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과 사회

나에게도 심장이 있다

패션 큐레이터 2016. 10. 21. 17:26



엔리케 시모네 롬바르도

<부검 Autopsy> 캔버스에 유채, 1890년 


'나에게는 심장이 있다'

고 백남기 어른의 죽음을 둘러싸고 경찰과 시민들이 대치중이다. 시민들은 경찰의 강제부검에 저항하며 병원을 지키고 있다.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부상을 당한 후 서울대 병원으로 후송, 이후 뇌출혈 증세로 산소호흡기를 부착, 치료에 들어갔다는 증거 및 문서가 발견되었음에도 경찰은 어떻게서든 '병사'란 논리를 관철하기 위해 강제부검을 강요하고 있다. 부패정권의 충실한 시녀로, 경찰이 보여주는 작태의 끝이 어디일까? 백남기 어른의 사망을 둘러싸고, 검찰은 조사를 회피하고, 이에 기대어 경찰은 은폐로 일관해왔다. 이 사건 관련자들의 승진소식을 듣고 있자니 왜 경찰이 이따위로 대응해왔는지, 현 정권을 위해 자발적으로 거악의 일부가 되기로 결심했는지 이해가 된다.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한 장의 그림이 있다. 19세기 스페인의 화가 엔리케 시모네 롬바르디의 <부검>이란 작품이다. 인터넷 위키엔 <심장해부>란 제목으로 올라와 있지만 원래 그림 완성 당시의 제목은 '그녀에게도 심장이 있다니' 였다. 스페인 회화도록에는 Autopsy, 부검으로 올라와있다. 1887년 예술아카데미 졸업 후 그린 그의 대표작이다. 여성신체를 해부하는 모습을 묘사하는 그의 붓터치는 정밀하다. 당시 의대교수로 추정되는 한 노인이 자신의 손으로 막 사체에서 꺼낸 심장을 쥐고 있다. 그림 속 남자는 자신의 손에 들어온 심장의 면면을 느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심장 덩어리에서 삶의 마지막 호흡을, 정서의 흔적을 찾아보려는 듯 싶다. 


검정색 옷을 입고,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자신이 적출한 심장을 마치 '트로피'처럼 들고 바라보는 남자. 사선으로 쏟아지는 햇살아래, 죽음을 맞이한 여성은 과학과 권력, 지식의 총체인 저 남성의 손아귀에 자신의 심장을 적출당한채 수동적으로 누워있다. 병실의 회색빛 벽면들은 '지금 이 순간' 침묵을 유지하며 벽 내부에서 이뤄지는 천태만상을 조용히 응시하는 것 같다. 이 땅의 현대사는 정부의 과실치사, 특히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공권력을 통해 저항하는 자들을 묵살시키고 심지어는 살해해왔다. 짐승같은 저 폭력의 시간을 함께 했던 이들은 정부와 함께 승승장구하며 개인의 안위와 성공, 권력이 배분해주는 두둑한 자본의 행복까지 쟁취해왔다. 


그림 속 의대교수는 심장을 보며 무엇을 생각했을까? 항상 수동적이고, 자신의 지배속에 놓여져 있는 여성들을 향해 '와 너네한테도 심장이 있구나' 하고 빈정대는 건 아닐까?  지금 경찰세력이 고 백남기 농민을, 강제부검을 결사적으로 막고 있는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딱 이 의대교수의 시선이 아닐까 싶다. 우린 언제까지 죽음과 수동성만이 우리의 미덕이라 생각하며 살아야 할까? 나는 이제부터 이런 사안에 대해 '지겨워하지 않을' 것이다. 툭하면 시간만 질질 끌며 '이제 그만하지'라고 빈정대는 저 가해자들의 논리에 함부로 수긍하지 않을 것이다. 한 나라의 국민이 죽었는데, 대통령의 사과는 커녕, 책임자 처벌은 언감생심, 재발방지를 위한 조치 하나 없이 그저 뻔뻔스레 고집만 피는 저들이 질질 끄는 저 시간의 이연속에서, 나 또한 폭거한 인간들의 마음과 몸을 질질 이연시켜 놓을 것이다. 엿가락처럼. 그리고 나는 외칠 것이다. '나에게도 심장이 있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