에 나온 페미니즘 저널 '이프'의 여름호를 읽으며 페스트 푸드점에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들을 하나하나 몰래 살펴보곤 했다. 그들의 표정은 도시의 징후를 말해주는 작은 지표이기도 하다.그들의 한숨과 웃음에는 작은 삶의 사유가 있다. 난 부박함을 싫어하지 않는다. 그것이 진실한 기호를 가질수 있다면 말이다. 무겁고 진지한 것으로 포장된 사유는 그들의 미소를 읽지 못한다. 더군다나 열 올리며 이야기할때마다 올라가는 눈썹의 깜빡임은 더더구나 해석하지 못한다.

 
S#3-영화 '키핑 더 페이스' 읽기

잘나가는 랍비와 잘 생긴 신부, 멋진 여자가 벌이는 세상에서 가장 유괘한 스캔들.....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는 전단지를 보고 들어간 영화'키핑 더 페이스'믿음 지키기라고 해석하면 될려나.....영화가 시작되면 맨하탄을 배경으로 세 사람이 등장한다. 물론 시작은 이 영화의 감독이자 신부역으로 나오는 브라이언의 선술집 독백으로 시작한다. 이 영화의 축은 이 세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이루어진다.

 

어린시절부터 죽마고우로 지내온 제이크(벤 스틸러)와 브라이언(에드워드 노턴)은 초등학교 시절 삼총사였던 애나를 만난다. 물론 두 남자의 마음은 설레인다. 하지만 제이크는 유태인 랍비이고 브라이언은 천주교 신부다. 제이크와 애나는 사랑에 빠지고....그들은 사실을 브라이언에게 숨긴다. 그들의 미묘한 삼각관계.이 영화를 보면서 시종일관 난 한가지만을 생각했다.

 

삶에서 믿음이란것을 선택하고 이것을 지키는 과정은 매우 어렵다라는 것이다. 꿈에 그리던 여자를 만나고도 사제의 순결서약때문에 혹은 이교도를 랍비의 아내로 삼아서는 안되는 유대교회의 전통때문에, 그들은 상처입고 힘들어 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감독 에드워드 노턴은 이런 꽤 무거울수 있는 주제를 매우 가볍고 예쁘계 미장된 한편의 로맨틱 코메디로 만들어 낸다. 이런 소재의 영화들이 탄탄한 이야기 구조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캐릭터에 대한 명확한 구축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성공하고 있는 셈이다.

 

드라마틱한 남성미와 코믹센스를 동시에 갖춘 제이크, 당당하고 똑똑한 여자 애나,그리고 유약해 보이지만 강한 내면의 남자 브라이언. 특히 두 남자의 설교방식은 아주 독특하다. 신도를 모으는 방식 모두 전통과 멀리 떨어져 있다. 하지만 웃음을 준다. 밉지않다.데이트 하러 나온 여자가 설교문을 직접 쓰냐는 질문에 구세주 닷컴에서 다운 받아서 사용한다는둥, 즐거운 찬양을 부르자면서 흑인 합창단을 들여보내는 랍비등.재기발랄하면서도 유쾌한 영화적인 장치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이 영화는 마치 세 친구 안의 두 연인이라는 예전 프랑수와 트뤼포 감독의 '쥴 앤 짐'의 기초적인 드라마 구조에 프랭크 카프라의 '미스터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의 정신성을 결합한 듯한 느낌을 주는 영화다. 영화의 종반부에 랍비인 제이크가 신도에게 하는 설교는 거의 카프라적인 결말이다. 도덕성과 순결성에 대한 가치, 미국식의 정결의식에 대해서 짤막한 사과문을 읽는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들을만한 말들의 풍경을 아름답게 그려낸다.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그럴듯함이라는 영화적인 명제를 위해 가벼움이란 미덕을 잃지 않은 듯 하다. 슬랩스틱 코메디라고 읽을수 있지만 탄탄한 소재와 플롯으로 인해 그러한 미덕을 더욱더 가열차게 만들고 있는 영화다. 물론 여기에는 배우이자 감독인 에드워드 노턴의 연출력과 그의 예일대 동창인 시나리오 작가 블룸버그의 공교한 틀짜기 전략이 베어들어 있다.

 
이 영화에서 돋보이는 것은 종교가 아닌 믿음간의 대화이며 공존에 대한 신뢰다. 맨하탄이라는 인간의 섬위에서 그들은 문화적으로 포용하며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물론 이러한 면들이 일견에 보기에는 그렇게 쉽게 수긍할수 있는 측면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페미니즘의 안경을 쓰고 보면 강철같이 강하고 똑똑한 여자가 사랑에 빠져서 정신 못차리고 결혼이란 이데올로기에 쉽게 빠져버리고 마는 것처럼 보일수도 있고, 배타적인 종교성을 가지고 보면 그것은 전통에 대한 가벼운 조소나 타협할수 없는 이단성들이 내밀하게 들어가 있는 영화적인 텍스트이기도 하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견고한 모든 것들은 인간의 섬위에서 새롭게 용해되고, 침전된 상처들은 인간의 숲안에서 새살이 돋는다. 유대교의 전통도 사제의 무조건적인 순결의식도, 이 모든 것들이 사람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선물임을 깨닫게 될때 그들이 살고 있는 섬은 서로간의 거리에 의해 격절된 고립된 섬이 아닌 모두가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삶의 장소가 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