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과 사회

대통령은 그 옷을 벗으라-무지개 너머로 진군하라

패션 큐레이터 2016. 11. 23. 13:19


ⓒ 한국일보 


한국일보 패션칼럼을 쓴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원래 제목은 '벌거벗은 임금님께 고함' 이었다. 지금은 '주인을 욕되게 한자, 벗어라 그 옷을'이란 제목으로 바뀌었다. 개인적으로 이 칼럼을 영어로 옮긴다면 영문판 제목으로는 Undressing the Rainbow로 하고 싶다. 대통령이 보여준 촌스런 무지개 의상들을 벗겨내야만, 우리는 정녕 무지개 그 너머의 세계로 우리는 촛불을 켜고 진군할 수 있을것이라고 믿어본다. 패션에서 Dressing 못지않게 Undressing이란 화두는 중요하다. 옷이란 사물은 결국 인간이 '입는 행위' 즉 하나의 퍼포먼스를 통해 성립되며 한 인간의 몸에 새겨지는 언어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검사와 판사는 임용을, 의사는 면허를, 장교는 임관은, 박사는 학위취득이라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전문성을 확보하고, 이들의 전문성과 지식의 고결성을 믿는 이들에게 국민들은 '자리'를 내어준다. 그들의 유니폼에서 자신들에게 영광의 자리를 부여한 국민들을 복되고, '영광'되게 해야 하는 이유가 묻어난다. 칼럼의 한 대목을 옮겨본다. 


우리는 공적인 의미에서 ‘옷을 벗다/벗기다(Undressing)’란 표현을 쓸 때가 있다. 이것은 자신이 몸 담아온 조직 혹은 권력에서 멀어짐을 뜻한다. 옷을 벗는 행위는, 조직에 속한 개인의 결단에 의해 이뤄지기도 하고 역으로 그 조직에 정당성을 부여한 국민에 의해 ‘벗겨짐’을 당하기도 한다. 대통령을 비롯해 국가 상급기관에 몸담은 이들의 옷은, 국민의 영광을 드러내야 한다. 이 영광은 그들이 잘나서 얻어낸 것이 아니라, 국민 각자가 받은 양도 불가능한 권리로서의 자유와 영광을 함께 나누었기에 얻게 된 것이다. 즉 그들의 영광은 그 원천이자 주인인 국민에게서 파생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 영광을 오로지 자신들의 몫으로 알고 있는 자들은, 그 옷을 벗겨 참회시켜야 한다.


요즘들어 Undressing 이란 화두를 고민해본다. 옷을 벗다/벗기다라는 말에 담긴 정치적 함의와 함께. 이번 주도 촛불은 타오를 것이고 쉽게 꺼질 것 같지 않다. 재미있는 건, 이런 상황 속에서 실제의 본 모습을 드러내는 사회 각층의 인간들의 면모들을 확인하게 된다는 점이다. 자라 리테일 코리아의 이봉진 대표의 촛불 폄하 발언, 천호식품 대표의 막말에 이르기까지, 이 정권 하에서 굳어져버린 저 기업가들의 감성은 이제는 '벗어야 할' 정신의 옷이 되어간다. 시대마다 맞는 옷들이 있다. 인간의 몸도 옷과 함께 변해가듯, 그렇게 핏과 피부톤이 바뀌어가듯, 우린 새로운 시대에 맞는 정신의 옷을 입어야 한다. 


박근혜의 저 무지개 옷들을 이제는 벗겨야 한다. 지금껏 우리가 침해당해온 권리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촛불의 의미를 애써 알지도, 혹은 알 생각도 없는 대통령은 이제 저 길 위에서 '옷을 벗을 생각' 혹은 '옷이 벗겨질 생각'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줄여서 길라임이다. 길 위에서 옷 벗을 라, 생각할 임. 그녀의, 드라마 사랑은 결국 성난 국민들의 분노 속에서 실제로 '드라마화'될 조짐도 크다. 비상식을 향하여 우리는 너무나 '상식'에 근거한 절차와 도덕적 정당성을 통한 우아한 퇴진을 외쳤던 건 아닌가 싶다. 분노하는 한 주, 그러나 이를 통해 우리가 넘어가야 할 무지개 너머의 세계를 다시 바라본다. 힘을 내야겠다. 오버 더 레인보우......!를 향하여 진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