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영화에 홀리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리퀴드 러브 세대를 위한 뭉클함

패션 큐레이터 2014. 12. 22. 01:40



우리시대의 공무도하가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보고 왔습니다. 이미 2백만 관객이 넘는 기염을 토해내고 있는 시점에서, 참 늦은 관람과 후기를 쓰게 되네요. 오랜만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작품을 보니, 보고 난 이후에도 많은 생각에 빠지게 됩니다. 영화 한 편, 한 권의 책, 한 벌의 옷, 어찌보면 우리의 삶이 확장되는 텍스트일텐데요. 말이 그렇지 우리를 그렇게 뭉클하게 몰아가는 작품을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누구나 감동을 말하지만, 그 감동은 오래전부터 사람들에게 '먹힐만한 것'들의 문법으로 이뤄진 인위적인 것들이 많았죠. 


극장은 젊은 세대로 가득했습니다. 특히 20대의 관람객들이 30-40대 관람객보다 많다는 소식에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이 영화에 끌리게 하는가' 관심이 생길 수 밖에요. 이 영화의 제목인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고대가요인『공무도하가』를 떠올리게 합니다. 고대에서 현대까지, 결국 인간이 극복할 수 없는, 하지만 실존적으로 맞이해야 할 죽음이란 테마가 바로 고대가요 공무도하가와 바로 지금,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의 중심부를 흐릅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 수의를 접으며 


죽음은 인간에게 있어 세계를 이해하는 중심의 자리를 차지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대한 슬픔, 그 슬픔의 자리가 넘어가는 전환의 장소가 바로 강 또한 물입니다. 이는 서양과 동양이 모두 같지요.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기 위해 레테의 강을 건너야 하는 서구의 영혼도 이 물과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죽음이란 인간의 사건을 필연적 경험의 문제, 현실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인간의 비극적 인식이 자리합니다. 


100세를 살아야 하는 저주받은 세대라 불리는 세대에게, 죽음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요? 한 벌의 옷이 귀했던 시절, 옷을 짓고 입고 누군가에게 보이는 일이 하나의 의례였던 시절이 있었죠. 지금 같은 패스트패션의 광풍 속에 그 정서는 다 사라졌습니다만, 과연 어디 옷만의 문제일까요? 죽음의 기간들이 연장되고 이연될수록 우리는 죽음의 실존적인 무게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영화에서 유독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깊은 기침 소리를 들으며, 죽음을 준비하고 그를 위해 친숙했던 옷들을 태우는 과정, 무엇보다 곱게 지어놓은 수의를 마른 겨울 햇살의 잔열에 거풍시키는 모습이었습니다.



'힐링'과 '관계맺기의 우울'에 중독되어 있는 우리 시대, 76년간의 사랑을 지켜온 한 노부부에게서 '우리의 또 다른 지향점'을 보게 됩니다. 영화는 사념적으로 사랑의 깊이를 토로하지 않습니다. 그건 인문학 팔이에 미친 대중철학자의 몫이겠죠. 사랑은 결단이고, 삶의 과정 속에서 행위를 통해 보여지는 것입니다. 고독을 퇴치하는 산업이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시대 산업의 일부가 되었듯, 최첨단의 문화 속에서 '반 고독의 저항'을 상품으로 파는 시대, 이따위 상품의 구매없이도 지순의 사랑이 가능하다는 것. 


그것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노부부의 사랑어린 일상의 연대기를 본다는 건 그 자체로 치유였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노부부의 사랑에서 그저 지순하고 불변의 사랑의 코드만을 찾아야할까요? 아닐겁니다. 저는 오히려 이 두분에게서 죽음을 맞이하는, 혹은 준비하는 인간의 모습을 봤습니다. 팔순을 훌쩍 뛰어넘은 부모님을 전화로 찾아뵙고 안부드려야 하는 아들에겐, 영화 속 노부부는 제 부모님의 또 다른 초상이었습니다. 



리퀴드 러브의 시대, 이별의 문법을 찾아서


최근 철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리퀴드 러브>를 읽었습니다. 유동적인 근대, 마르크스의 말대로 견고한 모든 것들이 용해되는 이 시대에, 우리의 사랑도 그렇게 물처럼 유동적인 것이 될까요? 유대없는 인간, 고독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인간들이 판을 치는 이 시대에, 가슴 한 켠 뭉클하고 인간-임에 대해 깊은 심연에서부터 마음이 울컥해지는 망외의 소득을 이 영화를 통해 얻습니다. 두 사람의 연대가 필연적으로 '죽음'을 통해 갈라질 수 밖에 없다해도, 그 균열 아래 여전히 견고한 인간의 뿌리가 심어져 있음을 배우게 되죠. 적어도 이 영화를 보면서 한 편으론 무겁도, 또 한 편으론 아내의 자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