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과 사회

질문하는 노동자로 살아가야 할 이유

패션 큐레이터 2016. 11. 15. 14:41



질문하는 노동자로 살았어야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99주년 탄신제가 열리던 구미에서, 시민들이 '박근혜 퇴진' 피켓을 들었다. 어린 소녀도 있었다. 탄신제에 온 어떤 광기어린 아주머니는 그 아이를 향해 '썅년아 얼굴 들어, 침묵하는 다수가 있다는 걸 잊지마 씨발년아' 라고 갖은 쌍욕을 늘어놓았다. 기자들을 향해서도 '똑바로 해라, 박근혜 대통령이 뭔 잘못을 했노?'라고 하던 그 아주머니, 이 분은 작금의 사태들을 읽고 독해할 능력이 없는 자임을 드러낸다. 애시당초 비판 자체를 해본적도, 요구해 본 적도 없을 것이다. 자신이 침묵하는 다수로 살면서, 무엇을 얻고 살았는지에 대해서도 통렬한 반성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박정희를 대한민국의 국부인양, 사교집단에 가까운 광기를 보여주는 이들을 향해 한 편의 시를 들려주고 싶다.


"누가 일곱 개의 성문이 있는 테베를 세웠는가? 책에서 그대는 왕들의 이름을 발견한다네. 왕들이 바위 덩어리를 끌어 날랐는가? 그리고 몇 번이고 파괴된 바빌론, 누가 바빌론을 몇 번이고 일으켜 세웠는가? 건설 노동자들은 금으로 번쩍이는 리마의 어느 집에 살았는가? 만리장성이 완성되던 날 밤에 석공들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위대한 로마는 개선문으로 가득 차 있다네. 누가 그것들을 세웠는가? 시저는 누구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는가? 수많은 찬양을 받은 비잔티움, 그곳에 있던 것은 궁전뿐이었는가? 전설의 아틀란티스에서조차 대양이 도시를 삼켜버린 날 밤에 사람들은 물에 빠져서도 자기 노예들한테 고함치고 있었다네. 청년 알렉산더는 인도를 정복했다네. 그는 혼자였는가? 시저는 갈리아 사람들을 무찔렀다네. 그의 옆에는 요리사도 없었는가? 쪽을 넘길 때마다 등장하는 승리, 누가 승리자들의 연회를 위해 요리를 만들었는가? 10년마다 등장하는 위인. 누가 그들을 위해 대가를 치렀는가? 너무나 많은 이야기, 그만큼 많은 의문"


독서하는 노동자로 살아가기 

오늘의 시는 독일의 극작가이자 시인인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독서하는 노동자의 질문" 중에서 발췌했다.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소롯하게 마음 한켠에 불이 켜진다. 이 시는 우리에게 질문한다. 역사가 과연 소수의 영웅과 전문가 집단의 전유물인가? 라고. 역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을 낳은 사건들을 기록한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어떤 관점에 따라 보는가에 따라 극명하게 나뉜다. 내가 속상한 것은, 이 탄신제날, 피켓을 든 이들을 향해 '니들은 아버지도 읍나' 라고 말하는 자들을 볼 때다마 애처로움이 들어서다. 저들은 항상 역사 속 사건과 인물을 비판적 '거리'에서 보지 못한다. 그들에게 구국의 영웅은 곧 아버지요, 자신들에게 빵을 준 반신반인이다. 그들은 대통령과 정서적으로 혈연관계로 묶여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역사란 도도한 탑을 함께 쌓아간 사람들에게 '왜 나도 그 현장에 있었는데 내 이름은 지웁니까?" 라고 묻지 않은 채, 한 시대를 살았다. 그것이 죄다. 


브레히트의 시 제목이 왜 '독서하는 노동자의 질문'일까? 역사 속 독재자들은 항상 과거를 이용해왔다. 조지 오웰의 <1984>년에도 국가를 지배하는 전체주의자들의 구호 중 한 가지가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오늘날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의 실제 배후이자 그들을 꼭두각시로 세우고, 그들의 막후에서 갖은 사치와 화려한 삶을 누리고 재산을 축적하려 한 자들이 신봉하는 구호다. 2천 2백년 전 진시황제도 "현재를 비판하기 위해 과거를 이용한' 자들을 사형시켰다. 그들의 통치를 위해 과거라는 현재를 반추할 수 있는 거울은 사라져야 했고,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오로지 한 개인의 영웅화를 위해 땀흘린 이들의 고통은 사라져야 했다. 고도 경제개발 시대, 독서하는 노동자는 없었다. 그들이 노인이 되어, 자신의 존재감을 잃지 않기 위해, 애꿎은 젊은 세대를 향해 울분만 터뜨린다. 왜 우리를 기억하지 않느냐고 다그친다. 왜 당신들은 그때, 함께 이 시대를 살았다고 통치자에게 말하지 못했는가? 그러니 자칭 지배자란 자가, 시대의 영웅으로 포장하기 위해 함께 했던 당신들을 책에서 지운 것이 아닌가? 그걸 왜 우리에게 탓하나. 


우리가 세워야 할 동상

오늘날 박정희 시대, 그 개발성장시대의 신화를 함께 만든 파독 광부나 간호사, 월남파병용사, 섬유산업노동자 이외에도 다른 영역의 노동자들의 동상을 대통령 옆에 세우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오로지 한 인간이 업적을 내고, 군사적 승리를 이뤄냈으며, 이 지배세력이야 말로 영구적으로 우리를 통치하고 지배하는 것이 '선'이다라고 믿게끔 하는 것. 누군가를 지배하고 싶은 자들이 가장 얻고 싶은 것이 아니겠는가? 이 시국에도 박정희 동상을 광화문에 세우겠다고 떠드는 자들이 있다고 한다. 좋다 세워라. 나는 지하 100미터에 세우라고 놀릴 생각없다. 다만 그 시대를 박정희와 함께 만들어간 수많은 노동자의 동상도 함께 세워라. 그렇게 하면 나도 동의할 것이다. 우리가 함께 세운 이 나라를, 아버지가 세운 나라라고 믿었던 자가 바로 지금의 대통령이다. 자칭 경영/경제 논리를 거들먹거리는 이들이 있어 한 마디 첨언해준다. 기업을 한 개인이 세웠어도, 창업주라 할지라도 공모주를 통해 대중들에게 공개가 되는 순간, 그 기업의 혈맥을 제공한 모든 이해당사자들이 주주가 되어 회사를 함께 경영한다. 현재의 대통령은 한 마디로 국가를 함께 세운 공동 주주인 국민들에 대한 '생각'이 아예 없는 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