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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환타지다-제나 할러웨이의 눈부신 수중예술사진

패션 큐레이터 2015. 8. 28. 14:47


 ⓒZena Holloway 2015  


예술의 전당에 다녀왔습니다. 밀린 전시들을 하나씩 눈에 담고 묵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보테로의 그림에서 패션과 육체란 주제를 묶어서 고민해봤고, 모딜리아니의 목이 긴 여인의 초상화 앞에선 그녀를 위한 패션 스타일링을 고민해봤죠. 물론 미술사에 대해 나름대로 깊은 공부를 하고 있지만, 항상 그림을 본다는 것은 결국 '자기자신의 시선을 타인에게 설득할 수 있는 확신과 이야기의 힘'일 겁니다. 


 ⓒZena Holloway 2015  


그런 의미에서 어제 마지막으로 본 수중예술사진작가 제나 할러웨이의 THE FANTASY 전은 지친 마음의 한 구석까지 환하게 비춰준 작품들이었습니다. 형을 따라 스쿠버다이빙을 배웠었습니다. 마스터를 지나 인스트럭터에 이르기까지 바다를 사랑했던 친형 덕분에, 게다 바다를 고향으로 삼아 태어난 제겐 바다란 공간은 결고 가치 중립적인 곳이 아닙니다. 바다의 얼굴은 여러개라서, 표면으로 볼 때는 잔잔해도 그 속에 들어가서 무중력의 상태가 되는 순간 인간은 한편으론 위험에 빠지고, 또 한편으론 지상에서 보지 못하는 시각구조의 틀을 얻게 됩니다. 그 상태에서 사물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죠. 수중 사진이 눈에 들어오는 건 그런 이유입니다. 지상의 격자무늬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키워온 시각의 습속을 버리게 됩니다. 


 ⓒZena Holloway 2015  


작가는"수중에서 이미지를 창조하는 작업은 규제 받지 않은 영역을 탐색하는 것과 같다. 나는 수중작업이 가져다 주는 황홀한 경험을 좋아한다"고 작업노트에 말을 했더군요. 아무도 가지 않은 Uncharted Way 영역을 카메라를 들고, 지면과 다른 촬영조건 하에 포착하는 그녀의 시선은 황홀하고 아련하다는 말 밖엔 나오지 않더군요. 


 ⓒZena Holloway 2015  


위에 보시는 '더 워터 베이비' 시리즈는 1863년 영국출신의 작가 찰스 킹슬리가 발표한 동명의 판타지 소설 내용을 주제로 촬영한 것입니다. 2년에 걸쳐 환타지 영역의 세계를 사진과 일러스트, 두 방식을 통해 견고하게 응집시켜온 결과물입니다. 물 속에 들어가면, 사람의 인식이 이뤄지는 움직임 자체의 개념이 변화하게 되지요. 엄마의 양수 속에 있던 아기의 모습이, 바다라는 또 다른 세계로 확장되어, 모태로의 환원과 따스한 정서적 기억을 환기시키는 그녀의 사진이 놀랍기만 했습니다. 


 ⓒZena Holloway 2015  


환타지Fantasy란 어원적으로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비현실적인 사건과 일을 보이도록 하는 것'이란 뜻입니다. 그저 꿈같은 공상이나 환각이란 뜻으로 풀어내기엔 훨씬 더 존재론적인 의미가 있지요. 환타지란 그 대상이 되는 존재를 심적으로 이해하는 일도 포함되니다. 심적으로 이해한다 함은 공감을 뜻하는 것이고, 그 공감이 있어야만, 존재의 대상이 있는 영역에서 걸어다닐 수가 있지요. 


 ⓒZena Holloway 2015  


이렇게 아름다운 사진의 이면에서 저는 안타깝게도 '무중력사회'를 살아가며 자신의 정체성에 닻을 내리지 못한 채 부유하는 우리시대의 청년들 생각도 해봤습니다. 도피의 출구로서 환상이란 요소를 사진에서 읽어보기도 합니다. 물론 저 만의 작은 환상공간에서 펼쳐지는, 그래서 제 망막의 뜰채로 건져낸 작은 생각일 뿐이지만요. 환상은 어떤 점에서 보면 고통입니다. 고통에 빠진 자가, 자기 합리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달아나고 싶은 공간 같은 것이라고 할까요? 


 ⓒZena Holloway 2015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나 할러웨이의 사진에는 우리로 하여금 뭔가를 꿈꾸고 품을 수 있는 숨겨진 공간들이 있습니다. 물 속이라는 특수환경, 그 속에서 중력과 이끌림이란 요소없이, 새로운 길을 터야 하는 우리 삶이 녹아있죠. 그래서인지 전시관람 후 더 힘이 났는지도요. 그녀의 사진을 통해 나와 나를 둘러싼 환경들을 대면할 수 있는 작은 용기 하나를 얻어봅니다. 항상 같은 자리에서 무너지고, 항상 같은 지점에서 실수하고, 누군가를 탓하려해도 결국 나로 환원될 수 밖에 없는 삶의 자리를, 그 속에서 '보이지 않지만 드러날' 생의 기적을 만들고 싶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