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영화에 홀리다

영화 사도-슬픔을 사유한다는 것은

패션 큐레이터 2015. 10. 1. 01:14



영화 사도를 봤습니다. 워낙 드라마를 통해 자주 다뤄온 우리 역사의 한 부분입니다만

이준익 감독이 풀어내는 사도에는 어떤 '감칠 맛' 혹은 매혹적인 해석의 몫이 있을까 궁금했지요



다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사도세자의 한자의미를 다시 세겨보았다는 것이고

왜 아버지와 아들은 이다지도 슬픔의 경계선 위에서 만나야 했을까? 그저 현대의 아버지와 아들의 

삶을 다시 반추하며 씁쓸한 마음을 쓸어내렸을 뿐입니다. 온라인에선 사도세자의 죽음을 둘러싼 두 원인을 

갖고 여전히 뜨거운 논란과 프레임 전쟁이 지속되지만, 두 개의 입장을 영화적 이야기 속에 잘 버무린 능숙함이 

좋았습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사료에만 매몰되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정황증거를 실제 진실로 

밀어부치는 것도 문제라는 것, 그런 점에서 사도세자의 광증설과 노론/소론 갈등에 의한 

죽음으로 바라보는 틀에는 건널 수 없는 깊은 패임이 존재합니다. 머리 아프네요.



그냥 내년이면 86살이 되시는 아버지가 떠올랐고, 아버지가 제게 가졌던 

기대치랄까? 뭐 그런 부담을 갖고 살아오진 않았지만, 이번 추석연휴 부모님을 뵈며

부쩍 연로해지신 두 분에 대한 마음이 아련해, 영화를 보는 내내, 아버지와 어머니를 생각했네요.

그러고보면 아들의 장래희망, 혹은 꿈에 대해서는 물심양면으로 항상 힘이 되어주셨던 부모님이 그저 감사

할 수 밖에요. 살아가면서 느끼는게 있습니다. 권력이든, 애정이든, 부모 자식간의 마음이건, 힘이라는 실체를 구체적 

삶 속에서 풀어내고, 배분하는 것, 균형을 잡는 문제가 참 어렵더란 것이지요. 



영화를 보는 내내, 정당성이 부족한 인간이 권력을 가지게 될 때

어떤 컴플렉스를 보여줄까 하는 생각도 해봤고, 항상 아버지에게 칭찬받기를

소망하지만, 매번 허사로 끝나는 텅빈 상처의 심령을 안은 아들의 마음도 생각해봤습니다.



딸 아이가 삶에서 태어나면서, 비로소 부모가 되었습니다. 

아직 옹알이를 하고 있는 딸의 모습을 보면서도, 문득 부모님을 떠올렸네요.

놓아주어야 할 때와, 내려놓아야 할 때, 혹은 내 아이의 꿈을 위해 그 손발을 함께 들어

주어야 할 때를 잘 구분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달라고 기도해봤습니다. 



문득 영화를 보다, 영조의 죽음 후, 신하가 궁궐 지붕에 올라가 상위복 하고 외치던 모습을

유심히 봤습니다. 초혼의 시간이지요. 그의 용포가 하늘 높이 올랐다가 대지로 아련하게 낙하하는

장면이 왜 제 마음엔 그렇게 와닿던지. 아이가 이번 추석에 가니, 조금씩 목을 가누기 시작하더라구요. 목만

제대로 가누면, 포대기에 안고 부모님께 자주 안부 여쭈러 가야겠다 마음을 먹었습니다. 세월이 가면서 부모님 생각에

자꾸 예전에는 잘 몰랐던 미세한 슬픔의 결을 조금씩 어루만져 봅니다. 되짚어보면 세상의 모든 부모 자식간의

관계는 두꺼운 슬픔을 그 배면에 얹고 시작해야 하는 일종의 제사가 아닐까 생각도 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