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영화에 홀리다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평당에는 기적의 전세가 있다

패션 큐레이터 2014. 12. 23. 17:35



집없는 설움이 이다지도 크단 말인가?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VIP 시사회에 다녀왔습니다. 연말연시 훈훈한 가족코미디 한 편 보고 싶었는데요. 이 영화는 저의 그런 마음을 딱 잡아준 작품이었습니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4년 전 라디오방송에서 북 칼럼니스트로 활동할 때, '너무 참신하고 재밌다'는 이유로 제가 강추했던 소설이었습니다. 영미권 성장소설을 한국적 상황에 맞춰 개작했는데요. 영화 속 주인공 지소와 그녀의 엄마는 사업 실패로 집을 나간 아빠 때문에 집 한칸 없이 차에서 먹고 자는 신세입니다. 집 없는 10살 소녀에게 찜질방을 오가며 사는 생활은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때 지소에게 나타난 희소식. 평당 500짜리 전세를 안타깝게 분당 아닌 평당이란 도시에 있는 500만원 짜리 전세집으로 착각한 것이죠. 


  


엄마가 아르바이트하는 레스토랑 주인의 개를 훔치기로 합니다. 이 개는 한 마디로 걸어다니는 돈다발입니다. 동물병원에 정기검진을 받으러가는 '월리'를 훔쳐 전단지를 뿌리고 500만원을 얻어낼 기회를 호시탐탐 기다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귀엽습니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줄이겠습니다. 영화 전개는 소설을 읽은 분들은 아실테니까요. 영화 속 레스토랑 사장님으로 나온 김혜자 선생님의 연기가 인상 깊었고, 영화 속에서 그려내는 '아이들의 눈에 비친' 세계가 약간 섬뜩했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초대해 성대한 생일파티를 해줘야 한다는 것, 이런 문제들이 일상에서 얼마나 자주 벌어지고 아이들에게 중요한 일인지 요즘에서야 깨닫고 있거든요. 생일파티 날이 단순히 아이들과 교류하고 노는 시간이 아니라, 내가 '함께 놀아야 할 아이들의 경제적 스펙'을 검토하고 걸러내는 기제가  된다는 점. 실제로 이것 때문에 고민하는 애 엄마들을 꽤 봤습니다. 엄연한 현실이고요. 참 웃프지요?



스위트 홈을 얻기위해 필요한 돈?


영화를 보는 데 갑자기 친숙한 작가의 그림이 나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라유슬이라고, 호텔아트페어에서 갤러리 대표가 칭찬하던 작가가 있었습니다. 아니나다를까 인터넷을 찾아보니 라유슬 작가와 김혜자 선생님이 함께 찍은 사진이 있더군요. 개인적으로 라 작가의 그림을 좋아했던 건 일종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작품이라 좋았습니다. 원래 제목이 레가토legato인데요. 레가토는 음악의 악보 기호입니다. '서로 다른 음을 연주할 때 음과 음을 분절하지 않고 부드럽게 이어서 연주하는 것'을 의미하죠. 그만큼 탈많고 상처많은 한국사회, 그 속에서 집 없이 살아가는 지호네 가족에게도 '부드럽게 연주할' 삶의 접합점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뭐 이런 영화야 당연히 해피엔딩 아니겠습니까? 가족들이 보고 웃고 눈물 한 방울 던지며 자꾸 '잃어버렸다고 믿는 그 어떤 것'을 찾았다는 식의 논평이 이어지겠죠.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사골국물같은 주제가 여전히 끌리는 건, 적어도 성장소설로 출발한 원작이 은연중에 사회의 탈구된 한 단면을 면밀하게 '아이들의 시선'을 통해 보여주는 것, 미시적이지만 동시에 거시적인  세상의 복잡성 때문일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이 세상을 물려줘선 안된다


첫 인상을 가볍게 받았다가 마냥 한국판 월트 디즈니 영화가 아니구나 하게 됩니다. 물론 영화는 전형적인 월트 디즈니의 가족영화의 문법을 따라가지만, 아이들의 대사 에 묻어나는 한국사회의 병리는 어둡고 짠합니다. 아이들의 연기는 놀랍습니다. 영화 <마더>의 김혜자 선생님만 생각하다가 이번에 맡은 역이 좀 가벼운게 아닐까 했었습니다. 뒤집어보면 김혜자 선생님이 적임자였다란 생각이 들었어요. 특유의 시니컬함, 배우의 표정을 볼 때, 자신의 사연과 아이의 사연이 만날 때, 어른의 세계와 아이의 관찰한 세계를 연결해 담아내는 '큰 어른'의 눈빛을 봤습니다. 역시 배우시구나 했죠. 어찌되었거나, 전세살이가 쉽지않고 전세를 구하기 자체가 불가해진 세상에서, 분당 옆 평당에서 말도 안되는 가격의 집 한채, 기억의 집 하나 얻고 싶은 요즘입니다 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