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영화에 홀리다

소년 그레이스를 만나다-영화 '섹스 에나벨 청 스토리' 읽기

패션 큐레이터 2003. 6. 9. 11:52

 

S#1-테크노마트 가는 길

 

개봉하자 마자 달려가는 강변의 CGV. 오늘은 드디어 어느 평론가의 말대로 "한국사회의 페미니즘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것'이라던 섹스 에나벨 청 스토리가 개봉된다. 맑개 개인 봄의 서정성, 나는 회사를 마치고 가벼운 샌달과 하늘빛 자켓 그리고 회청색 스판티를 입고 CGV로 간다.포르노 그라피의 잔다르크라고 말하는 그녀를 보러.......과연 그녀가 여성을 위해 싸우는 페미니스트 전사인지 혹은 상업성에 기대어 자신의 상품가치를 현학과 논리의 수사학으로 교묘히 탈바꿈시키는 사기꾼에 불과한 것인지........난 알고 싶었다.

S#2-소년 그레이스를 만나다

영화를 보러 어슬렁 어슬렁 들어오는 사람들 앞의 3번째 줄까지는 연인들이 그리고 내가 앉은 D열 14번 옆에는 중년의 부부가 앉아있다.지루하지 않은 오히려 재미있는 예고편이 끝나고 본 영화가 시작된다. 오픈 크레디트....비디오 단편영화의 차가운 느낌. 대학시절 촬영시간 선생님의 말이 떠오른다. 비디오는 촬영을 배우기에는 좋은 매체이지만 필름이 가지는 따뜻한 느낌을 체득하지 못하고선,좋은 영화를 만들지 못한다고...... 그렇게 이 영화는 차가운 감성위에서 한 사람의 소서사를 그려내고 있었다.

 

그녀를 둘러싼 학교의 풍경과 그녀의 친구들을 통해 구술되는 그녀의 이야기. 그녀가 매우 학구적이고 여성학 수업을 열심히 들었고 학문적인 실천을 위해 영화제작수업을 들어야 했다는 식의 이야기들.....그녀의 어머니가 나오고 중국에서의 여성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한편으론 드디어 사람들이 기대했을 251명의 남자와의 릴레이 섹스 씬이 조금씩 삽입된다.

 

10여시간에 걸친 장구한 여행. 땀을 닦으며 그녀는 이야기 한다. 인간의 성욕이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알아보기 위해서라고.....그리고 이벤트가 끝난후 그녀의 건강을 위한 HIV진단 테스트가 이어지고....위험할수 있는 이벤트 그녀는 왜 목숨을 걸고 그런 무모한 일을 벌인 것일까.....

그렇게 이 영화는 그녀가 펼진 멋진 이벤트에 대한 셀프 카메라였다.그만큼 이 영화는 1인칭의 느낌이 든다. 친밀감과 따뜻함이 비디오의 차가운 감성 위에서 새로운 프레임의 미학을 만들어 낸다. 영화를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발화하는 매체로 인식한다는 그녀는 이 영화를 통해서 오히려 그녀의 이벤트를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다는 것일까.(이때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상상한 영화가 아니라는 듯 하나둘씩 자리를 뜨기 시작했고 내 옆에 있는 중년의 아저씨는 아예 코를 골고 자고 있었다-서글픈 이땅의 페미니즘이여)


S#3-섹스 에나벨 청 스토리- 그 이면의 상처 혹은 슬픔의 풍경

 

로라 멀비는 그녀의 기념비적인 논문 '시각적 쾌락과 내러티브 영화'에서 성적인 불균형이 하나의 관습으로 자리잡고 있는 사회에서 여성은 욕망의 대상이 되고 남성은 자신의 정체성을 위한 시선을 투사하는 주체가 되어버린다고 말하고 있다. 난 사실상 이 영화를 그러한 성 정치학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싶지는 않았다. 어찌보면 난 그녀의 어린시절 성 정체성의 위기는 바로 그녀가 살고 있는 싱가폴이란 지역적 특성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도둑이 없는 나라 경찰이 많은 나라 침을 뱉는 사람이 없는 깨끗한 나라. 종교성이 강한 나라 싱가폴. 그녀의 상징계는 이러한 엄격성을 기반으로 하는 문화적인 특질 위에서 성립되는.....그렇기에 답답하고 어디 한군데 퍼부어 볼대없는 그런 특성을 가지는 듯 하다. 그녀는 달려가면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니네들이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어?" 똑똑한 여자들이 살아가기에 힘든 세상. 툭하면 고분고분한 맛이 없다며 짜증내는 남자들. 서구든 동양이든 color="#8000FF">남성들의 지배적인 욕구는 여성의 젠더를 항상 수동적인 타자로서 재현하고 재생산한다. 정치학이란 가치의 배분을 꿈꾸는 거대한 서사다.

 

성의 정치학이란 바로 다름아닌 이렇게 성(性)의 가지를 두고 힘의 관계에 대한 사유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녀가 자라왔던 아시아권 사회가 고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여성에 대한 폄하된 시각과 성에 대한 이중적인 기준에 찌들려 있음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 이러한 이중적인 기준은 위선을 잉태하고 이러한 힘의 관계속에서 여성을 남성의 복속되는 존재로서 고착화 시키는 권력의 형식들을 만들어 낸다. 그져 여자들은 살림이나 잘 하는 것이 최고요 기집년이 잘나봐야 팔자가 드세다는 둥.....정말이지 아직까지도 이렇게 짜증하는 사회적인 풍경을 보아야 하는 우리들에게 그녀의 영화는 한편의 시원한 복수극이지 싶다.

 

S#4 어메이징 그레이스-아름다운 삶을 위한 레퀴엠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이 영화의 끝에 그녀는 엄마와 오랜 대화를 나눈다. 그녀가 다시 자리를 찾을수 있을거라고 말하는 엄마의 서늘한 눈빛. 그레이스는  서글픈 눈물을 떨군다. 그녀가 항거하고 싶었던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 엔딩 크레디트와 함께 들리는 연주 '어메이징 그레이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모두에게 비를 내린다는 성경의 구절이 떠올랐다. 그녀가 말하고 싶은 것들이 어떤 것일지 머리속에 그려져 왔다. 그녀를 단죄하러 온 사람들 모두 그녀 또한 하나님의 딸인 것을 알련지......세상은 그날따라 내겐 아름다운 곳이었다. 목소리를 찾기 위한 저항의 여행 이제 그녀는 다시 포르노 배우가 된다. 이제는 배우가 아닌 감독의 입장으로 세상과 대화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