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과 사회

핑크는 남자의 색

패션 큐레이터 2016. 12. 20. 19:00



사카이 2017년 S/S 컬렉션 중에서

나의 연분홍빛 인생

2017년 봄은 분홍을 입은 남자들을 보게 될까? 사카이, 로버트 겔러 등 런웨이에 나온 남자들의 옷엔 온통 장미빛, 핑크가 가득하다. 사카이의 수석 디렉터인 치토세 아베는 이번 컬렉션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시계태엽장치 오렌지>에서 빌려왔다고 한다. 런웨이의 모델은 영화 속 보울러 모자를 쓴 남자들로 가득했다. 잔인함과 폭력이 화면 가득히 펼쳐지는 영화 속에서 디자이너는 폭력, 그 이후의 세계를 꿈구었을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폭력 속에서 '나는 치유되었다'고 믿는 알렉스처럼, 여전히 남성적 가치가 잉태한 다양한 폭력으로 부터의 자유를 꿈구었을까? 여성의 색으로 '일방적으로 매도되어온' 분홍을 남자에게 허락한 그녀의 옷이 눈에 들어온다. 


분홍은 남자의 색이었다. 어쩌다 하나의 색이 여아를 위한 색처럼 읽혀지게 되었을까? 이번 한국일보 칼럼은 남자와 분홍색의 역사에 대한 단평을 남겼다. 색채만큼 우리에게 편견을 손쉽게 만들어내는 게 없다. 특정집단이 입었다는 이유로, 그 집단을 내가 내적으로 부정할 때, 그 색을 핑계 대기도 하고, 집단에 대한 증오를 색에 투영해 타인들에게 억압하기도 한다. 우리가 기대어 살아간다고 믿는 삶의 전제인 문화, 요지부동처럼 보이는 생각의 장벽이란게 생각보다 공고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의적인 것이 필연이 되는 결코 필연이 도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러한 자의성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되기까지, 우리는 역사를 항상 돌아봄으로써, 자의적으로 만들어진 삶의 틀 속에 쳐박히지 않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