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인큐베이터

국제 패션 컨테스트 최종 심사 후기-패션 도시 서울은 가능할까?

패션 큐레이터 2012. 11. 2. 17:05


서울패션위크도 끝나고 한숨 돌리는 지금, 부산하게 돌아다니느라

발이 아팠던 제게는 달콤한 휴식의 시간입니다. 친구들과 늦가을맞이 여행이라도

다녀오고 싶은 심정인데요. 이번 서울패션위크는 저로서는 정말 힘겨운 스케줄이었습니다.

대학패션위크가 겹쳐있다보니, 이곳의 일도 봐야하고, 학생들과 전시 준비하느라 

정신줄을 놓는가하면, 또 한편으론 블로섬 인 서울 콘테스트 최종 심사에 

가느라, 이 날도 대구에서 1시에 강의 후 KTX 타고 바로 직행. 



패션신진인력양성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된 행사이고 초기 단계라

조직위를 꾸리는 문제이며, 해외에서 쏟아지는 작품들을 처리하는 문제이며

적지 않은 에너지를 들여야 했습니다. 일등상이 일천오백만원의 상금입니다. 적지 않은

예산이 투여되는 사업이고, 이를 통해 서울이란 패션의 도시를 열망하고 그곳에 동참하려는 이들의

마음을 묶는게 중요하지요. 국제컨테스트 답게 해외에 기반을 둔 학생들도 대거 참여했습니다.

이번에 최종 본선에 오른 외국학생은 둘, 홍콩과 베를린에서 온 학생이었습니다. 



이번 최종 심사는 바디에 자신들이 구상한 옷을 입혀 프레젠테이션

하던 2차와 달리, 실제 모델이 입고 런웨이를 걷습니다. 이는 아주 중요한 문제

입니다. 옷은 바디에 입혔을 때와 3차원의 움직이는 인체가 입었을 때, 스타일링에 대한 

느낌이 확연하게 달라지기 때문이지요. 베를린에서 온 리사 잉겔하트 양의 작품입니다. 무국적의 

도시, 어찌보면 국가간의 경계가 사라지는 지금, 그녀는 서구적 신고전주의 풍의 실루엣에 역사성을 함축한 

오브제로서, 나무의 나이테를 상징한 장식을 써서 깔끔하게 서울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자신 만의 비전을 보여주었습니다. 에스모드 서울에 다니는 학생인데, 베를린 출신

이라고 하더군요. 베를린에서도 의상을 공부를 했습니다. 한국이 좋아서 

졸업 후 어학당에 다니며 문화를 더 공부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국제패션컨테스트가 중요한 것은, <SEOUL NOW>란 테마를 통해 

현재의 우리를 알리는 것, 정체성의 빛깔을 외국인들에게 맛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외국친구들로 하여금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 정서적인 

친밀감을 높이는 일일 것입니다. 서울에 더 많은 외국학생들이 패션을 공부하러 오고

이로 인해 바로 지금 이곳에서 '우리가 만들고 있는 서울패션의 DNA'를 그들이

배우고 본국으로 돌아가서 다른 토양속에 이식시키는 과정, 이러한 이국화

과정이 선순환될 때, 한국은 패션으로 기억되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서울은 다면체의 표정을 가진 복합적인 도시입니다. 더 이상 

한국이라는 고유성만을 따져물을 수 없을 만큼, 세계를 향해 열린 창이 

되어 가고 있죠. 사실 강남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제게 의미있었던 것은 그것이

고궁을 비롯한 고색창연한 스타일의 한국소개법을 넘어, 역동적인 우리들의 

이면을 보여주는 일환으로서 작용을 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임희원 양의 <악의 꽃>이란 제목의 출품작입니다. 레이스와 시폰, 오건자

메쉬원단등 반투명과 투명한 세계를 넘나드는 소재를 이용하여 디자인한 작품들이죠.

제목처럼, 무분별한 개발논리로 점철된 서울은 그 내면에 항상 악의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삽니다.

그러나 정치논리와 실수의 반복으로 지어진 서울, 그 속에서 패션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대학생패션위크는 서울패션위크 주간에 함께 열립니다.

외국처럼 주요 디자인과 학생들을 작품을 직접보고, 미래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시스템이 아직껏 이식되어있지 않은 인 나라에서, 기성 디자이너들도 

힘들지만, 학생들도 답답한 것은 매한가지죠. 국제 컨테스트가 조금씩 

자리를 잡고, 서울이란 도시를 자신들의 꿈을 경합할 수 있는 

위상을 갖게 되려면 많은 변수들을 우리가 고쳐나가야죠.



사진 속 옷은 홍콩의 푼만호 학생의 출품작입니다. 

눈 내리는 서울의 풍경을 표현한 것인데요. 테마의 제목으로 

삼은 것인 Absolute Pure네요. 눈은 모든 사물을 덮으며, 민감하고 비루한

사물의 세부적인 면모를 덮습니다. 프레젠테이션을 자신이 보내온 동영상으로 했던

친구였는데 이 날 시상식으로 얼굴을 봤네요. 거칠고 날카로운 것들을 

따스하게 덥는 외피같은 맑고 투명한 눈처럼, 서울의 이미지도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이런 방식으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서울에 대한 예비 디자이너들의 해석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에코적 상상력을 빌리기도 하고, 패기 넘치는 오트 쿠튀르 모델을 들이대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문학적인 상상력으로 충만하기도 했습니다. 서울은 거대도시이지만 그 속에서

결국 우리는 살아갑니다. 이원적인 힘들이 대결을 벌이는 숨가쁜 도시이지만, 그 도시 

조차도 지속가능성을 가지려면, 숲의 섭생을, 그 방식을 배울 수 밖에 없지요.

김병재 학생의 작품이 인간의 숲에서 함께 자라야 할 거목과 관목의

세계를 그려낸 것이라고 하죠. 옷의 구조적인 특성도 좋고요.



학생들의 재능을 발굴하고 투자하는 사업, 언제부터인가 패션 블로거가 

취미삼아 재미삼아, 발품을 팔아가며 뛰어들었던 디자이너 인큐베이팅 일이 눈길을 

받고 있습니다. 블로그란 매체가 있어서, SPA의 폭력앞에 노출된 채,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이들을 만나고 격려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블로그를 통해 학생들과 만나고, 디자인 탈랜트를 만나는 

일은 가슴벅찹니다. 이 행복함이 있기에 오늘도 달립니다. 컨테스트에서 함께 해준 모든 이들에게 고맙습니다. 

그리고 행여, 이번 최종결과에서 입선하지 못했다고 기가 죽거나, 아쉬운 마음이 크지 않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제가 보기엔 여러분들의 열정, 자체로도 모두다 입상을 하고 남았거든요.

패션으로 기억되는 한국을 만들어가는데 힘을 기울여봅시다. 저도 더 뛸테니.


42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