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Travel/나의 행복한 레쥬메

패션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패션 큐레이터 2016. 10. 4. 15:25



이번 소셜패션프로젝트의 심사위원과 특강을 맡아 많은 이들을 만나야 한다. 패션에 대해 우리가 떠올리는 이미지들, 생각의 덩어리들을 꺼내보자. 패션에 대해 진중한 이야기를 꺼낼때마다, 자칭 먹물흉내를 내는 자들이 더 오만하게 패션을 씹는다. '패션은 가면이자 허식일 뿐,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라고 말하는 자도 봤다. 한 마디 해주고 싶었다. '네가 그러니까 딱 그런 꼬락서니의 댓글이나 다는 인생'인거라고. 나는 사회를 구성하는 각각의 요소들이 사회적 책임감을 느끼며, 자신이 해온 관행들을 되돌아보게 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이건 공정상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패션은 한 개인의 아름다움을 위해서도 존재하지만, 그 존재가 집단이 될 때, 사회는 곧 집단적인 인간의 열망을 담아내고, 새로운 배출구를 찾아야 하는 수단이 된다. 



어느 시대건 생산의 방식이 있고, 그 방식이 현재의 우리의 미래와 삶에 대해 어떤 영향을 끼친다면, 그 영향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시작된 패션생산의 관행은 사실 현재까지도 별 변화가 없다. 노동집약적 성향이 너무나 강한 이 패션산업이, 전 지구적 관점에서 볼 때,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고, 현지의 생산력을 박탈하고, 오염을 일으킨 것. 두말할 여지가 없다. 문제는 '바꿉시다' 라고 떠든다고 되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한 벌의 옷을 소비하는 우리들의 태도, 생각, 인지가 바뀌어야 패션업자들의 태도도 바뀔게 아닌가? 


디자인에서는 사회적 디자인이란 영역을 크게 발전시켜왔음에도 유독 패션이란 하위 영역이 결합되는 순간, '패션이 무슨 사회적 책임'을 운운하는 이들이 많다. 그만큼 패션에 대해 스스로가 협소한 관점을 갖고 살았다는 건 죽어도 인정하기 싫어서였을 것이다. 맨날 뜨는 동네 다녀왔답시고 사진이나 찍어 올릴줄 알았지, 그런 행위들 배후에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을 진중하게 고민하는 소비자들은 많지 않다. 




직접 관련된 자들이나 고민할거지, 왜 우리에게 이러느냐고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지금 바로 우리 사회 내부에서 뜨겁게 발생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 하청노역, 패션의 다양한 공급사슬에서 발생하는 사회적인 네거티브 효과를 우리는 제대로 봐야 한다. 악영향을 제거하고 줄이기 위해 법적 차원의 지원이 있어야 하고, 지금껏 우리가 '자연스럽다'고 믿었던 미감, 생산의 방식에도 딴지를 걸어야만 한다. 이번 성수소셜패션프로젝트에서 시작하는 공모전에 모인 이들의 열띤 분위기를 보았다. 좋은 결과물들이 나오기를 바랄 뿐이다. 


성수동을 중심으로 한 소셜패션에 대한 흐름이 조금씩 힘을 얻어가길 바란다. 이를 위해서 열심히 뛸 생각이다. 패션은 사회를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런 고민이 과연 소수 전문가 집단의 고민 만으로 끝나야 할까? 어떤 것이 사회적 구성요소가 된다는 것은, 사회적 직능은 물론이요, 사회의 다른 요소들과도 조화적 관계를 이뤄낼 수 있을때 구성요소로서의 지위를 갖게 될 것이다. 이제 작은 첫삽을 뜬다. 많은 이들의 공감 속에서 패션이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다양한 생각과 시도를 건져내는 기적의 시간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