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영화에 홀리다

영화 '아메리칸 퀼트'-바느질로 그려내는 상처의 풍경들

패션 큐레이터 2003. 6. 9. 11:52

S#1-내 마음의 아라크네
매주 토요일 2시면 어김없이 들르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역삼역에 있는 퀼트 하우스라는 곳이지요. 이곳은 퀼트 마스터 고재숙 선생님이 운영하는 퀼트샵이구요. 저는 이곳에서 일주일에 두번씩 아메리칸 퀼트를 배웁니다.배운지는 6개월째 중급반을 마쳤지요. 그동안 많은 작품들을 손으로 직접 만들어 보았습니다.

 

기계로 재빨리 만들어 내는 머신퀼트도 좋지만 한땀한땀 소중하게 바늘코에 실을 꿰어 누비고 감추고 하면서 만들어 내는 퀼트의 매력은 아무리 과장해도 더함이 없는듯 합니다.본을 뜨고 천을 고르고 패치워크를 하고 안정감을 주기 위해 시접처리를 하고 마지막으로 퀼팅을 하면 한편의 작품이 만들어 집니다.

바느질을 배우게 된 동기는 제 마음속에 있는 아라크네의 욕망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개인적으로 옷과 관계된 일을 하지만 항상 바늘과 실이 만나 천과 천을 엮어가는 과정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내 마음의 상처들이 봉합되고 안정됨을 느끼게 되었답니다.

S#2-아메리칸 퀼트를 만든다는 것은
조슬린 무어 하우스의 '아메리칸 퀼트'를 보면서, 그 영화가 또한 새롭게 다가오는 것은 퀼트라는 예술이 제게 가르쳐준 따스함과 바느질을 행하는 사람에 따라 질료의 아름다움이 바뀌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제작진 모두가 여자라는 점에서 여성의 세미한 목소리로 침윤된 내러티브와 화면구성. 모든 면에서 '아메리칸 퀼트'는 또 다른 목소리로 기억을 재구성하는 화자의 목소리에 현대적인 논의와 페미니즘의 풍경을 잘 버무려 그려내는 한편의 시편같습니다.

휘트니 오토의 소설을 원작으로 최근에 헐리우드의 여성감독군으로 등장한 제인 앤더슨의 각색. 이 모든 여성들의 협력과 함께함의 아름다움이 이 영화의 곳곳에보석처럼 박혀 있는 듯 합니다. 감상주의로 점철된 '철목련'이나 여성들의 연대와 우정을 그린'사랑을 기다리며'나 '보이즈 온 더 사이드'와는 또 다른 목소리로 조용하면서도 자유로운 페미니즘의 논의들을 끌어냅니다. 바느질을 해 가는 과정은 무척이나 느리고 시간이 걸리는 과정이지요. 개인적으로 퀼트를 잘하는 것은 재능의 문제라기 보다는 때로는 지루하기도 하고 인내가 필요한 여정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의 문제라고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그런 관점에서 이 영화를 보면 여성의 삶과 사랑을 말하되 전략적인 '느림'의 구성으로 천천히 홀로 그러나 외롭지 않게 재현해 내는 것 같습니다.


 

할머니의 집에 가서 여름 한철을 보내게 된 주인공 핀(위노나 라이더)는 현재'부족문화에서 여성의 수작업이 갖는 제의적 의미'라는 논문을 쓰고 있지요.'조각이불을 만드는 꿀벌'이라는 모임을 알게 되고 여기의 구성원들을 통해 그녀는 결혼과 사랑에 대한 자신만의 결론을 갖게 된다는....다소는 진부할수도 있는 할리퀸 양식의 이야기 구조입니다. 하지만 감독의 유연한 연출은 플래쉬 백과 보이스 오버를 통해 작은 미국사회의 소읍에서 일어나는 개인적인 경험들의 파편들을 아름답게 봉합하고 짜맞추어 갑니다.

이 영화가 아름다운 것은 위노나 라이더 한 개인을 통해서 사랑이란 화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일곱명의 인물을 통해서 균등하게 배분되고 재현되기 때문이지요. 때로는 너무도 느리고 안온하게 보일수도 있지만, 그 안에서 감독은 개인의 체험을 재구성하면서 가정불화와 가족내의 간통으로 인한 상실의 아픔,현대적인 독신여성의 모델등을 제시합니다.

 

 


평론가 리제 스펜서의 말처럼 이 영화에 나오는 여성들은 불행하기는 해도 운명의 희생자는 아닙니다. 오히려 그녀들은 중심의 힘을 갖고 자신들의 운명을 자신의 손에 쥐고 있는 헤스티아 여신의 전형성을 보여 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 합니다.

S#3-씨실과 날실, 봉합을 위한 메타포
또 다시 바느질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겠습니다. 바늘이란 물체를 한번 제대로 보신적인 있는지.....
바늘은 우리의 살갖을 찔러 피를 내게 할수도 있지만 또한 찢어진 상처를 꿰메고 봉합할수도 있음을 느껴보세요. 핀을 위해 만들어준 아플리케 퀼트.....각자의 경험과 기억이 용해된 아름다운 천조각들이 한데 모여서 기워지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한사람에 대한 7명의 할머니들의 애정이 전달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만들어준 퀼트의 이름은 '사랑이 머무는 자리'였습니다. 퀼트는 전통상 각자 의미를 가진 이름을 갖습니다. 영화 '위트니스'에서 아미쉬 신도들이 만들던 청교도적인 아미쉬 퀼트,서부생활의 체험이 용해된 로그캐빈 퀼트,결혼선물로 많이 만들어진 웨딩 링 퀼트등 여러가지가 있지요. 그들이 주인공에게 만들어준 퀼트를 흔히 '우정퀼트'라고 합니다. 자신의 소중한 경험의 한 부분을 천으로 떼네어 이를 붙이고 아플리케 자수를 한땀한땀해서 선물로 증정합니다.

마지막으로 나오는 대사.....
"중요한 것은 조화를 생각하는 것이다". 화려하면서도 중심의 힘을 잃지 않는 퀼트를 만들기 위해 항상 생각해야할 아포리즘입니다. 내 마음에 드는 천만 골라 붙일수 없는 것. 바로 사랑도 삶도 그런 것일거라는 메세지를 이 영화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