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란 뭘까요?
저는 트렌드란 것이 '지금 당장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아도, 언젠가는 사회 내부의 지표를 뚫고 나올 잠재된 힘'이란 것을 인정해요. 그래서 면밀히 관찰하며 살펴보는 걸 좋아해요. 시대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것은 너무 중요하니까요. 이런 이유로 저는 역사를 공부하는게 좋아요. 18세기는 역사가에게 '참 지난한 세기'라 불립니다. 패션의 관점에서 보면 가장 큰 변혁이 일어났던 세기죠. 트렌드, 패션 저널리즘, 취향의 발전, 소비자 행동의 급속한 변화 등 셀수 없이 미세한 변화들이 가시화 된 시대입니다. 이런 내용들을 소중한 논문을 통해 하나씩 읽고 있자면, 역시 우리의 삶은 과거와 현재, 미래가 연결되어 있으며, '바로 지금' 이 자리에 동시적으로 존재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세 개의 시간대는 격절된 거리에 놓여진 섬이 아니라, 마치 선단처럼, 혹은 군도처럼 촘촘하게 하나의 좌표위에 박혀 있는 어떤 것이란 걸 확신하게 되요. 복식사를 넘어, 최신의 패션연구 조류들을 접하고, 지속적으로 텍스트를 읽으며 공부하며 얻은 결론입니다. 패션 트렌드란 것도 결국은 가보면 우리 삶의 전면적인 '조감도'를 매번 새로 그리는 일이라 생각해요. 최첨단 테크놀로지가 불러온 사회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선 기술적 관점들이 용융된 단어들을 찾아야하고, 그 영향관계며 다양한 인식의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하기에 아예 새로운 어휘를 만들어야 할 경우의 수도 많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것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것일까요? 이렇게 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니 그렇지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시즌 별 인식의 지도를 만드는 데 필요한 말들은, 결국 우리의 삶의 모습이 만들어내고, 의미를 덧붙여온 것들이 대부분이죠.
트렌드 예측 회사들이 2018년에 뭐가 유행한다, 혹은 뜬다라고 할 때, 그것이 저 장구한 역사의 한 페이지에 이미 다 기록되어 있거나, 비슷한 패턴으로 녹아있는 것을 만나게 되요.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구요? 우리는 18세기나 21세기나 '인간'이라는 보편적인 존재이기 때문에요. 수퍼노멀이 어떻고, 젠더리스가 어떻고, 다크 누아르가 어떻고 별별 신조어를 만들려고, 언어를 조합합니다. 패션 예측회사의 운명 같은 거죠. 지금 막 뜨기 시작한 것들, 포착하기 어렵고 규정하기는 더 어려우니, 이런 과정 속에서 기존의 틀과 어휘를 빌려다 제3의 언어를 만들어야죠. 하지만 그래봐야, 그 언어에 담긴 감성은, 인간이 오랜 세월동안 구축해놓은 역사의 한 그물코에 불과합니다. 역사라는 거대한 시간의 저수지를 유영하다보면, 그곳에서 엉뚱하게도 소설 속 한 주인공의 대사가 현대의 패션화보 속 카피와 맞물리는 건 이런 이유겠지요. 역사와 관련된 깊은 논문들, 저널들을 읽으며, 이것을 현재로 소환해 읽어내는 것, 저는 이게 너무 좋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제서야 조금씩 이런 작업의 유효성을 깨달아가는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공부의 힘을 이제서야 느낀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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