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 미술관 아카데미 강의를 마치고, 이곳에서 열리는 전시를 봤습니다. <금호 영아티스트 : 16번의 태양과 69개의 눈>이라는 제목의 전시에요. 개관 30주년을 맞아 지금껏 역대 금호 영아티스트 작품들을 한 자리에 모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작품들을 돌아보는데 많이 익숙한 작품들이 많았지요. 그렇다고 해서 익숙함이 진부함을 뜻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들의 작품을 좋아했고, 작품에 임하는 태도와 관점을 좋아했습니다.
젊은 작가들의 작업에는 항상 눈길이 갑니다. 눈길은 아무에게나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저 화이트 큐브에 걸린 작품들의 세계에도 호불호가 있습니다. 젊은 작가들은 항상 이중의 벽과 마주합니다. 기성이란 이름의 뒤에서 여전히 '부상(Emergence)을 위해 싸워야 하는, 자신의 의미를 세상에 알려야 하는 부담과, 자기작업을 지속적으로 해나가며 자신의 정체성을 세우는 것. 두가지요
이우림이란 작가의 그림을 처음 봤을 때부터 참 좋아했습니다. 한 때 <하하미술관>이나 <댄디 오늘을 살다>와 같은 한국 현대미술작품을 통해 한국사회를 읽어내는 에세이들을 열심히 쓸 때, 항상 머리 속에 떠오르는 작가 중 한 명이었죠. 이런 결의 책은 앞으로도 쓸 생각입니다. 이 작가를 소개하지 못해 아쉬운게 많아요. 저 숲을 보호색으로 삼아 자신의 정체를 숨긴 이들의 초상을 볼 때마다, 바로 다름아닌 제 자신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마음을 숨기는게 쉽지 않지요. 그림이 눈에 들어올 때가 있어요. 뭔가 마음 한 구석을 콕 찔린 듯한 느낌에 말이에요.
어느 시대나, 미술사를 보면 항상 기성에 대항하는 젊은 피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관학풍의 그림, 서유럽으로 국한하자면 아카데미 풍의 그림에 저항하며, 바로 자신들이 당면한 사회의 풍경, 정신적 태도, 변화하는 트렌드를 그려냈지요. 저는 이런 청년작가들을 A band of Protestant 라고 부릅니다. 종교적 색채를 빼고, 사회에 저항하기 위해 띠를 두른 연대랄까요. 시대가 변해가면서, 그들이 처음에 낸 목소리가 주류가 되고 새롭게 변모하는 사회를 비춰가는 거울이 되는 것. 미술사는 어찌보면 이런 역사의 반복일지도 모릅니다. 좋은 그림을 보면서, 그림 속에서 작가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들은 오늘도 제게, 진부함에 빠지지 말라고 꾸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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