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국판 패션/뷰티 매거진 얼루어(Allure)는 더 이상 안티-에이징이란 표현을 쓰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편집장인 미셸 리는 "알게 모르게 이 표현은 노화(Aging)를 우리가 싸워내야 하는 삶의 조건처럼 만든다" 며 그 이유를 밝혔다. 해묵은 체증이 내려갈 듯한 시원함을 선사한 편집장의 말에 마음이 꽂혔다.
2.
안티에이징은 1980년대의 문화적 부산물이다. 80년대 보수주의적 정치논리 하에 신자유주의가 또아리를 틀던 시절, 블링블링한 각종 패션 브랜드들은 도시의 여피들, 전문직 여성들을 추앙하며 각종 뷰티시술과 제품들을 광고로 쏟아냈다. 매년 두자리 숫자로 성장해온 화장품 산업은 시니어 여성 시장확대를 위해 안티에이징이란 단어를 교묘하게 마케팅에 사용했다. 미국 은퇴자 협회(ASA)에서는 이 단어를 10년 전에 이미 금지시켰지만 여전히 웹사이트와 잡지에선 사용되었다. 사실 안티에이징은 여성만을 잠재고객으로 밀어부쳤다. 엄청난 성차별적 언어였지만 사회는 이 단어를 자연스레 수용하고 있었다.
3.
얼루어 매거진이 안티 에이징이란 단어 하나에 반대 의견을 내고, 공식적으로 '사용금지' 조치를 취한 것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겠지만 뷰티 잡지 특성상, 수많은 광고주가 화장품 기업임을 고려할 때, 내부 저항도 상당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매거진이 이런 취지를 내세울 때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시대의 변화'를 목도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름다움은 한 가지가 아니다. 이 속에는 셀수 없이 많은 다양성이 존재한다.
4.
올해 72세인 배우 헬렌 미렌이 얼루어의 모델로 섰다. 당당한 노년의 여성들이 뷰티 및 패션 브랜드의 주요 모델로 서고 있다. 좋은 징후다. 나는 <옷장 속 인문학>에서 시니어 패션과 그 필요성에 대해 꽤 긴 글을 썼었다. 최근엔 이와 관련된 전시를 기획하느라 다양한 브랜드와 디자이너들을 만나고 다녔다. 우리는 노년을 다루는 언어부터 성찰할 필요가 있다. 언어는 결국 재현의 문제이고, 언어부터 노년을 부끄럽게 만들면, 그 언어를 쓰며 우리는 자연스레 노년에 대해 부정적 인상을 갖게 된다. 노년은 우리 스스로 의미를 복원하고, 창조 하는 시기여야 한다. 지난 4년간 시니어 패션 라인을 만들 것을 조언하며 패션 기업에 컨설팅을 다녔다. 올해도 두 회사가 의사타진을 해왔고, 이에 관계된 논의를 해 갈 생각이다.
5.
난 시니어 세대를 생각하며, 내게 곧 닥쳐올 삶의 경로를 떠올린다. 난 내 강의를 듣는 시니어들에게 약속했다. 입으로만 시니어를 위하고 실제로 그들이 자신의 삶을 재구성할 사물과 옷과 서비스를 기획하지 않으면 이야말로 립서비스가 아닌가? 나는 그들이 쓰고 입고, 쉬고, 놀고, 자신만의 미를 뱔견하는데 필요한 실제 사물을 기획하고 설계하는데 동참하며, 내 생각에 살을 입힌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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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 에이징, 이 딴건 개나 줘버려도 되는 사회가 우리 눈 앞에 왔다. 사회적 변화는 이렇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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