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영화에 홀리다

영화 비긴 어게인-도시는 리듬이다

패션 큐레이터 2017. 6. 30. 17:27



공간의 틈을 채우는, 음악


영화 <비긴 어게인>을 봤습니다. 이 영화를 처음 영화제에서 처음 보고 난후, 개봉관에서 보고, 이후로도 종종 영화 채널에서 재방송되는 걸 봅니다. 반복해서 봐도 질리지 않는 영화에요. 저는 도시공간을 거닐 때, 스마트폰에 악보를 정리하듯 감정을 기보화 합니다. 도시는 거대한 음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음악영화는 내면공간의 틈을 채우는 가장 고요한 순간, 음악은 태어난다는 점을 알려줍니다. 영화 속 싱어송 라이터인 그레타와 프로듀서 댄이 힘을 모아, 뉴욕의 곳곳에서 만들어내는 소음 속 음악은, 그 자체로 도시라는 거대한 리듬 위에서 피어나는 인간의 화성입니다. 인간의 연대는 그 자체로 새로운 화성학의 룰을 만들어내죠. 음악은 자신이 실패를 경험하고, 존재의 열패감을 맛본 이곳에서, 새로운 희망을 캐는 탐색으로 변모합니다. 



도시는 리듬이다, 타면서 걷는 세계


이 영화를 볼 때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의 <리듬분석>이란 책을 떠올립니다. 이 책의 부제는 '공간, 시간, 도시의 일상생활' 입니다. 르페브르는 도시의 내면을 분석하는 도구로서 음악적 '리듬'을 제시합니다. 각 도시는 자신만의 리듬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이 책에 끌렸던 이유는 다른게 아니었습니다. 잦은 해외여행과 출장, 미지의 장소에서, 쓸쓸함과 소외감, 신산함과 참신함의 터널을 오가며 새로운 타자들을 만날 때마다 '공간'이란 요소를 떠올려보게 되었습니다. 파리와 마드리드는 분명 다르죠, 베를린은 말할 필요도 없고요. 


1920년대의 재즈 리듬이 만들어낸 뉴욕은 싱코페이션의 도시이기도 하죠. 패션이 도시에서 태어나듯, 그 도시 속 런웨이를 걸으며 자신을 연출하는 각 인간의 신체는 도시 전체의 움직임과 연결되이 있습니다. 도시생활은 다양한 리듬의 연속입니다. 우리는 일상이란 악보 위에 우리의 몸과 정신으로 기표를 새깁니다. 도시의 리듬은 선형적으로 흐르기도 하고, 반복되며, 다음의 세계가 어우러지는 세계지요. 이 리듬은 우리의 움직임에, 사유의 방향성과 밀도, 속도에 그대로 영향을 미치죠. 사회적 질서와 법, 제도 등이 우리가 내면화한 이 리듬을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집니다. 르페브르는 그래서 '도시를 듣는다'라고 까지 표현하죠. 



영화 비긴 어게인은 뒤틀린 일상의 리듬으로 엉켜버린 삶을 흔들어, '말끔한' 리듬의 생으로 빚어내려는 인간의 는. 한 곡의 노래가 삶을 바꿀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은 도시 내부에서 벌어지는 모든 이벤트, 사물, 사건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삶을 바꿀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질질 끌려오거나, 수동적으로 이끌려온 삶에 새로운 리듬을 부여할 수는 있겠지요. 도시의 소음과 정경 속에서, 이어폰으로 연결해 음악을 듣던 댄과 그레타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댄의 대사는 언제 곰삭여봐도 좋더군요. 음악은 평범한 일상의 풍경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힘을  갖고 있다고요. 아마도 이 힘은 도시 내부에서 우리가 내면화한 리듬의 패턴을 우리 스스로 바꿀 수 있는 주체이며, 음악은 그것을 가능케하는 강력한 무기란 걸 말하는게 아닐까 싶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