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인스퍼레이션

패션과 책은 어떻게 만나는가-소니아 리키엘 스토어에서

패션 큐레이터 2016. 11. 7. 15:47



프랑스의 대표적인 패션 디자이너 소니아 리키엘의 팝업 스토어를 볼 때마다 놀라왔다. 패션은 과연 종이책이란 아날로그 매체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를 고민해 본 적이 꽤 많다. 나 스스로 장서가이기도 하고, 언젠가는 패션 전문도서관을 내는게 꿈이기 때문이다. 최근 큐레이션 개념은 오프라인의 다양한 매장들의 실루엣까지도 바꾸었다. 



동네서점의 부활이란 기치아래, 내가 살고 있는 도산공원과 맞닿은 곳엔 디자인 전문 서점이 생기기도 했다. 책을 들여다보는 이들이 많을 수록, 구매비율은 높아지겠지만 사실 체감할 만한 수치는 아닌 듯 싶다. 일본의 츠타야 서점을 벤치마킹하는 게 너무나도 쉽게 드러난다. 소설가 찰스 디킨즈가 살던 영국은 소비사회로 진입하던 영국의 면면을 보여준다. 책은 항상 그 속에 있는 내용적 측면, 콘텐츠에 모든 초점이 맞춰진다. 하지만 잘 갖춰진 서재와 그 속에서 질서정연하게 자리를 잡은 책들의 위상들을 보고 있자면, 왜 인간이 서재란 사물을 그리도 탐해왔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 또한 서재를 꾸미는데 상당한 돈을 쓰고 있다. 불어나는 책을 분류하고, 다른 이질적인 영역과 책의 지식을 어떻게 연결할 까를 고민하며 서재배열을 종종 바꾸면서 그렇게 살아간다. 



파리 생 제르맹 175번지의 소니아 리키엘 플래그십 매장은 바로 이러한 꿈의 연장선을 거대한 물질문화의 렌즈로 보여준다. 5만권의 책이 배열된 그곳에선 종이로 만든 책과 직물로 만든 옷이 함께 공존한다.  브랜드의 예술감독이었던 줄리 드 리브랑은 출판업자인 토마스 렌탈과 함께 협업을 통해, 책 읽는 공간을 만들어냈다. 시각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바닥에서 천장까지 이어지는 반복되는 나무 서재는 소니아 리키엘의 시그너처인 스트라이프를 떠올리게 한다. 각각의 표지의 전면부 디자인을 이용해 하나의 시각적 언어를 만드는 과정은 놀라왔다. 



코너를 돌 때마다 책의 표지들이 마치 장인들이 지은 도서관처럼, 그 곡선과 색감이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파리는 세느강을 중심으로 좌안과 우안으로 나뉜다. 좌안은 대학가를 중심으로 한 지식인들의 공간이었다면, 우안은 백화점을 비롯한 다양한 소비와 럭셔리의 공간이었다. 좌안에서 충분히 시간을 보내지 못한 이들에게, 이 공간은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카페와 도서관이 결합된 이곳에서, 그들은 책을 읽듯 한 벌의 옷을 여유있게 살펴볼 여유를 갖게 되지 않을까? 



사실 공간을 채우는 강렬한 빨강은 차분하게 책을 읽기보단, 흥분감부터 먼저 자아낸다. 이브닝 웨어를 입어야 할 것 같은 이 공간의 중간 중간에 놓인 빈티지 풍의 검은 가죽 소파는 빨강을 유일하게 중화시키는 색채다. 프랑스의 19세기 사실주의 작가들의 작품들 가령 에밀 졸라와 빅토르 위고, 스탕달, 콜렛, 시몬 드 보바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책들이 서재에 꽂혀있다. 



이 공간을 설계한 예술감독의 의지가 놀라운 것은 서재와 서재사이 미로의 길처럼 내놓은 이유에 대해 텍스트를 끌고가는 힘인 플롯을 상징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는 점이다. 패션의 거리 생 제르맹의 역사를 지키기 위한 일환으로 이 공간을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 하겠다는 기업의 의지가 놀랍다. 일단 이런 공간을 성립시킬 수 있는 자본과, 그 배후의 건강한 정신도 부럽다. 나도 언젠가는 이런 공간을 낼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