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항거
이번 출장기간 동안 파리를 한번 갈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근대란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한 전범처럼
다가오는 도시, 파리. 파리는 그렇게 제 시야속에 들어옵니다.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란 책을 들고
간 출장길이었습니다.
이번 출장길에는 나이가 지긋하신 엔지니어분을 대동하고 갔답니다.
그분들은 파리가 처음이라 거의 일일관광을 하는 마음으로 모시고 다녔어요. 하지만 어찌되었건
편안한 마음만 가득하게 세느강을 거닐고 군것질을 하며 보냈습니다.
자유를 위한 시민의 혁명과 구질서에 대한 긴장,
지금은 유럽연합을 이끌어 가는 선두의 자리에 선 나라.
권력에 대한 항거를 위해 진홍빛 피가 비가 되어 내렸던 곳.
적어도 프랑스의 역사는 뜨거우면서도 여전히 우리에겐 우원한 거리에 놓여진 존재로 남아 있습니다.
프랑스는 갈때마다 다른 느낌을 부여하는 곳입니다.
특히 파리는 갈 때마다 그 예전 루브르에서 보았던 고전주의 푸생의 그림처럼,
수많은 드레이프를 하나씩 거둬가며 속살을 보기 위해 조바심하는 남자들의 시선을 발견하게 합니다.
파리의 배꼽이라 부르는 시테섬과
그 안에 있는 노트르담 사원. 하늘을 향해 뾰족한 첨탑을 세워버린 인간의 감성은,
도시의 발전과 더불어 시작된 서민 중심의 고딕 문화를 형성하고
그들의 작은 소망은 페르시안 블루빛 하늘에 닿기라도 원하듯 그렇게 하늘을 향해 두팔을 뻣어갑니다.
거리에는 참 오랜시간을 입맞추고 있는 연인들과 도시를 가로지르는
세느강을 따라 차가운 역사를 감싸안은 근대의 미완의 도시를 걸어봅니다.
개선문을 중심으로 12개의 방사선 모형으로 뻣어 있는 도시.
일일이 거론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걸리는 유적들과 건물들.
유럽의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로서의 ‘파리’는 이제 예술을 위한 영감을 찾기
원하는 예술가들에겐 일종의 ‘거대담론’의 위상을 가집니다.
루브르 박물관을 끼도 돌아가는 초록빛 공원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이
살갑고 편안해 보입니다. 출장만 아니라면 편안한 차림으로 저렇게 누워볼텐데요.
세느강을 따라 양옆에 놓여진 시간의 결을 되집어 갑니다.
오후의 한나절을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고 있는 소르본의 학생들이며
레오 까락스의 영화처럼 좌절과 상처와 사랑이 병존하는,
이제는 점점 아파져서 다리 가운데를 보수하는 퐁뇌프와 아폴리네르의
클리쉐 같은 한편의 시 속에 흐르는 미라보를 거쳐
그렇게 유장한 흐름의 뱃놀이는 끝이나갑니다.
유럽의 중심이 되길 꿈꾸었던 나라,
공학의 절정을 이루는 에펠에서 바라보는 인간의 땅은
잘 구획되고 설계된 한편의 건축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여행을 하며 느끼는 것은 항상 “그곳에도 사람이 있었네” 라는 감성이지요.
지금까지 파리를 5번 가는 동안 세상에나.....처음으로 에펠에 올라보았습니다.
역시 동료들이 있어야 이런 촌스런 멋을 부려본답니다.
신인상주의 기획전이 열리고 있던 오르세에 오랜만에 들어갔습니다.
다행히 모시고 간 엔지니어분이 미술을 좋아하세요. 어찌나 기쁘던지요.
개인적으로 루브르보다는 오르세를 좋아합니다. 그 이유는 가장 프랑스적인 작품들이 많은
미술관이기 때문이죠. 사실 루브르 박물관의 많은 소장품 중 대부분이 식민주의 시절 다른 나라를 약탈하여
뺏어온 것들을 전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프랑스라는 문화적 대국의 이름 앞에는
이러한 어둠의 잔영들이 놓여 있습니다. 이보아 교수의 글 <루브르는 미술관인가>란 글을 읽어보세요.
그들의 식민주의 문화정책이 오늘날의 문화의 제국 <루브르>를 어떻게 구성하게 했는지를 알수 있답니다.
파리지엔은 유럽에서도 가장 보수적이고 검소한 사람들로 평이 높건만,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코스메틱 브랜드의 대부분이 이 곳에서 양산된다는
이유로 이곳의 여자들은 굉장히 사치스럽거나 최첨단 유행을 걷는 것 같은 오인속에 살아가는 것도…
사실 파리란 아름다운 도시의 풍경 속에선 모든 것이 용서되는 것 같습니다.
행복한 자유를 위해.....파리를 선택한 시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그렇게 흘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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