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과 사회

18원의 후원은 필요없는 세상

패션 큐레이터 2016. 12. 20. 18:17


루이스 캄니처 

무엇이 무엇이 똑같을까 1981 © 루이스 캄니쳐


이번 중앙선거관리 위원회에 하나의 글을 보냈습니다. <정치후원에 관하여>란 제목의 글이지요. 캐나다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일을 하면서 벤쿠버의 선거관행들을 봤습니다. 이번 글에는 벤쿠버의 선거제도와 한국사회의 비교를 실었습니다. 어느 사회나, 선거란 자신의 욕망, 세상에 대한 비전을 위해 대신 싸우고 외쳐줄 이들을 찾는 행위입니다. 되집어보면 우리의 삶에서 정치가 아닌 일은 없습니다. 결국 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가치를 배분하는 문제이기 때문이겠지요.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는 한국의 헌정사상 최악의 스캔들을 넘어, 정치권과 경제, 문화에 이르는 한국사회의 폐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생산한 총량의 가치를 나누는 과정, 그 한없는 불투명성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은 정치였음을 많은 이들이 깨닫고 있습니다. 


촛불에 떠밀려 그들이 탄핵한 것이 아니라, 그 촛불이 국민들이 이번 사안을 보는 기본적인 시각임을 재천명한것이고, 그것을 뼈져리게 느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대행해 사회의 가치를 투명하고 정의롭게 시행하려면, 제대로 된 이들을 뽑아야 합니다. 패션에 관한 글만을 써온 제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이런 글을 송고하는 건 다른데 이유가 없습니다. 너무나 파편화된 세상에서, 우리는 정치에 대한 논평, 생각을 나누는 일을 한편으로는 너무 쉽게 생각하면서도, 또 누군가 대행할 수 있는 전문적 직능의 문제라고 쉽게 치부해왔기 때문이지요. 물론 정치의 기술은 전문적 영역이지만, 이것은 우리의 삶을 앞으로 진행시키기 위한 영역이기에 모든 이들의 참여가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투표란, 우리의 생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행위에 동참하게 되지요. 캐나다에 있을 때, 투표를 위해 시민들이 자신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보여주는 사례들을 이번 글에서 정리해봤습니다. 그저 돈만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인쇄물을 무료로 찍어주기도 하고, 사무실 비품을 사서 보내기도 하지요. 이외에도 다양한 방식이 있습니다. 


투표에 대한 우리의 자발성과 역할은 더욱 커져야 하고, 정치인들은 소수의 국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더 만나서 촘촘하게 자신이 품은 비전의 네트워크를 쳐야 합니다. 1937년생 우루과이에서 출생한 독일의 아티스트, 루이스 캄니쳐가 만든 개념미술작품 하나를 꼼꼼히 봅니다. 우리는 아이에게 '무엇이 무엇이 똑같을까'란 유아들의 라임을 가르칩니다. 우리에겐 달라보이지만, 실제로는 동일한 것들이 삶의 전반에 가득하다는 것을 '우리 자신'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의 투표권은 곧 생을 먹여 살리는 돈과 다르지 않습니다. 최근 혼란한 시국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이들, 정치인들에게는 후원금이 몰려들고 있다지요? 우리는 '우리가 생을 결정할 수 있음'을 이해하고 이를 해석하고 통어하려는 정치가들에게 조력자의 역할을 해주면 됩니다. 정치에 대한 글을 쓰다보면 이런 생각이 들어요. 정치도 한 벌의 옷과 다르지 않구나. 우리는 항상 철지난 시즌의 옷을 '유행이 지났다는 뜻'으로 싫어합니다. 물론 이런 태도는 패션이 태어난 르네상스 시대에 이미 잉태된 정신의 태도지요. 우리는 항상 새로운 옷을, 새로운 컬러와 실루엣과 단단한 안감을 가진 외면/내면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좋은 옷을 재단하고 봉제할 수 있는 정치가를 뽑아야 합니다. 그 방법을 조금씩 설계해보는 일. 저도 이제부터 신경을 더 쓰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