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하는 그림은 벨기에의 상징주의 화가 페르낭 크노프입니다.
그는 원래 사실주의가 벨기에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하던 당시
자신의 화력을 시작했던 작가입니다.
초기의 그의 그림은 사실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예술은 본질적으로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사실과 허상의 배후에 있는 필연적인
신비감을 드러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게 됩니다.
그의 이러한 주의는 그를 바로 상징주의 화가로 성장하게 만드는
요소가 되지요
위의 그림은 바로 그가 사랑한 자신의 누이동생 마르그리트를
모델로 하여 그린 '기억'이란 작품입니다. 그는 누이와 연인관계였지요
그래서인지 규범의 경계를 넘는 그의 그림에는 바로 일탈의 정서가
몽롱한 정서 속에 그려져 있습니다.
아래의 그림은 '나는 나를 가둔다'라는 그의 대표작입니다.
시대의 정신 아래 날개가 부서진채 방황하며 스스로의 세계에 가려진
지식인의 초상을 상징적으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상징주의 화가로서의 그의 대표작인 '애무'란 작품을
여러분은 아래에서 보실수 있습니다.
이것은 원래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란 제목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지요
아마도 그리스 신화를 읽어보신 분이라면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의 일화를 여러분은 잘 알고 계실것입니다.
테베로 가는 산의 길목을 막고 있는 괴물
그는 그 길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져
대답하지 못하는 이들을 찟어서 죽이게 되지요.
그의 질문은 아마 여러분들이 알고 있듯
아침에는 네발로
정오에는 두발로
저녁에는 세발로 걷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이죠
물론 정답은 인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단순히 인간이란 답 대신 우리내 삶의 풍경
무엇보다도 휴머니티의 본질이 무엇이며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한
알레고리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지요.
물론 알레고리는 이후 그가 수수께끼에 답을 하고 테베의 왕이 되어
왕비와 결혼을 하지만 그녀가 자신의 어머니임을 알게 되지요.
그는 수수께끼를 넘어설 지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의 운명까지는 극복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 그림에서 크노프는 다소 양성애자로의 오이디푸스의 이미지를 그려냅니다.
이 그림에는 바로 18세기 자본주의가 세계의 패권을 쥐고
인간과 자연을 철저하게 분리하기 시작한 시대의 상처를 그려냅니다.
지식인들은 이제 자신의 지식을 가지고도 세상을 풀어낼수 없음을
자본주의의 거대한 폭력 앞에서
어디에도 갈수 없이 서성이고 있는 자신의 모습들을 보게 된 것이죠.
크노프의 그림에는 바로 그러한 정신의 서성임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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