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영화에 홀리다

영화 '일 포스티노'-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생각함

패션 큐레이터 2003. 6. 9. 11:52

 

S#1-파블로 네루다의 시세계

파블로 네루다는 1904년 칠레남부의 피랄에서 철도 노동자인 아버지와 평온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자라났다. 중남이 문학사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치는 중요하다. 왜냐하면 네루다에 이르러서야 스페인, 중남미 시 개혁이 일단 그 대단원의 획을 긋는 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 획이란 다름아니라 세자르 바예호로 부터 우이도브로 이어지는 유사 아방가르드적인 중남미 시가 확연하게 초현실주의적인 색채로 정격화 되기 때문이다.

네루다의 1923년 '스무편의 사랑의 시와 한편의 절망의 노래' 그리고 1925년부터 1935년,47년에 걸쳐 각각 출판된 '지상에서의 주거'3권은 중남이 특유의 열대성 초현실주의의 정점을 이룬다. 스페인의 후안 라메네스같은 대시인의 순수시에 대항하여 비순수시를 부르짖고 출발한 네루다는 인간실존의 어두운 현실과 혼동의 절망적 상황을 '물거품'처럼 쏟아붓는다.

 


그의 근본 시정신은 사랑이다 인간을 절망과 좌절로 빠뜨린 '지상에서의 주거'의 세월이 사랑부재의 실존적 몸부림이었다면 그의 민중시 또한 진정한 인간성 회복을 위한 울부짖음이었다. 네루다의 다혈성, 열대성은 보다 깊은 현실이나 실존의 상황을 구체화할때 무질서에 가까운 이미지의 광란으로 변한다.

용광로에서 흘러넘치는 쇳물처럼 그 다양한 쇠붙이 혹은 경직된 이미지가 하나의 물줄기를 이루면서 쏟아진다.

사랑과 절망 고독과 좌절,알수없는 실존의 늪에서 아우성치는 소리들은 그 목마름과 절규의 온도에서 일치한다. 네루다의 시학은 사랑의 아픔에서 시작하여 존재의 고독한 몸부림으로 복합성을 띤다.

그의 시가 가지고 있는 우수와 절망속에서 나는 영화 '일포스티노'를 읽었다. 하지만 결과는 절망이 아니라 그 안에 소담하게 놓여있는 희망의 언어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 영화는 외국영화로는 22년만에 처음으로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에 노미네이트 되었던 작품으로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스웨덴 영화의 거장 잉그마르 베르히만이 '외침과 속삭임'으로 1973년 작품상 후보로 거론된 이후로 처음있는 일이다.

이 영화의 감독 마이클 랫포드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삶의 섬세한 리얼리티를 잔잔하게 재구성한다. 그런 재해석과 구성의 힘은 지중해의 열대성과 맞물려 지면서 에메랄드 빛 바다의 힘을 껴안게 된다.

'일 포스티노'는 순박한 어부의 아들이 20세기 최고의 로맨틱 시인과 만나면서 자신의 예술적 감성과 사랑을 발견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본국 칠레에서 추방당한 후 이태리 정부가 나폴리 근처의 작고 아름다운 섬에 그의 거처를 마련해 준 실화에 근거해서 만들어졌다.

이태리의 작은 섬에 어느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인 네루다가 찾아온다, 그위 전 세계에서 네루다에게 로 날아오는 편지들로 고민하던 우체국장은 어부의 아들 마리오를 단 한사람의 수취인을 위한 일포스티노(우체부)로 고용한다.

 



마리오는 시가 뭔지 메타포가 뭔지 모른다.
그가 시인 네루다를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단 하나....그가 수 많은 여자들로 부터 편지를 받기 때문이다. 그렇게 단순히 우편 배달부와 수취인의 관계로 시작된 그들의 관계.

마리오가 마을에 사는 베아트리체란 여인을 사랑하게 되면서 그는 변화된다.그는 네루다에게 시에 대해서 묻고 질문하기 시작한다. 그를 통해 그는 시인이 된다. 네루다가 고국으로 돌아가고 그는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자신의 시를 읽다가 정부군의 진압과정속에서 죽는다.....

내가 이 영화에서 발견하는 미덕은
다름아닌 소박함과 진솔함이다. 수많은 시론을 읽고 습작기간을 거치고 그런게 시인은 정련되는 순금처럼 만들어 지기도 한다.

 

그러나 시란....아니 시라는 영혼성의 문제를 가슴속에서 피워가는 사람에겐
따분한 작법의 메뉴얼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음을, 어찌보면 시를 쓴다는 것은 극중 네루다의 말처럼 소라고동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수 있는 감성과 넉넉함만으로도 충분할수 있음을 내게 일깨워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