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Travel/나의 행복한 레쥬메

옷장 속 인문학 3쇄를 찍습니다

패션 큐레이터 2016. 10. 12. 02:09



9월초에 출간일자를 잡고, 추석연휴동안 개점 휴업한 상태에서, 실제로 책을 본격적으로 마케팅한 것은 9월 20일경이나 되어서였다. 나로서는 이미지나 서양명화 한장 없이 패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청소년들도 볼 수 있을만큼 문체와 의미를 쉽게 풀어써야 하는 일이 어려웠다. 원래 작년 5월에 나왔어야 할 책이 하염없이 출간되는데 소요된 것은 이런 이유였다. 사실 필자인 내 자신의 게으름 플러스, 개인사가 겹친 탓이기도 했다. 블로그에 쓰지 않았지만, 사실 올해 5월에 아버지가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셨다. 


미성년자가 몰던 자전거에 치이셨다. 보행도로로 매일 저녁이면 산책을 나가 오랜동안 걷던 아버지는 이날따라 연락이 없었다. 백병원으로 오라는 형의 기갈을 받고 달려가니, 이미 힘든 상태였다. 그렇게 황망하게 아버지를 곁에두고, 유언 하나 듣지 못한채 아버지를 보냈다. 가해자 부모들은 뻔뻔하기 그지 없었고, 도의적인 사과요구에도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식으로 피하다가 엎드려 절받듯 그렇게 사과를 받긴 했다. 이후로 몸은 정서적인 허기로, 끊임없이 먹고 토하고, 그렇게 내 몸은 망가져갔다. 글을 쓸 여유라는 표현보다, 마음은 펜으로 향하질 못했다. 


그렇게 장례를 치루고, 법적절차를 밟고 재판준비를 하면서, 조금씩 글을 다듬었다. 너무 많은 자료들을 읽고, 논문들을 소화해내면서 나 스스로 문체가 점점 건조해지는 걸 느끼긴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편집자에게서 문체가 예전 '제가 알고 있는 선생님의 문장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란 논평을 듣고선 다시 한번 문장을 뜯어고치고, 사전을 찾아봐야 하는 단어들은 쉬운 단어로 고쳤다. 그렇게 힘겹게 나온 책이다. 복식사의 상식을 넘어서, 각종 패션의 품목들이 어떤 맥락에서 태어나고, 오늘날의 문화적 의미를 획득하게 되었는지를 정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특히 복식의 의미를 이중으로 곱씹어 보게 하기 위해, 다양한 문학작품들을 읽어야 했다. 인용구들이 더해지며 편집이 쉽지 않았을텐데, 중앙북스의 편집자가 정말 잘 해냈다.


힘들게 태어난 책은 생각보다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지금껏 책을 내면서 단 시일내에 3쇄를 찍어보기도 처음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내 책이 스타일리스트를 비롯하여, 패션계의 입문하려는 이들의 좋은 인문학 교양서가 되길 바라고, 청소년들에겐 몸과 패션을 함께 생각하며 '더 많이 나를 아껴줄 수' 있는 생각을 싹틔워줄 책이 되길 바란다. 옷장 속 인문학이라고 명명했지만, 스타일링의 철학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스타일링의 기본, 철학, 다양한 품목간의 관계와 역사들도 비중있게 다루었다. 


보통 스타일리스트들의 책은 너무 실제 옷입기의 조언과 팁들이 대부분인 경우가 많아서, 옷을 입는 기쁨이나 경험, 몸과 옷의 관계, 옷이 인간에게 부여할수 있는 존엄과 감정에 대해 제대로 다루는게 없다. 이런 부분들을 다루기 위해 패션 전반에 우리에게 익숙했던 풍경들, 가령 마네킹과 패션 모델, 패션잡지,유행개념 등에 대해서도 토대를 쌓도록 했다. 유사이래 최고의 불황이라는 출판계에서 이만큼 선방한 것은 모두 독자분들 때문이다. 언제든 질문과 질책도 함께 받을 것이며, 추후의 글쓰기에 참조하려고 한다. 쭉쭉 책이 나가며 내 생각이 사람들의 머리 속에 기본처럼 박히는 시간이 왔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나와 내 메세지는 더 이상 힘을 얻지 못하겠지만, 작가가 꿈꾸는 세상이란게 진정 이런게 아니겠는가? 모두에게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