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인큐베이터

에스모드 서울 졸업심사 리뷰-우리의 삶은 한 편의 정물화다

패션 큐레이터 2017. 12. 7. 03:53



에스모드Esmod에서

패션스쿨 에스모드의 졸업작품 심사에 다녀왔다. 에스모드 학생들에게는 항상 믿음이 있다. 완성도가 높은 졸업작품을 선보인다. 특히 소재나, 표면디자인, 디테일 개발에 에너지를 많이 쓴다. 완성도란 측면은 매우 다면적인 각도의 렌즈로 작품을 볼 수 있음을 뜻할 것이다. 소재개발이나 독특한 학생들만의 손길로 만든 커스텀 프린트, 직조방식 등을 꽤 꼼꼼하게 살펴본다. 내 옆에는 에스모드 파리의 교장선생님 크리스틴이 앉았다. 뵐 때마다 참 멋진 분이라는 생각이다. 날카롭게 옷에 관해 질문을 던지고 계신 도중, 나도 새롭게 타인의 옷을 보게 된다. 



작년 남성복 심사에 이어, 여성복을 보게 되니 참 좋다. 심사위원으로 나오신 분들의 면면도 참 놀랍다. 철저한 실무,  패션 브랜드별 수장들, 탑 디자이너들의 매서운 질문이 이어질 때마다 학생들은 또박또박, 자신의 생각들을 언어로 옮겨낸다. 난 이런 이들을 볼 때마다 힘이 난다. 에스모드 학생들의 작품은 대학졸업 패션쇼에서 만나는 작품들과 결이 많이 다르다. 지금 이 순간, 외부에 던져졌을 때, 두려워하지 않고 바로 투입되어도 손색이 없는 디자이너로 키워진 사람들이다. 




정치적 이념을 옷에 투영하는 미닝 아웃(Meaning Out)을 보여주기도 하고, 페미니즘을 말하기도 하며, 트렌드를 해석하고 그 속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이도 있으며, 에콜로지와 같은 '우리세대'의 등장하는 태도와 관점을 옷으로 섬세하게 표현하는 이도 있었다. 한지를 이용해 가죽느낌이 나는 소재로 전환해 근사한 옷을 만들어낸 이의 옷도 보았다. '대지를 위한 바느질'이란 에코패션 브랜드를 이끄는 이경재 대표가 머리 속에 한 순간 오버랩되었다. 



영화 데니쉬 걸의 배경이 된 1920년대 북유럽의 색감을 참조한 이도 있고, 강한 여성에 대한 재해석이라는 교과서 같지만 사실 살펴보면 가장 재구성이 어려운 기존 관념에 대한 도전적인 작품을 보여주는 이도 있었고, 자신의 상상 속에서 규정한 '초현실주의 공간'을 새롭게 풀어내는 이도 있었다. 에스모드 졸업작품은 기존의 대학졸업전처럼, 하나의 테마로 통일성있게 묶이는 느낌은 아니다. 그래서 더 다양하게 각자가 풀어내고, 발화하는 옷의 세계를 섬세하게 읽어볼 수 있다. 그래서 더 좋다. 




난 학생들의 컨셉 발표에 담긴 언어의 온도, 그들의 구상과 선별한 어휘가 어떻게 잘 맞물리는지, 이런 걸 많이 본다. 졸업이 정말 어려운 에스모드에서, 결선의 장에 선 학생들의 목소리는 참 많이도 떨렸다. 하지만 그런 여림과 떨림이 있기에, 우리는 또 한 세대를 풍미할 디자이너와 그가 만들어낼 '울림'의 세계에 빠지는게 아니겠는가? 한 편의 정물화처럼, 그들의 옷은 견고하게 지상의 한 좌표 위에 서 있지만 끊임없이 설렘과 두려움이 섞여나온다. 



난 항상 새롭게 피어날 그들의 날을 위해, 준비해온 이들의 손길을 존경한다. 꽃은 자신을 위해 피거나 지지 않는다. 지친 세상에, 아름다운 한 순간의 방점을 찍어, 그 속에서 생을 살아내는 이들을 격려하기 위해 피어난다. 치열한 디자인 작업에 바쳤을 그들의 시간이 고맙고, 그 순수함이 앞으로도 계속 되길 바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