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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속 도시, 도시 속 미술-사랑하면 보이게 되는 것들

패션 큐레이터 2016. 11. 1. 12:46



초겨울 느낌이나는 10월의 마지막 날, 이촌동으로 나갔다. 국립 중앙박물관에서 진행중인 특별전 <도시 속 미술, 미술 속 도시>를 보기 위해서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국립 중앙박물관의 특별전시들을 매우 선호하는 편이다. 일단 기획부분에서 세련된 측면과 더불어, 국공립미술관의 품위, 무엇보다 학예연구를 위해, 다양한 세계의 미술관의 소장품들을 대여하는 노력이 가상하기 때문이다. 이번 도시 속 미술, 미술 속 도시는 사실 우리에겐 너무나도 익숙한 단어 바로 '도시(City)'의 역사와 그 속에서 살아간 중인계층, 우리로서는 상인과 경제적 중산계층을 모두 아우르는 이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놀라운 전시였다. 



평일 오전임에도 상당히 많은 수의 관람객들이 작품에 빠져 있었다. 미술관에 가는 일은 일종의 산책과 같다. 그 산책에서 만나든 다양한 사물은 항상 내게 천천히 말을 건낸다. 저명한 학자나 큐레이터가 '꼭 이걸 보라고' 했다고 해서 작품 앞에 서서 한동안 서 있는 일은 없다. 비교적 큐레이션 된 작품들 중에서 비중이 떨어지든 말든, 중요한 건 어떤 시점에서 내게 말을 건내는 작품을 자세히 본다. 놀라왔던 것은 조선후기부터 근대까지의 시각문화를, 그 문화가 창궐할 수 있었던 물적 조건이 되어준 도시공간과 효과적으로 연결지어 보여주는 스토리텔링의 힘이었다. 



서양복식을 연구하는 나로서도, 르네상스 이후 도시의 성립과 패션의 탄생은 항상 중요한 화두였다. 피렌체와 베네치아의 시장을 돌아다니며, 과거의 흔적을 찾곤 했다. 실제로 그 당시 만들어진 실크 공방들은 여전히 있다. 이런 관점을 우리 동양, 특히 내 나라로 돌려볼 수 있는 전시였다. 향촌과 다른 도시적 특성, 익명성과 다양성, 역동성이 함께 아우러지는 도시 공간은 그 자체로 시각문화와 새로운 취향이 잉태되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각 전시는 변화하는 도시, 세상밖도시, 꿈꾸는 도시, 시정풍속, 도시풍류, 취향의 과시, 미술시장과 유통, 근대의 길목에서, 새로운 미술환경, 도시의 자화상, 등의 세부 섹션으로 나뉘어져 있다.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봤던 것은 바로 취향의 과시와 미술시장과 유통. 서양에서도 18세기는 다양한 취향과 경합하는 이데올로기가 다가올 시대를 평가하기 위한 정신의 축으로 하나씩 떠오르며 서로를 검증하던 시대였다.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인 한양의 상업도시로서의 면모를 솔직히 이번에서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다양한 상점들의 실루엣이 아련히 보이고, 개별 공간 속에서 펼쳐지는 사람들의 풍모가 어찌나 정교하게 그려져있던지 놀라왔다. 18세기 조선후기 정도가 꿈꾼 신도시 화성을 통해 조선이 꿈꾼 도시의 면모를 볼 수 있었던 것도 수확이라면 수확이겠다. 



그냥 교과서에서 배운 도시에 대한 개략적 설명을 넘어, 도시의 혈맥이랄 수 있는 거리들을 연결하는 선들의 정치한 풍경은 도시란 공간의 네트워크를 연결하려는 정조의 이상을 살펴볼 수 있는 측면이 있어서 놀라왔다. 중인들의 계층성을 볼수 있는 것도 매력이다. 도시 공간에서 살아가게 된 이들이 만든 도시문화, 그들이 오늘날 신윤복을 비롯한 풍속화의 주제이기도 했다. 도시에 집중된 정보와 번화한 문물에 눈뜬 지식인들은 정원과 자신만의 서재를 꾸미며, 책가도를 통해 사물을 컬렉션 풍경, 그 속에 은밀하게 드러나는 자신의 욕망을 선보였다. 



이들 중인들은 19세기 문화적 주역이었다. 이들은 독특한 여항문화를 만들었다. 여항이란 중서민층의 골목문화란 뜻이다. 오늘날 우리에겐 스트리트 컬쳐란 표현이 더 익숙해졌지만, 우리에게도 하위문화적 실천이 이뤄지는 거리문화의 면면이 있었다는 걸 이번 전시를 통해 또 배우게 되었다. 놀라운 건 중인계층의 성장은 기존의 미술과 시각문화의 문법까지도 바꾸려고 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 눈에 보이는 시각문화도, 과거로 부터 어떤 특정한 힘있는 이들이 만들어놓은 '보는법'일지도 모르겠다. 항상 이러한 보는 법(Ways of Seeing)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 재현의 방식에 의문을 던지는 이들을 통해, 새로운 세대는 자신들만의 법을 만들어간다. 그들이 사용한 물품들, 물질문화로 대변되는 사물을 보는 즐거움이 컸다. 



복식사를 연구하면서, 항상 남겨진 유물의 특성과 미적 형식을 밝혀내는 것을 넘어, 그 사물을 어떤 용도로 사용했고, 이를 통해 사용자가 얻고자 하는 욕망의 층위가 무엇인지를 아는데 관심이 많았다. 



자명종, 근대의 입체경, 화려한 도자기, 청화백자, 등등 세련되고, 한편으로는 조선 전기와는 확연히 달라지는 인간들의 욕망을 읽을수 있어서 한참을 봐야했다. 조선 후기 정조 때의 위대한 문장가 유한준의 발문이 들어간 <석농화원>의 문장이 미술관 벽면에 걸려있었다. 우리사회는 미술품 애호가들, 컬렉터들을 그다지 곱지 않은 눈으로 보는 편이지만, 오랜동안 미술품을 소중하게 사모았던 내겐, 한 시대의 미술문화를 지켜내는 모퉁이돌이란 자부심이 있다. 이들이 없이 어떻게 작가들이 작품활동을 한다는 것인가? 




컬렉터의 후원이 없이 화가들이 시장경제 체제 하에서 활동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근대미술의 뿌리인 낭만주의가 시작된 것도, 화가들이 스스로를 브랜드화하면서, 자신의 개성을 팔게 되면서부터가 아니던가? 중요한 것은 그들이 남긴 작품을 이해하고, 구매해주는 이들이 없었다면 그들은 우리 앞에서 사라졌을 것이란 점이다.  유한준의 글로 마무리 해본다. 그리고 배운다. 그림을 아는 것과 배우는 것, 모으는 것이 하나로 연결된 삶이 얼마나 이상적인 것인지를. 


"그림에는 그것을 아는 자, 사랑하는 자, 보는 자, 모으는 자가 있다. 한갓 쌓아두는 것이라면 잘 본다고 할 수 없고, 본다고 해도 칠해진 것밖에 분별하지 못하면 아직 사랑한다고는 할 수 없다. 사랑한다고 해도 오직 채색과 형태만을 추구한다면 아직 안다고 할 수 없다. 안다는 것은 화법은 물론이고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오묘한 이치와 정신까지 알아보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그림의 묘미는 잘 안다는 데 있으며 알게 되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참되게 보게 되고, 볼 줄 알게 되면 모으게 되나니 그때 수장한 것은 한갓 쌓아두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