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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천년의 예술전-예술로 한 나라를 껴안는 방법

패션 큐레이터 2015. 8. 13. 15:42


패션의 역사을 연구하는 저에겐 전시는 항상 생각의 옷을 재단하는 꼼꼼한 가위와 실과 같은 존재입니다. 어제 방송강연을 마치고 부랴부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폴란드, 천년의 예술전을 보기 위해서였죠. 쇼팽과 코페르니쿠스의 고향 폴란드, 물론 이외에도 폴란드란 다소 생소한 유럽의 국가에 대해 미술을 통해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중세부터 20세기까지 각종 유물과 회화작품을 통해 한 나라의 정신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기회였지요. 



개인적으로 이번 전시를 가보기 전에는, 개괄적인 전시려니 했습니다. 국내 최초로 열리는 폴란드 미술전이었지만 그 깊이에 대해 인지하진 못하고 있었죠. 전시를 보면서 시종일관 눈과 귀가 행복했습니다. 쇼팽을 다룬 섹션에선 그의 악보와 그의 연주모습, 무엇보다 파리에서 활동하면서도 식민지 치하의 폴란드를 잊지 못하고 작곡에 혼을 쏟았던 음악가의 면모가 떠올랐네요. 쇼팽은 당대에도 최고의 피아니스트였기에 유해를 조국으로 보내달라는 유언에도, 결국 심장만 사후에 폴란드로 보내졌죠. 



이번 전시가 좋았던 점은 복식과 장식예술 섹션을 굉장히 크게 소개한 점이었습니다. 패션과 다양한 세계의 민속복식에 관심이 많은 저에겐, 다양한 영향관계를 살펴보는게 중요하거든요. 유럽 내부에서 지리적 좌표상 동방과 서방의 영향을 고루 받았던 폴란드였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미술사는 사실 서유럽국가들이 중심을 이루죠. 항상 파리, 런던, 바르셀로나, 등등 유럽중심적 미술이라지만, 이런 자리매김에서 소외되어왔던 폴란드란 나라를 예술로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습니다. 


저는 어느 나라를 가건 미술과 패션이란 두 개의 렌즈로, 한 나라의 정체성을 밝혀보거나 공부하는 일을 즐겼습니다. 이번 폴란드 미술전은 보기드문 직조, 복식관련 유물들도 와서 저로서는 정말 신이 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번 전시 포스터의 주인공이 된 <워비치의 소녀> 작품도 인상깊습니다. 폴란드 중부에 위치한 워비치는 화려한 민속의상으로 유명합니다. 다양한 색상의 모직으로 짠 에이프런인 피나포어를 입은 소녀의 모습에도 발그레한 빛이 감돌지요. 



최근 영화에도 다양성 운동이 벌어지면서 사실 대형 멀티플렉스관에도 예술영화나 진중한 작품들을 위한 독자 공간들을 만들고 있는데요. 안타깝게 이 나라의 미술전시 방향은 블록버스터 전시에 너무 매어서 돈이 될만한 것들만 가져옵니다. 이 과정에서 반복되는 화가들의 리스트며, 유파, 작품의 의미들이 있습니다. 인상주의 미술이 특히 그랬고요. 물론 이런 양상들이 일본의 80년대를 보는 것 같습니다만, 우리에겐 시야를 확장시켜줄 다양한 나라의 미술이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는 상대적으로 소외되어있었던 유럽미술의 한 특성을 소개하는 흥미로운 도전이기도 합니다. 



당대 귀족여성들의 화려한 복식이며, 실내 인테리어를 채우는 멋진 장식예술작품도 보고 



폴란드의 역사가 강대국들에 의해 영토가 분할되어 통치된 오랜 시간을 가진 나라다보니, 그림 속 은유들이 마치 우리나라의 근 현대사를 바라보게 하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계몽주의 시대의 화가인 유제프 페슈카의 <나폴레옹이 있는 알레고리>는 패망 후 폴란드의 운명을 쥔 나폴레옹이 그가 사귀었던 폴란드의 연인 마리아 발레프스카와 헤어지면서 이를 은유로, 유럽에서 버려진 폴란드의 모습을 그린 것인데요. 그림 속 각 인물들의 시선처리가 참 눈에 들어오더군요. 



폴란드의 조각가이자 교육자였던 크사베리 두니코프스키의 <숨>이라는 작품 앞에서 정말 숨을 멈추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포로로 수감되었던 경험을 가진 작가답게, 그의 작품에는 삶의 신산함을 녹여내는 아련함이 배어납니다. 그는 세계대전 종전 이후 사망시까지 폴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조각가로 뛰어난 작품을 남겼습니다. 삶의 의미와 인간 존재에 대한 진중한 질문, 이런 느낌이 나무의 목질부에 그대로 아로새겨져 있는 듯 합니다. 



폴란드의 자연풍경화는 마치 북부의 자연을 보는 듯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율리안 파와트의 <사냥 후>의 모습을 담은 풍경은 곰 사냥 이후의 풍경을 담았습니다. 1892년 베를린에서 제작된 작품인데, 당시 금상수상작이라고 하더군요. 



도록도 한 권 사서 왔습니다. 옆에 두고 찬찬히 이미지들을 통해 한 나라의 문화사를 공부해 보는 마음으로 말이에요. 요즘 한 편 감사한게, 예전에 비해 국립미술관 수준에서 유치할 수 있는 전시의 역량이랄까, 그 범위와 깊이가 굉징히 깊어졌습니다. 패션도 마찬가지이긴 하죠. 인터넷을 켜고 인스타그램만 접속을 해도 각 나라의 첨단 유행의상을 볼 수 있고, 바로 집어낼수도 있는 시대니까요. 이럴수록 다양함을 익히되, 그 안에서 깊이에의 균형감을 갖는게 중요합니다. 미술을 하나의 지렛대로 삼아 유럽의 일부를 다시 공부해보는 것, 좋은 경험이 되리라 생각해요.