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모드 서울의 25회 졸업작품전에 다녀왔다. 이번 졸업작품전의 테마는 '끼' 라는 주제다. 말 그대로 상큼발랄한 다양한 예비 디자이너들의 끼를 발휘하고 표현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리라. 3년 간 스틸리즘(의상디자인)과 모델리즘(패턴디자인) 과정을 익힌 각 전공별 총 76명의 25회 예비 졸업생들이 디자인∙제작한 작품 271점이 이 날 3시와 7시 두 차례에 걸쳐 소개됐다. 아동복 바잉을 했던 탓인지, 어디를 가든 아동복 부터 꼭 보는 습관이 있다.
개인적으로 전반적인 패션시장의 하락세에도 불구하고 가장 성장잠재력이 큰 시장이 아동복과 유아복 시장이라고 믿고 있다. 중국의 1980년대, 90년대 산 아이들이 자신의 아이에게 투자하는 정도는, 지금 한국시장의 부모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 수요층의 두텁다는 뜻이고, 그만큼 개성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은 부모들의 욕구가 시장 전반의 유효수요를 이끌어갈 것이란 뜻이리라. 그래서인지 유독 아동복 디자이너들을 더 많이 보게 된다.
심사위원 대상은 오페라 마술피리의 악역인 ‘밤의 여왕’에서 영감을 얻은 란제리 전공 조현진씨가 받았다. 조현진은 '미드나잇블루(MIDNIGHT BLUE)라는 제목으로 '여왕의 란제리'를 컨셉으로 작품을 제작했다. 여왕의 기운이 느껴질만한 강력한 힘이 전면에 느껴진다. 검정과 감청색를 토대로 자유롭게 만들어낼 수 있는 코바늘 뜨기를 이용해 반짝이는 실과 광택 나는 소재를 삽입한 후 이완성 높은 매쉬를 혼합했다. 작품의 방점은 악의 기운이 타고 올라오는 듯한 뾰족한 란제리의 외곽선과 화려하고 기괴스러운 코바늘 조직이 묘미다. 조현진의 작품은 화려한 손뜨개로 다양한 소재를 연결하면서도 정교한 패션을 구현했다는 점에서 심사위원들의 높은 점수를 받았다.
전반적으로 이번 졸업작품전은 맥시멀리즘이라고 해야할까? 예술과 패션의 영역이 교류하는 시점이 매우 대담하고 화려했다.
에스모드 파리에서 가장 뛰어난 패턴 디자인 작품을 선보인 학생에게 수여하는 금바늘상은 에곤쉴레의 작품과 쿠르트 슈비터스의 콜라주 테크닉을 혼용한 여성복 전공 김세연에게 돌아갔다. 1차 세계 대전 이후 황폐한 시대를 새롭게 조립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예술가들, 특히 다다이스트들의 숙제였다. 그들이 콜라주란 표현미학을 만들어낸건 우연이 아니었다. 뭐든 과거의 공식화된 규칙을 빌려서 옷에 더할 때는, 균형감이 가장 중요하다. 과하지 않게 풀어내려고 하는 학생의 열정이 보이는 작품이었다. 디자인이란 구상작업은, 실제로 패턴을 만나서 인간의 옷을 입게 된다는 점에서, 나는 에스모드의 이원화된 패션교육이 참 마음에 들었다. 의상학과 나와서도 자신의 손으로 옷 하나 빈천하게 만들고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고. 검정과 베이지, 빨강색을 주된 강조색으로 이용했다. 울과 페이크레더, 쉬폰니트를 주된 소재로 이용, 소재의 특성을 반영한 프린트를 개발했다. 이런 실험정신들이 옷의 구상화를 더욱 깊게 해주는 요소가 될 것이다.
지오지아 상을 받은 이학종 학생의 남성복 컬렉션도 좋다. 에티오피아의 민속의상에서 걸러낸 화려한 패턴과 색채를 현대적인 관점에서 풀었다. 최근 계속 유행하는 오버 사이즈 실루엣으로 살려낸 것도 좋았다.
이외에도 수상작들이다.......다들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작품들이다.
패션의 미래는 다른데 있지 않다. 바로 지금, 현재의 시간 속에서 발효된다. 현재는 어찌보면 실제로 존재하기 보다 과거의 미래로 가는 길에 놓여있는 무정형의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우리가 주입하는 힘과 가치관에 따라 두 세계를 연결하는 것. 그것이 현재의 위상이리라. 한국패션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항상 시도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 그 작업의 중심에 있는 이들의 열정을 만나는 것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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