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라를 위한 인문학 강의-승마의 본질을 논함

말에 올라탄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여왕생일경축 초상화. 

우리가 밝혀야 할 연결고리

비선실세로 알려진 최순실과 그녀의 딸 정유라로 인해 온 나라가 시끄럽다. 이화여대는 80일이 넘는 농성투쟁과 교수들의 잇단 투쟁선언 속에 총장이 사퇴했다. 개인적으로 사퇴보다 퇴출이란 단어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이화여대 입학과정의 특례 및 터무니없는 학사행정으로 정유라에게 각종 혜택을 쏟아부었던 이인성 교수를 비롯, 거무튀튀한 이면들이 표면화되고 있다. 까면 깔수록 오물냄새가 진동한다. 특히 의류학과가 부정과 은폐의 연결고리가 된 사실이 충격이었다. 의상관련 교수들 중 정치권에 관심 가진 이들을 종종 본다. 특히 관료들의 스펙관리를 해주면서 안면을 트고 정부예산에 눈독들이는 건 더럽지만 전형적인 공생관계의 한 모형이라고 생각해왔다. 이번 이화여대 의류학과의 이인성을 비롯한 그녀의 라인으로 들어온 교수들이 보여준 작태는 악어와 악어새, 그 공생관계의 현실판이다. 문제는 학교의 신성한 학사행정까지 무력화시킨 범죄행위로까지 공생관계가 연결된다는 점이리라. 

유라에게, 승마의 인문학을 배워라

정유라는 과거 페이스북에서 입학부정 문제가 불거졌을 때 분노에 찬 사람들의 논평에 맞서 '돈도 실력'이라며  '없이 사는 것들의 옹알이' 정도로 사람들을 폄하했던 사실이 밝혀져 뭇매를 맞았다. 요즘 이 나라엔 왜 이렇게 무례한 인간들이 늘었나 모르겠다. 정유라에게 한 마디 한다. 그러는 네 실력은 어떤가? 모 신문기자가 빅데이터를 분석, 정유라의 승마대회 기록들을 정리해놓은 걸 봤다.눈에 띠는 기록이 하나도 없다. 아시안 게임 단체전 기록이 가장 좋고, 나머지는 온통 하락세.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말을 렌트하면 무엇하랴. 그 말을 타는 이의 실력이 바닥인걸. 실력없는 이에게 지속적으로 국가의 총유재산인 세금을 이용, 너의 하찮은 스펙을 올려줘야 하는 것이냐? 이것이 정당한 것인가? 그렇게 본인이 돈이 많다고 했으면, 개인비용으로 하길 바란다. 난 오래전부터 승마문화와 그 역사에 관심을 가져왔다. 승마는 귀족들의 표상이었다. '귀족'이란 단어를 들으니 설레는가? 내가 귀족이라서 승마배웠다고 하고 싶은가? 좋다 그렇다면 승마를 왜 배웠고, 그것이 귀족의 필수기술이었는지는 알아야겠지. 받아적도록 하거라. 

르네상스 시대부터 승마는 귀족의 인문학 교육의 일환이었다. 이 말이란 동물은 말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으면 한발자욱 앞으로 나가지 않는 동물이다. 승마를 통해 자세를 교정하는 건 그런 이유인건 너도 알 것이다. 자세가 올바르지 않으면 아예 호응을 해주지 않으니까. 그런 말을 공부하는 건 오늘날 융복합에 버금가는, 다양한 학문을 공부해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말을 기르고, 승마의 기술을 서술하는 실전 매뉴얼을 쓰는 것이 박사학위를 따는 것 보다도 더 어렵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이 과정에서 귀족들은 승마를 통해 리더십을 배웠다. 말을 통해 배우는 리더십이란 다른게 아니었다. 말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 말의 건강을 체크하고, 말에게 수시로 사랑을 건내며 두 존재간의 유대를 강화하는 것. 

너는 적어도 한 나라의 국민으로 살아가면서, 때로는 승마자의 역할을, 때로는 말의 역할을 해야 하는 국민들의 삶의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고대부터 승마는 한 인간에게 정서적 교류의 접촉점이자, 누군가를 다스리는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항상 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고, 여기에 너의 힘을 덧붙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준 고귀한 기술이다. 그림 속 스코틀랜드 근위병의 옷을 입고 말에 올라탄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2세의 모습을 한번 보거라. 여왕을 비롯, 귀족들은 한 나라의 고귀함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피와 살을 바쳐 국가라는 묘비를 세우는 이들이어야 한다. 기품은 흐트러트려선 안되며 항상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야 한다. 또한 그 자부심은 함께 해준 모든 국민들과 함께 나누어야 하는 것이기도 했다. 

한줌의 도덕도 없는 것들

어차피 이 정권은 국민과의 소통이나 유대감 형성에는 실패했다. 그런 실패를 이끈 비선실세의 딸인 정유라가 '돈도 실력'이란 말을 내뱉는 것은 이 정권의 정서적 속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일이리라. 비선실세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실제가 되고 있는 지금, 엄격한 학사관리를 도모한 교수에게 단칼에 잘라내며 '너 따위가 뭔데' 라며 욕을 퍼부은 정유라의 모친 최순실이나, 이 따위 한 줌의 도덕도 갖지 못한 이들에게서 떨어질 권력과 국가예산에 눈이 어두워 학자로서의 양심을 내다버린 이화여대 의류학과 교수들에게도 한 마디 하고 싶다. 

의상/의류학과는 유독 비용이 많이 든다. 실습비 명목, 각종 정보지 구독 명목, 패션쇼 준비에 이르기까지. 가성비가 해마다 떨어지는 걸 체감케하는 현재의 의상교육 커리큘럼은 이젠 따져묻기도 지겹다. 미래지향적으로 과의 이름을 바꾼들 뭐하나. 뿌리깊은 기득권의 구태스러움이 지워지지 않는한. 의상학은 한 시대, 우리에게 사회가 허락한 혹은 허락을 구하기 위하여 한편에선 투쟁해야 하는 '입을수 있는' 것들의 개념, 바로 웨어러블의 철학과 기술, 미적 조건을 가르쳐야 한다. 이런 조건들은 삶의 불편부당함을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기업은 디자이너를 뽑을 때, 사는 곳이 강남인지를 묻고, 패션계가 출생조건이 좋지 않은 이들은 '언제든 배제될 수 있는 것'이 당연한 업종인양 내뱉는 교수들에게서 아이들은 어떻게 희망을 짜는 옷의 철학을 배울 것인가? 

내가 대학생 때라면 이런 사건을 보고 '세상사 다 그렇지' 하며 영어표현집에서 배운 That's the way the cookie crumbles' 를 내뱉었을 것이다. 나는 이런 불합리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것이 '성숙화'의 과정이라 착각하며 살았던 마지막 세대다. 과연 마지막 세대일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세상이 '다 그런거야'라고 말하는 것들을 자세히 보면 쿠키처럼 부스러지고 말 것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실제로는 너무나 취약하고 당연하지 않았던 것들을 '당연하다'라고 누군가 폭력을 통해 심어놓은 것들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그러니 이제 이 하찮은 한줌의 틀로 만들어진 메트릭스를 향해 돌을 던질때가 된 것이 아닌가. 나 또한 동참할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